말뚝들 –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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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뚝들
김홍
상실의 시대를 관통하며 잊힌 존재들의 귀환이 던지는 윤리적 질문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머릿속에 딱 생각이 든 작품이 있었는데,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였다. 두 작품은 외형적으로는 현재의 시스템 적 부조리와 과거의 역사적 비극이라는 전혀 다른 시공간을 다루지만, 궁극적으로 기억의 의무와 연대의 윤리라는 공통된 주제를 찾아가며 우리 사회의 가장 어둡고 잊고 싶은 부분을 조명한다는 점에서 깊은 연관성을 가진다. 말뚝들의 기이하고 서늘한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소년이 온다’를 읽었을 때와 비슷하면서도 사뭇 다른 느낌이 다가오고, 21세기 익명성 속에서 어떻게 변주 되고 있는 지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말뚝들의 서사는 비현실적인 존재의 출현으로 시작된다. 이들은 유해 물질 중독, 과로 등으로 죽었으나 사회적으로 제대로 애도되지 못한 채 익명으로 사라진 이들의 몸이 시랍화되어 거꾸로 박힌 형상이다. 이러한 기괴한 현상은 현실의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 마술 적 사실주의 기법을 통해,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도시의 일상 속에 잊어서는 안 될 것을 강제로 삽입한다.
광주의 학살 현장에서 희생된 젊은 영혼들, ‘소년이 온다’의 처절한 이미지가 떠올랐다. 이 소설처럼 물리적 형태로 부활하지는 않으나, 생존자들의 트라우마와 환영 속에 끊임없이 ‘영혼의 말뚝’처럼 박혀있다. 이 시스템의 폭력이 빚어낸 물리적 잔해라면, ‘소년이 온다’는 국가 폭력이 남긴 정신적 잔해인 셈이다. 두 작품 모두, 망각하려는 사회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죽은 자들의 고통은 끝내 사라지지 않고 산 자들의 세계를 침범하며 존재를 증명하려 한다는 공통의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이 말뚝들 앞에서 사람들이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게 된다는 설정이다. 이 눈물은 이성적 판단이나 감정적 유대 없이 터져 나오는, 집단 무의식 속에 잠재된 부채 의식의 강제적인 표출이다. 즉, 이 죽음들에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우리의 양심은 알고 있었다는 고백과 같다. 이 강제 된 애도는 작가가 현대 사회의 냉소와 무관심에 던지는 가장 강렬한 일침으로 작용한다.
반면, ‘소년이 온다’에서 애도는 이와 달리 훨씬 더 처절하고 능동적인 과정을 거친다. 생존자들은 망각이 곧 배신이라는 것을 알기에, 자신이 겪은 고통을 붙들고 씨름하며 희생자들의 기억을 지키려 한다. ‘말뚝들’의 눈물이 타의에 의해 유발된 죄의식의 분출이라면, ‘소년이 온다’의 고통은 역사적 진실을 지키기 위한 자의적이고 고독한 투쟁에 가까웠다고 읽으면서 느꼈었다. 그러나 결국 두 방식 모두 “너의 죽음은 헛되지 않으며, 우리는 그 빚을 갚아야 한다.”는 동일한 윤리적 결론에 도달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장’은 냉소적이고 불행한 소시민의 전형이다. 그는 말뚝들의 출현을 처음에는 그저 남의 일, 관리해야 할 공공의 문제로 치부했다. 하지만 사건에 깊숙이 휘말리고 자신의 과거와 현재의 부조리함을 깨닫는 과정에서, 그는 비로서 익명의 죽음들과 자신이 분리될 수 없다는 연대의 끈을 발견하게 된다. 그의 변화는 현대의 모든 개인에게 “당신의 냉소가 이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는 경고이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는 희미한 희망의 메시지인 것 같다.
이러한 연대의 가능성은 ‘소년이 온다’에서도 발견된다. 시신을 수습하고, 유품을 정리하며, 서로의 아픔을 보듬는 생존자들의 행위는 비극 속에서도 인간성을 포기하지 않는 가장 숭고한 연대의 기록이다. 개인의 성찰을 통한 관점과 역사적 고통을 공유하는 집단적 연대를 호소하는 차이만 있을 뿐 작가들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같다고 느껴졌다.
나는 지금껏 얼마나 많은 죽음과 고통을 외면하고, 그 위에서 태연히 일상을 영위해 왔는지를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홍과 한강 두 작가는 각자의 문학적 언어로, 망각이 곧 죄악이며, 기억은 고통스러울지언정 반드시 수행해야 할 윤리적 의무임을 역설한다.
과거의 역사적 진실을 잊지 않고 증언하는 용기와 현재 진행형인 시스템의 희생자들을 외면하지 않고 연대하는 윤리적 책임, 이 두 가지 의무를 짊어질 때만이, 우리는 이 고독하고 부조리한 상실의 시대에 비로소 인간 다운 삶을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한강 작가 님의 작품을 떠올리고, 다시 생각나게 했다는 것, 그것 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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