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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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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중건
댓글 0건 조회 5,783회 작성일 16-09-03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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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TH, 죽음이란 무엇인가’

 

언젠가 아버지가 해주신 말씀이 기억난다. 이제는 살아왔던 날보다 죽을 날이 더 가깝고, 그러니 이제는 어떻게 죽을지를 생각하게 된다고… 우리 모두는 살아있으며, ‘반드시’ 죽는다. 그렇기에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찾아올 죽음이란 상황에 대해 한번쯤은 고민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고민과 번뇌는 보통 ‘오늘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자’같은 식의 큰 성찰 없는 피상적인 결론에 도달하기 십상이다. 또한 죽음의 직접적인 후기 라는 것은 있을 수 없기에,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추상적인 해석이나 종교적인 해석에 좀 더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예일대 셸리 케이건 교수는 죽음에 대해서 철저하게 논리적인 접근을 통해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해본다.


저자는 먼저 ‘삶이 끝난 후에도 삶이 계속되는가?’ 라는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죽음이란 삶의 끝을 의미하며, 이러한 관점에서 위 질문은 곧 사후의 삶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과 일맥상통한다. 저자는 이에 대해 아니라 라는 입장을 보인다. 인간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이 존재하는데, 육체와 영혼의 두가지 요소로 이뤄졌다고 보는 이원론과 인간은 특정한 형태의 ‘물질적’ 존재에 불과하다는 물리주의가 있다. 저자에게 인간이란 그저 육체적인 것일 뿐, 그 이상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며 이원론을 반박한다. 이러한 사후 세계에 대한 명확한 부정은 종교적인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지극히 불편한 것이지만, 저자는 그 어떤 종교적 입장도 벗어나 오로지 철학적 고찰로서 죽음이라는 난제를 풀어나간다.


저자의 주장에서 굉장히 흥미로운 점은 인간을 일종의 복잡한 기능을 가진 기계에 비유한 것이다. 보통 인간이 느끼는 감정과 다양한 사고는 인간이기에, 생명체이기에 가능하며 이러한 것들은 육체를 넘어선 영혼이 있기 때문이라 여기지만, 저자는 이러한 것들이 과연 기계들이 하지 못하는 것인지 이야기한다. 최근 딥러닝의 위력을 보여준 알파고의 존재는 이러한 저자의 주장을 일부 뒷받침해준다고 볼 수 있다. 저자에게 인간의 죽음이란 땅바닥에 떨어뜨려 망가진 핸드폰이 동작을 하지 않듯이, 우리의 육체가 동작하지 않는 상태를 나타낼 뿐이다.


이렇게 사람과 죽음에 관한 정의를 내리고 나서 저자는 이야기 한다. ‘죽음 이후의 삶은 없고,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바로 이번 생에서의 시간뿐 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일생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결국 ‘죽음이란 무엇인가’ 라는 책을 통해 저자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두고 그것에 빠져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곁에 두고 의식하면서 우리의 현재 삶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 후 저자는 다양한 질문을 통해 죽음의 본질로부터 삶의 의미를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논의한다. 그 중 가장 인상깊은 질문은 우리가 죽음을 바라보는 대표적 시각인 ‘죽음은 나쁜 것인가?’라는 의문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으며 거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동안 내가 막연하게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졌던 것은 단순히 ‘나’라는 존재가 사라진다는, 그 자체가 싫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저자는 죽음 이후에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을 더 이상 영위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죽음 뒤에 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삶이 내게 선사하는 모든 ‘좋은’ 것들이 결핍되는 것이다. 살아있으면 얻을 수 있는 삶의 좋은 모든 것을 ‘박탈’해버리기 때문에 죽음을 나쁜 것이라고 하는 이러한 ‘박탈 이론’은 죽음이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유일한 근거로 제시된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는 사실에 대해 ‘부정’하거나 ‘인정’하거나 ‘무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죽음에 대한 이러한 태도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정당한 감정인지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나의 죽음을 100세쯤이라 단정짓고 여유를 부리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늘 내일이라도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삶을 소중히 여기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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