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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어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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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윤서
댓글 0건 조회 810회 작성일 25-12-22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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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어 사전

- 아침달 편집부와 친구들 -



 



『겨울어 사전』은 이름처럼 사전 같지만 전혀 사전이 아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겨울이라는 계절을 단어 단위로 해체하여, 각 단어에 관련된 기억과 감각을 일깨워준다는 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동안 겨울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나에게 겨울은 단순히 한 해의 끝이 아니라, 늘 하나의 전환점처럼 지나간 시간이었다. 계절이 바뀌는 것 이상으로, 삶의 방향이나 상태가 달라지던 시기가 대부분 겨울에 겹쳐 있었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의식하게 되었다.


2019년 겨울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겨울이다. 가장 가고 싶었던 대학교에 합격했고, 그동안의 노력이 보상받는다는 감각을 처음으로 분명하게 느꼈다.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직전, 엄마와 단둘이 다녀온 대만 여행도 그 겨울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그 시기의 겨울은 불안이나 망설임보다는 기대와 확신이 앞서 있던 시간이었다. ‘앞으로도 잘될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마저 자연스럽게 허락되던 시기였다.


2020년 겨울은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코로나로 인해 기대했던 대학 생활은 제대로 시작되지 못했고, 많은 것이 제한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 겨울은 사람으로 채워진 시간이었다. 대학 친구들과 빠르게 가까워졌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하고 싶었던 동아리에 합격했고, 본가를 떠나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며 이전과는 다른 자유를 경험했다. 환경은 불완전했지만, 관계와 경험은 오히려 더 밀도 있게 쌓였던 겨울이었다.


2023년 겨울은 가장 힘들었던 겨울로 남아 있다. 대학 생활 내내 공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았던 동아리가 끝나면서, 갑작스럽게 진로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무엇을 잘하는지보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가 더 크게 다가왔고, 그 과정에서 심리적으로도 많이 흔들렸다. 다만 그 시기에 인턴이라는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되었고, 그 경험을 통해 잠시 숨을 고르며 다른 시각으로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다. 불안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멈춰 서 있지는 않았다는 감각을 얻었던 겨울이었다.


2024년 겨울은 다시 기대가 중심이 된 시간이었다. 대학원 합격이라는 결과를 받아 들고,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가벼웠다. 그동안의 고민이 정리된 것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다음으로 나아갈 방향은 정해졌다는 안도감이 있었다. 그 겨울은 계획보다는 휴식에 가까웠고, 긴장보다는 두근거림이 앞섰다.


그리고 지금, 2025년의 겨울을 지나고 있다. 원하던 공부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 만족스럽고, 실제로 재미를 느끼는 순간도 많다. 그러나 동시에 미래에 대한 불안과 초조함도 함께 존재한다. 이전과는 다르게 결과가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보내는 겨울이기 때문일 것이다. 잘하고 있는지, 이 선택이 맞는지에 대한 질문이 자주 떠오른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겨울이 반드시 확신으로 가득 찬 계절일 필요는 없다는 점을 느꼈다. 이 책 속의 단어들처럼, 겨울은 흔들림과 정체, 기대와 불안을 동시에 품은 시간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상태를 부정하지 않고, 그대로 인식하며 지나가는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 겨울에는 막연히 잘해야 한다는 다짐보다는, 하루하루의 공부와 선택을 성실하게 이어가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조급해하지 않되, 멈추지도 않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 결과를 앞당겨 걱정하기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태도를 갖는 것이 이번 겨울의 목표다.


앞으로의 겨울들도 아마 비슷할 것이다. 어떤 겨울은 확신으로, 어떤 겨울은 불안으로 채워질 것이다. 그러나 『겨울어 사전』이 보여주듯, 겨울은 단일한 감정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각기 다른 단어들처럼, 각기 다른 상태로 존재할 뿐이다. 나는 앞으로의 겨울들을, 반드시 의미를 증명해야 하는 시간이 아니라, 나 자신을 점검하고 정리하는 계절로 받아들이고 싶다.


그런 점에서 책 속 「수상소감」에 담긴 문장이 오래 남았다.


“한 해를 잘 보내고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에 당신이 준 용기를 보태어 나는 더 멀리 가는 사람이 되겠다고. 나는 이 마음을 끝내 다 쓰지는 못할 것 같다. 받는 사람의 이름은 더욱 공들여 쓰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기를.”


연말이 되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고마웠던 일들과 사람들을 떠올린다. 한 해를 버텨낸 것이 전부 내 힘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이 이 시기에는 유독 분명해진다. 나 역시 돌아보면, 중요한 선택의 순간마다 누군가의 말과 기다림, 혹은 조용한 지지가 있었다. 직접적인 도움으로 남은 것도 있고, 시간이 지나서야 의미를 알게 된 것들도 있다.


이 문장을 읽으며, 내가 지금까지 지나온 겨울들 또한 그런 도움 위에 놓여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될 것 같아 자신만만했던 겨울에도, 방향을 잃고 흔들리던 겨울에도, 언제나 내 곁에는 나를 앞으로 가게 만든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이 겨울의 끝에서는, 결과를 증명하기보다 그 용기들을 헛되이 하지 않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이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이번 겨울을 지나며 나는, 더 빨리 가겠다는 욕심보다는 더 오래, 더 단단하게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누군가에게 받았던 신뢰와 도움을 나 스스로의 태도로 이어가고, 언젠가는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겨울의 용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겨울어 사전』은 나에게 새로운 겨울을 알려준 책이라기보다, 내가 지나온 겨울들을 말로 정리할 수 있게 해준 책이었다. 그리고 그 말들 끝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었다. 이 겨울이 끝날 때쯤, 나는 마음속으로 몇몇 이름을 다시 불러보고 싶다. 그 이름들을 공들여 떠올리는 것으로, 다음 겨울을 향한 나의 다짐을 대신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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