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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갈등 해결하기 - 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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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형도
댓글 0건 조회 5,939회 작성일 16-08-02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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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물론 지금도 아주 순수하지만, 예전에 아주 매우 무척이나 순수했던 어린 시절에는 스승의 날이면 당연히 선생님께 선물을 드리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어린이날이면 항상 뭔가를 받았었고, 나 또한 보잘 것 없지만 어버이날에는 색종이로 만든 카네이션을 드렸기 때문이다. 그러니 스승의 날이면 응당 무언가를 드려야하지 않겠는가. 요즘에 문제되는 것처럼 대놓고 흰 봉투를 들이미는 것은 아니었지만, 스승의 날이나 명절 때가 되면 집에서 작게 무언가를 전달해드리곤 했었다. 


         시간이 흘러 촌지가 사회적으로 문제시되기 시작한 이후로도 이것은 어떠한 형태로든 계속 존재해왔다. 그리고 매년 반복된다. 명절은 어김없이 돌아오고, 누구네 엄마들과 아빠, 혹은 본인들은 고민하기 시작한다. 또 선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지만 고민은 비단 주는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사실 받는 사람들도 괴롭다. 이걸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물론 주는 사람들의 대부분의 입장에선 감사의 선의로 간단한 선물을 주고받을 수 있다고 하지만, 이에 대한 사회적 폐해가 훨씬 더 깊으니 아예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예전에 촌지에 대한 한 기사에서는 공무원의 사례를 통해 이러한 간단한 선의의 곤란함에 대해 언급했다. 명절을 맞아 찾아온 가까운 업체사람이 면세점을 통해 샀으니 부담 갖지 마시라며 명품 브랜드의 화장품을 놓고 떠났다고 한다. 결국 완강한 직원을 꺾을 수 없었고, 돌려줄 시기도 놓쳐 아예 선물 받는 공무원으로 소문이 퍼졌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와 같은 상황이 또 불법은 아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공무원 행동령에는 선물비용에 대한 상한액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시행될 예정인 김영란 법을 기준으로 살펴보자면, 식사, 선물, 경조사비에 대한 금액 상한이 존재한다. 또, 실제 가격이 해당 금액을 초과할지라도, 싸게 구입했다는 증빙만 있다면 불법이 아니다. 물론 관청마다 추가적인 다른 기준들을 통해 더욱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으니, 선물 받은 입장에서는 정말 난감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학교에서도 예외는 없다. 선물을 안 줬다가 우리 아이만 홀대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에 학부모와 선생님은 매년 눈치 게임을 한다.


        이런 상황이 계속 발생하는 이유는 명절 혹은 스승의 날과 같은 지정일이 선물을 주는 날이라는 인식이 지금까지 공유되어오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촌지라고 해서 말 그대로 돈 봉투를 건네는 것이 일상적이었지만, 이제 그런 방법보다는 선물을 통해 교양 있게 전달해야 하고, 문제가 되지 않도록 눈에 띠지 않는 방법으로 노련하게 전달되어야 한다. 시대에 맞게 선물을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사람들도 거의 사라졌다. 그냥 은근슬쩍 한번 거절하고, 그래도 주면 어쩔 수 없이 받는 정도랄까. 물론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사실 계속 거절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도 이해가 된다.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값이 비싸면 거절이라도 하겠지.

   

        새로운 법을 통해서 선물 혹은 그 형태를 한 뇌물의 경계를 정해놓는 데에는 정치적인 계산에 의한 타협점이다. 다시 생각해 봐도 고액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은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것일까. 이러한 규제를 추가하여 법망을 아무리 촘촘하게 한들, 구멍은 항상 있기 마련이고 부정과 부패는 그 구멍을 통해 자유로이 활보한다. 만원이 됐든 얼마가 됐든 그것이 상한선이라는 이야기는 그만큼만 주고받으면 괜찮다는 의미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하한선이고, 그 밑바닥은 차라리 박원순 법의 1,000원 이상처럼 선물 자체를 원천적으로 봉쇄하여야 한다. 물론 그러자면 김영란 법이 내수를 위축시킨다는 대통령의 말도 안 되는 발언이나, 한우 축산 농가가 모조리 사라질 것이라는 어떤 정신 나간 기자와 같은 과도한 흔들기를 지양해야 한다. 생각해보면 5만원 가지고도 저리 죽겠다고 아우성인데, 박원순 법이라니.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선물을 전달하는 행위의 배경에는 앞서 말한 감사의 마음보다는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다. 예를 들어, 학교 선생님도 사람인지라 무언가를 받으면 그 아이에게 눈길이 한 번 더 가기 마련이다. 물론 고마움도 있겠지만, 그렇다기보다는 마음의 무게를 덜고자 하는 심리적 반응이리라. 이것이 바로 선물의 효용성이다. 금액의 크고 작음을 떠나 선생과 학부모 사이에 물질이 오가게 되면 신뢰가 깨질 수 있다는 말은 원론적으로 옳은 말일 수도 있다. 선물을 안 해 내 자녀가 미움 받지 않을까하는 걱정보다는 믿음을 갖고 지켜봐 주는 것이 교사의 자긍심을 살려주는 참된 스승의 날의 의미라는 누군가의 말도 옳다. 그렇지만 공허하다. 누구는 주는 데, 누구는 안 준다는 것이 부모의 마음에서 가능하겠는가.


        공직 사회 전반에 박원순 법의 도입이 절실한 까닭이다. 몇 만원은 괜찮다는 느슨한 규제가 아니라 선물은 안 된다는 보다 강력한 규제 말이다. 그렇게 되면 매년마다 이어지는 눈치 게임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그게 마음 편한 일 아닐까?


        약간 벗어나서, 사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법의 테두리에 있는 공기관이 아니라 민간 영역이다. 국민권익위원회가 교육 문화에 대해 밝혔듯, 학원은 민간 영역이고, 심지어는 어린이집도 보육기관이어서 제재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학부모들은 이러한 고민들로 더욱 괴롭기만 하다. 따라서 공기관이건 민간 기관이건 간에 변화의 주체는 스스로임을 인식하여야 한다. 명절에 왜 선물을 주고받아야 할까라는 근본적인 물음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선물을 주지 않아도 누군가 차별받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과, 그리고 그 생각에 부응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는 것이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해결책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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