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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이 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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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용준
댓글 0건 조회 5,945회 작성일 16-10-01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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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이 될 때 - 폴 칼라니티


 

    죽고 싶다.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가버리고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죽음’이지만, 길을 걷다가도 주변에서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문구다. 그렇지만 이 말을 들은 그 누구도 진심으로 그 사람이 죽고 싶어 한다던가, 누굴 죽일 수 도 있는 위험한 인물이라고 뒤를 돌아 귀기울이지 않을 것 이다. 듣기 거북했던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어느새 새로운 브랜드가 되어버린 대한민국 사회에서 저승사자는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이 아닌 듯 하다. 오직 믿을 것이라곤 몸뚱아리 하나 뿐인데, 일에 치여 사람에 치여 절망 뿐인 울타리에 갇혀 언제 압사당할지 모를진데 그 마저도 내 앞에 놓여진 길은 뾰족한 자갈밭이고 저 멀리 보이는 미래는 어두운 터널이니, 습관처럼 그런 말을 반복하게 되는가 보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는 혹한의 눈보라가 치는 설원에서 마치 한 줄기 빛이 뿜어져나오는 따뜻한 출구로써 죽음을 인식하게 되어버리는 것일까.

 

    나에겐 ‘죽음’과는 절대 동떨어 질 수 없는 저 멀리 한 켠의 기억이 있다. 이름도 희귀한 담낭암으로 병상에서 오랜기간 죽음의 고통을 느끼시면서도 끝끝내까지 손자의 이름을 기억해주시고 차가운 손으로 내 볼을 어루만져 주시던 할아버지를 눈물이 앞을 가려 두 눈을 조금이라도 더 바라보지 못해드린 점이 아직도 후회스럽다. 끝까지 아들, 딸들에게 손자, 손녀들에게 오히려 자신이 위로를 해주시던 그는 어릴적 철없던 나를 영적으로 한 단계 성장시켜 주었다. 이러한 나에게 ‘죽음’은 개인의 행복과 가족의 행복을 한순간에 앗아가며 그 사람이 속해있는 집단 전체의 오랜 계획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리는 무시무시한 존재로써 각인되어 왔다.

 

    이런 나의 생각은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이 될 때’ 라는 한 권의 책으로 일목요연히 정리가 될 수 있었다. 서른 여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그것도 인생의 가장 찬란한 정점을 맞이할 순간에 갑자기 죽음의 그림자가 짙어졌으면서도 죽음을 앞둔 자의 자기 연민이나 비애는 전혀없이 오로지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비록 얼마남지 않은 시간이라 해도 끊임없이 존재의 의미와 가치의 탐색과 구현을 멈추지 않고 타인에 대한 더 큰 사랑으로 승화시켜나가는 여정은, 조금이나마 장난스러워질 뻔한 날 한없이 숙연하게 만들었으며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죽음을 바라보는 한 때의 나의 태도가 편협하고도 이기적인 견해게 그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이것은 폴 칼라니티가 의대생 시절, 너무나 무신경한 태도로 카데바를 해부했다가 지도 교수님의 슬픔과 분노를 자아냈던 순간과 같았다. 그는 거기서 비로소 자신이 타인의 죽음을 너무나도 쉬이 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의학은 그 대상이 설령 시신이라고 해도 어디까지나 한 인간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을 깊이 자각한다. 그들을 똑같은 인간으로 대한다는 것은 저자가 시신을 해부하다 위장에서 우연히 보게 된, 분명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 먹었을 모르핀 알약 두 정처럼 그들에게도 자신과 똑같이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행복한 삶이 있었음을 아는 일이다.

 

“나는 환자의 뇌를 수술하기 전에 먼저 그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정체성, 가치관, 무엇이 그의 삶을 가치있게 하는지, 또 얼마나 망가져야 삶을

마감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지. 수술에 성공하려는 헌신적인 노력에는 큰 대가가 따랐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불가피한 실패는 참기 힘든 죄책감을 안겨주었다. 이런 부담감은

의학을 신성하면서 동시에 불가능한 영역으로 만든다. 의사는 다른 사람의 십자가를 대신 지려다가

때로는 그 무게를 못 이겨 스스로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그의 삶에 깊히 침전하다보니, 죽음이라는 것이 삶에 있어서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를 똑똑히 체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죽음의 무게가 죽음만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실은 하나의 반향에 불과했다. 삶을 그만큼 무겁게 대했기에 반사 작용처럼 죽음마저 무겁게 된 것이었다. 바로 그것을 폴 칼라니티가 내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가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하려 했던 것은 자신에게로 성큼 성큼 다가오는 죽음만큼이나 삶의 무게 역시 막중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같은 생각이 가능한 것은 물론 폴 자신이 경험한 많은 죽음의 영향 때문이었지만 그래도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 따로 있었다. 그것은 대표적으로 저자 자신에게 환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결정적으로 알려준 한 의사의 말로 나타났다. 그는 이제 막 암을 선고 받은 환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아는 건, 그리고 물론 당신도 잘 알겠지만, 당신의 삶이 이제 막, 아니,

이미 변했다는 겁니다. 앞으로 기나긴 싸움이 될 거예요. 남편분도 잘 들으세요.

서로를 위해 자기 자리를 잘 지켜줘야겠지만 필요할 때는 충분히 쉬어야 합니다.

이런 큰 병을 만나면 가족은 하나로 똘똘 뭉치거나 분열하거나 둘 중 하나죠.

그 어느 때보다 지금 서로를 위해 각자의 자리를 잘 지켜야 해요.”

 

    저자는 설령 시한부 생명이라 할지라도 환자의 삶은 정상적인 삶의 추락 혹은 종막이 아니라, 그저 이전과 다른 삶으로의 변화라는 것을 하나의 모토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런 태도는 폴 자신이 환자가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자신의 삶이라는 책 전체가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나는 나 자신의 죽음과 아주 가까이 대면하면서 아무 것도 바뀌지 않은 동시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는 사실’로 받아들였고,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순회 방문객과도 같지만, 설사 내가 죽어가고 있더라도 실제로 죽기 전까지는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라며 각오를 다졌다. 바로 이것이었다. 삶의 긍정. 지속을 포기하지 않는 신념. 바로 그것이 죽음마저 새롭게 보도록 만들고 있었다. 질환과 죽음은 더이상 단절이 아니라 삶의 다른 가능성을 열어주는 계기 혹은 기회가 되었다. 육체적인 한계로 글로 남길 수 없었을 때조자 그는 정신의 힘으로 자신의 육체를 페이지로 하여 아내와 딸에게 전하고 싶은 문장을 표정과 몸짓으로 써 나갔다.

 

“한쪽 팔로 아이의 무게를 느끼고, 다른 팔로 루시의 손을 잡고 있으니 삶의 가능성이

우리 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내 몸의 암세포는 여전히 죽어가거나 아니면 다시 자라고

있을 것이다. 내 앞에 펼쳐진 넓은 지평선에서 나는 공허한 황무지가 아니라 그보다 더 단순한 

어떤 것을 보았다. 그것은 내가 계속 글을 써내려가야 할 빈 페이지였다.”

 

    폴을 통해 비로소 진정한 시야가 열렸다. 나만 있었던 세계는 작고 가벼웠지만 이제 나와 같이 경험을 나누고 격려하며 희망을 걸게 될 사람들을 두루 돌아보며 받아들이니, 세계가 넓고 무거워졌다. 이는 삶에 무게가 생긴 것이다. 저자가 따랐던, ‘삶의 마지막까지 모든 순간을 충실히 채우라!’는 바로 그 명령으로 삶을 살아가야할 의무가 생긴 것이다.

 

    제목의 ‘바람’은 이 책에 투영한 폴의 희망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람 (원본 제목에서는 air)은 누군가의 호흡이 되어 그의 생명을 지속시킨다. 그렇게 자신의 바람으로 우리 모두의 삶이 자신이 늦게나마 깨달았던 것과 같이 영위되어 지길 바라고 있다. 살을 에는 칼바람에 죽음을 쉬이 여기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위한 삶의 무게라 긍정하고, 우리 모두가 서로의 바람이 되어 응원과 희망을 들숨과 날숨으로 나누고 충전하는 사회로 발전하여 더 이상은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제 폴로 인해 진정한 호흡을 하게 된 나도 그와 같은 꿈을 꾸고 노력할 것 이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희망의 호흡이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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