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라는 남자 - 프레드릭 배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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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 - 프레드릭 배크만
이규섭
진부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작품을 평가 절하 할 수는 없다. 거슬릴 정도로 작위적인 설정이 문제가 된다면 모를까 ‘신선하지 않은’, ‘뻔하디뻔한 스토리’, ‘예측 가능한 전개’ 따위의 수식어로 작품을 일축하며 평론가 비스름한 흉내를 내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기본적인 조건을 갖춘 소설이라면 플롯의 유사성은 저작권의 문제나 작품의 상업성을 판단하는 요소 이상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플롯이 소설의 뼈대가 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나 그것이 소설의 본질은 아니다.
‘오베라는 남자’는 영화화된 베스트셀러라는 명성에 걸맞게 꽤나 많이 쓰였던 설정과 플롯을 가지고 있다. 아내를 잃고 자살을 결심한 강직하고 깐깐한 노인이 주변의 이웃들과 얽히면서 자살 계획이 자꾸만 틀어지고 이내 살아갈 이유를 찾게 된다는 식의 이야기다. 혼자가 더 익숙한 사람이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배워가는 성장드라마, 괴팍함 뒤에 감춰진 따뜻한 마음씨, 사람 간의 정과 삶의 소중함, 마지막에 다다라 위화감이 들 정도로 잘 맞아 떨어지는 전개 등 전형적인 장치로 이용되는 설정들이 모조리 들어 있어서 어떤 사람들은 진작에 이 책을 리스트에서 빼버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람들은 베스트셀러라는 홍보문구를 보자마자 흥미를 잃었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앞서 이러한 장치에 집중하지 않기를 당부한 것이다.
이력서를 쓸 때면 우리는 우리의 삶이란 것이 생각보다 형편없을 정도로 평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어느 정도의 교육을 받았고, 한, 두 개 정도의 소모임을 가지고 있고, 문외한 보다는 잘 알지만 내세우기는 부끄러운 실력의 것들을 취미란에 한두 개쯤 써넣게 된다. 그 틀 안에서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보이기 위에 이것저것 미사여구를 넣어보지만, 애석하게도 다 쓰고 났을 때면 누구의 자기소개서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은 표본이 하나 완성되는 걸 보게 된다. 이 때문에 그 시기에 우리는 두 번째 사춘기를 겪게 되고, 한참을 방황한 끝에야 그 몇 장의 종이쪼가리가 한 사람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안에는 아픔의 기억도, 즐거움의 기억도, 분노의 기억도, 슬픔의 기억도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비록 그것은 나 이외에 어떤 사람에게도 필요 없는 것들이지만, 그러한 것들이야말로 한 사람의 인생에 중요한 것들이며 그 사람을 구성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오베는 깐깐한 사람이다. 사람들은 그를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다른 사람과 많은 교류를 하지 않고, 그게 그들이 알 수 있는 오베에 대한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이걸로 우리는 오베라는 남자에 대해 알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오베가 그의 아버지를 존경했던 남자였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은 모른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그러하듯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이는 남자였고, 엔진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었으며, 다른 차가 아닌 ‘사브’를 타는 사람이었다.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함께 살았지만, 존경하던 아버지마저 어린 나이에 여의고 만다. 그의 깐깐하고 원칙주의자 같은 성격은 그가 바라본 아버지의 모습이 영향을 준 것이다. 여기서 “아, 오베의 성격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었구나.”하고 깨닫게 되지만 이것 역시 그의 전부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깐깐한 성격과 몇 가지 특징이 그의 본질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베는 시 계획 부지에 아버지가 물려준 땅을 지키기 위해 처음으로 그가 ‘하얀 셔츠 입은 사람들’이라 부르는 자들(시의 공무원들)과 싸우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평생에 걸쳐 그들과 싸우며 그들을 이길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아내가 사고를 당하고, 그녀가 설 자리가 좁아질 때마다 더 처절하게 그들과 싸우면서 그들에게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그는 자기 아내를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런 몇 개의 문장과 몇 개의 사건으로는 여전히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책 전체를 읽고, 책 속에 드러난 사건들과 그 너머의 사건들 그리고 그 감정을 공유했을 때 비로소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게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났을 때 내가 읽은 이야기 속의 인물은 다른 어떤 사람도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비슷한 이야기의 다른 흔한 소설 속의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분명 오베 일수밖에 없었다.
만약 뻔한 이야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책을 펼치고 첫 장을 보고 마지막 장을 본 뒤 책을 덮으면 된다. 부족하다 싶으면 요약정리라도 보면 될 일이다. 책의 인물은 반드시 우리와 닮은 인물일 필요가 없고, 무언가를 상징하고 있는 인물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주변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지 않는 이상 그의 인생을 안다고 말하기 어렵다. 우리는 자신의 인생만을 온전히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소설 속의 인물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가상의 인물일지라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인생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책을 덮은 순간 나는 ‘오베’라는 또 한 사람을 새로이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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