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위한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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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한민국 정치에는 청년이 사라진지 오래다. 여기에 두 가지 의미를 두고 싶은데, 우선 말 그대로 생물학적인 나이로서의 청년이 없어졌다는 것,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그들을 위한 정치가 실종됐다는 것이다. 청년들의 비정규직 문제서부터 실업, 결혼, 그리고 주거 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 세대가 처해 있는 상황은 좋지 않지만, 우리나라 정치는 그 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없어 보인다. 그 이전에 관심조차 없어 보인다. 그래서 굳이 정치에 한정하지 않더라도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청년이 사라져가고 있다.
항상 봐왔던 그림이지만, 평소에는 외면하다 선거철이 되면 각 정당에서는 번지르르한 말로 청년들을 현혹하기 시작한다. 미사여구를 들여가며 자신들이 무슨 엄청난 당근을 줄 것처럼 포장하는데, 그 중 누구들은 투표가 세상을 180도 바꿀 것처럼 과장하기도 한다. 그런다고 사실 무엇이 달라졌다고 할 수 있으며, 또 무엇이 달라질 것인가? 청년 몫이라는 명목으로 마치 대단한 선심 쓰듯 의원 자리 몇 개 떼어준 게 전부이다.
이번 20대 국회로 입성한 여야 최연소 국회의원들의 나이를 보면 어디는 77년생, 다른 곳은 86년생, 또 다른 곳은 83년생이다. 우리 세대를 조금이나마 대변해보겠다고 판에 뛰어든 패기가 감사하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과연 그것이 얼마나 effective할까라는 의문이 앞선다. 일단 이들의 역량에 대한 의문이 가장 처음이겠다. 체계적으로 정치 수업을 받는 유럽 정당과는 달리, 아무런 과정도 거치지 않은 이들이 갑작스럽게 무언가를 이룰 것이라는 기대 자체가 사실 어불성설이다. 그 외에도 그들의 정체성 등의 다른 관점에서의 의문들도 많다. 이러한 비관적인 의문들의 시작은 사실 이들이 힘을 쓸 수 있는 판이 없다는 현실에서 시작한다.
이번 제20대 국회의 평균 연령은 55.5세다. 역대 최고령 국회. 고령화가 심각해졌다고 국회도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인가. 이름쓰기 무섭긴 한데, 76세 김종인 비대위 대표, 74세 박지원 원내대표, 73세 서청원 의원, 그리고 71세 문희상 의원까지. 원로의 위치로 물러나셨어야 할 어르신들이 오히려 전면에 계신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들에 대해 개인적인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고, 또 한편으로는 당을 좌지우지하며 노장의 불꽃을 불태우고 있다. 물론 정치에는 정년이 없다지만, 사실 뭔가 묘한 인상을 주는 건 틀림없다.
물론 사고의 나이가 중요하기에 생물학적 나이는 전부는 아니다. 버니 샌더스는 자신이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건강하다는 진단서를 내미는 웃기면서도 낯선 상황을 연출했지만, 그보다는 사실 그의 사고가 매우 젊었었다는 것이 결정적이다. 그런 버니 샌더스가 제시한 최저임금, 혹은 공립대학 무상교육 등의 진보적인 정책들은 미국의 2~30대로부터 큰 지지를 받기에 충분했다.
그렇다면, 우리 할아버지들에게도 과연 샌더스가 보여줬던 진보적인 사고가 보이는가? 우리 할아버지들은 과연 청년을 위한 정책들을 감지할 수 있을까? 젊은 감각이 느끼고 시대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 시대는 흐르고 세상이 변화하고 있으니, 시대정신을 가지고 전 세대를 아우르며 소통할 수 있는 센스를 가진 분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나는 그래서 대한민국 정치에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진보가 됐건 보수가 됐건 여야를 통틀어 대한민국 정치에서 청년은 실종됐다. 외국의 경우처럼, 양당 체제를 무너뜨린 젊은 대표나, 정권교체를 이뤄낸 젊은 총리 같은 영향력 있는 젊은 지도자를 경험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지만, 식지 않는 야망으로 가득 찬 할아버지들이 왕성한 욕망을 드러내고 있는 우리의 정치 현실에선 아주 요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앞서 말한 것 처럼, 경험이 적은 청년들보다 오히려 시대감각을 가진 샌더스와 같은 할아버지가 있다면 그 또한 반길 일이겠다. 그렇지만 꼰대가 아니고선 살아남기 어려운 이 조선 사회에서 그런 할아버지가 있길 기대하는 것도 사실 우스운 일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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