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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두고 읽는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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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충선
댓글 0건 조회 5,570회 작성일 16-09-09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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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두고 읽는 니체

사이토 다카시 지음/이정은 옮김


누구나 자기 미래의 꿈에 계속 또 다른 꿈을 더해나가는 적극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현재의 작은 성취에 만족하거나 소소한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다음에 이어질지 모를 장벽을 걱정하며 미래를 향한 발검음을 멈춰하는 안 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 자신을 하찮은 사람으로 깎아내리지 마라. 그런 태도는 자신의 행동과 사고를 꽁꽁 옭아매게 한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라. 지금까지 살면서 아직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을지라도 자신을 항상 존귀한 인간으로 사랑하고 존경하라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 결코 악행을 저지르지 않고 누구로부터 지탄받을 일도 저지르지 않는다. 그런 태도가 미래를 꿈꾸는 데 있어 가장 강력한 힘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마라. <이 사람을 보라>

자기의 영혼 속에 존재하는 영웅을 외면하지 마라. 더 높은 곳을 향한 꿈의 이상을 아주 오래전의 일이었다며 그리운 듯이 말하지 마라. 살면서 어느 사이에 꿈과 이상을 버리게 되면, 그것을 말하는 사람을 비웃게 되고 시샘으로 인해 마음이 어지러워진다. 그러면 발전하겠다는 의지나 자기 자신을 극복하겠다는 강고한 마음 또한 버려지게 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신은 죽었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니체의 철학은 어떻게 하면 인간이 신의 존재에 의존하는 나약한 모습에서 벗어나 스스로 완전하게 될 수 있는 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후 세계에 의존하여 현실의 삶에 충실하지 않은 기독교인들을 비판하고, 끊임없이 혼돈을 창조하고 그것들을 극복해 나가면서 향상되는 모습을 가진 것이 바로 완성된 인간인 '초인'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니체의 사상은 왠지 모르게 이십 대 초반 지겹게도 읽어 왔던 보편적인 자기개발서와 유사한 점이 있다. 스스로의 한계를 정하지 말라! 현재의 모든 상황은 긍정적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열심히 노력하기만 하면 극복할 수 있다! 라고 외치는 이 자기개발서들의 문구들을 나도 항상 마음에 새기고 감명받았던 때가 있었다.

  중고등학생 시절 나는 주변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공부 잘 하는 아이' 였다. 다니던 고등학교는 그 지역내에서는 알아주는 과학 특성화 학교였고, 그 학교에는 나와 비슷한 아이들 수십명이 모여 여러 선행 과목들을 공부하고 있었다. 그 시절에는 원대한 꿈도 가지고 있었는데, 어떤 분야에 진출하던지 세계에서 알아주는 전문가가 되어서 수만명의 사람들 앞에서 강연을 하면서 나를 영화롭게 하신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것이었다. 주변의 많은 아이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속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하는 목표를 세웠고, 주변 사람들과 학교는 (어쩌면 세뇌일지도 모르는) '너희들은 우리나라를 이끌어나갈 인재들이야' 라는 말로 그 꿈들을 꾸준히 독려했다. 그 때에는 정말 주어진대로 공부만 하면 그리고 시험점수를 잘 받고 아는게 많은 척을 하면 미래가 창창한 아이로 인정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내가 머리와 가슴 속에 그려나가던 꿈들이 이대로 나아가기만 하면 금방 손에 잡힐 것만 같았다. 

  대학에 진학하고 세상에 대해서 조금씩 알고나서부터, 이러한 내 인생에 대한 막연한 낙관적인 시각들과 환상들은 조금씩 깨져나가기 시작했다. 주변엔 고개만 돌리면 나만큼, 아니 나보다 훨씬 더 똑똑한 사람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고 내가 꿈꾸던 자리에 올라갈 수 있는 사람은 그들 중에서도 극소수에 불과했다. 설상가상으로, 우수한 인재라고 평가받던 동료들이 삶을 비관하고 현재를 힘들어하며 연달아 자살하는 일이 학교 내에서 몇 년이나 계속되었다. 이런 시간속에서 내 꿈은 조금씩 조금씩 희미해져 갔고, 어떤 의미에서는 니체의 사상과 일치하던 항상 향상심을 가지고 더 높은 위치를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는 어린시절의 가치관 역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평생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압박감 속에서 더 높은 위치, 더 큰 명성, 더 많은 지식을 얻기 위해서 끊임없지 자신을 몰아세우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아니면 발전이 더디거나 돈을 좀 덜 벌더라도 현재의 모습에 만족하면서 조금이라도 편안한 삶을 사는 것이 더 나은 삶일지에 대한 심각하게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한 때 오랜기간 베스트셀러였던 '아프니까 청춘이다' 라는 책이 있다. 서울대 김난도 교수님이 쓰신 책인데, 청년의 삶 가운에서 역경들을 극복함으로써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내용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고 삶의 지침을 세울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감명받은 사람 만큼이나 책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이는 엘리트 법조인 부모를 둔 명문고-명문대 출신에 실패한 것이라고는 서울대 교수 임용에서 몇 번 떨어진 것 밖에 없는 저자가 정말로 힘든 청년들의 아픔을 어떻게 얘기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반발이었다. 나는 20대 초반에 공익근무를 우리 동네의 지역아동센터에서 2년간 한 적이 있는데, 우리 동네는 지금까지도 인천에서도 가장 결제와 교육 수준이 떨어지는 동네 중 하나이다. 그곳의 아이들은 아빠가 엄마를 버리고 도망갔거나, 엄마는 있는데 아빠를 찾을 수가 없거나, 혹은 엄마가 아빠가 둘 다 없어서 할머니가 자식 둘을 키우는 식으로 길러진 아이들이다. 월세 10만원 짜리 방에서 아이둘과 엄마 세 식구가 함께 생활하고, 아이들은 중학교에 올라가자 마자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겨우 겨우 월세와 끼니를 마련한다. 실제로 이렇게 힘든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 '향상심'이나 '꿈'이라는 것들은 하루하루의 생존이라는 거대한 벽 뒤에 가려진 추상적인 개념에 불과했다. 이러한 아이들은 니체가 말한 '초인'이 되려면 다른 사람들보다 몇십 배, 몇백 배나 되는 노력을 해야하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제자리로 돌아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누군가에겐 꿈과 자기의 영혼 속에 존재하는 영웅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라는 니체의 철학은 현실의 벽을 더 크게 보이도록 만들 수 있다. 깨어 있는 모든 시간동안 향상되기 위해 노력하며 꿈을 향해 나아가는 하루는 존귀는 하루이지만,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하루를 보내고 지쳐서 잠자리에 드는 하루는 존귀한 하루가 아닌 것인가. 물론 니체가 말한 끊임없이 향상심을 가지고 노력하며 나아가는 인생은 그 자체로 멋있고 가치있는 인생이며, 실제로 수십억 중에 일부는 초인에 경지에 도달할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삶의 보편적인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불과 24세에 나이에 대학교수로 부임할 만큼 똑똑하고 부족함 없던 철학자의 머리에서 나올 수 있는 지나치게 이상적인 생각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우리의 삶은 스스로가 선택하는 것이고 그 선택에 후회가 없다면 그것이 스스로에게 가장 나은 삶이지 않을지,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한 옳고 그름에 대한 타인의 판단은 조금 교만한 것이 아닐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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