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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보람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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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유진
댓글 0건 조회 6,172회 작성일 16-07-04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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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신조어의 세상이다. 인터넷을 필두로 한 네트워크 서비스가 시작될 때에도 축약어와합성어가 간간히 사용되었었으나, 이제는 그 뿐만 아니라 초성음이나 유래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신조어들이 봇물 쏟아지듯 소개되는 시기이다. 과거에는 이러한 신조어가 유래되었던 커뮤니티 내에서나 그들간의 편의를 위해 내부적으로 사용되어 왔으나, 요즘의 신조어는 문화와 시대의 흐름을 많이 반영하고 있으며 대중들 또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비록 그 신조어가 지니고 있는 본래의 의미가 어떠한 것인지를 떠나서 말이다). 나름대로 인터넷 문화에 익숙하다고 자부하는 나 조차 그 뜻을 알 수 없을 만큼 많은 신조어 중, 2015~2016년을 가장 뜨겁게 달군 신조어는 역시 ‘헬조선’이 아닐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이런 ‘헬조선’이라는 표현이 비하적이고 근래에는 대상을 지나치게 희화하며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사용을 지양하지만, 최근 사회가 더불어 모여 사는 본연의 모습을 유지하지 못한 체 보여주는 갖가지 병폐들에 대해서는 동감하며 이러한 면모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러한 공감대는 획일적이지 않고 세대와 계층에 따라 문제를 제기하는 분야와 그에 대한 원인이 천차만별인데, 노동 계급 사이에서 꾸준히 언급되어온 헬조선적인 면모로는 집단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분위기 또는 열정페이를 들 수 있다.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는 적절한 삽화와 함께 이러한 노동 현실에 대한 일갈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일이 틀에 박혀있지 않듯이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 쓰여야 하는 시간 또한 사람과 경우에 따라 분류하자면 부지기수겠지만, 근로기준법 상 1일 한도 근로 시간을 정해놓고 있으며 이를 넘어 추가 근무를 하는 경우에는 그에 상응하는 급료를 지급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적합한 대가 없이 전체를 위한 개인의 수고를 요구하며 이를 반복적으로 착취하는 경우는 적지 않은데, 이러한 ‘수고’의 근거는 집단의 제도적 또는 금전적 사정 상 ‘불가피하게’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개인을 통해 전체를 형성하여 화합과 발전을 도모하자고 얘기하지만, 그 전체가 무너지면 개인도 버티지 못하기 때문에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자는 대마불사적인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회사가 무너질 경우 생기는 가정과 국가의 경제적 손실을 간과할 수는 없으나, 많은 경우 이를 위기 상황 타파가 아닌 이익 창출을 목적으로 하면서 갑과 을의 관계를 통해 자발적 근로를 강요당하곤 한다. 이러한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를 위시하는 갑을 관계는 사회 초년생에게 더욱 두드러지는데, 한동안 논란이 되었고 아직까지도 쉬쉬하며 이루어지고 있을 열정페이 또는 최저 임금을 예로 들 수 있다. 비단 생계를 위한 벌이라고 할 지라도, 그 안에서 느끼는 보람과 성취감의 중요함은 간과할 수 없으며 일에 대한 자부심을 통해 일의 효율을 증대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계약 상의 노동과는 별개의 것으로, 고용하는 측에서 피고용인에게 기술적인 일 이상의 감정적인 부분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근로 시간을 악용한 이익 창출은 회사뿐 만 아니라 개인 또한 자유롭지 못한데, 할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출근하여 시간을 때우며 근로 수당을 취하는 행동은 급전을 필요로 하는 직장인들에게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예가 보고된 바가 매우 적기 때문인지는 아니면 차기 노동자 후보인 일개 시민으로서 외면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이러한 근로가 공개적으로 문제시되는 것을 본 적은 없다. 상기 무보수 열정페이보다 모든 면에서 국소적이긴 하지만, 이 또한 상호간의 근로 계약을 위반하는 행위 임은 틀림없다.


‘공짜 점심은 없다’ 라는 얘기처럼 세상에 진정한 의미의 공짜는 없으며, 누군가는 반드시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어야 한다. 회사와 개인 모두 순간의 이익에 치중하여 상대를 소홀히 하는 이러한 작태는 그 당시에는 미소를 줄 수 있으나, 보다 큰 사회를 관행이라는 이름 하에서 악습에 찌들게 하고 악순환을 반복함으로써 결국 경쟁력을 잃고 좌초하게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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