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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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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규섭
댓글 0건 조회 5,506회 작성일 16-08-31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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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전

이규섭

 

  사전은 가장 인기 없는 종류의 책 중 하나일 것이다. 전자사전에 밀린 바 있고, 그마저도 스마트폰으로 거의 대체된 상태다. 이 수요들조차 대부분 외국어 학습을 목적으로 한 이중언어사전에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사전들은 단순히 서로 다른 두 언어의 단어를 매칭시켜주는데 그칠 뿐이다. 하지만 국어사전은 다르다. 특정 언어로 된 단어를 그 언어를 이용해 설명하는 것. 영영사전을 사용해본 이들이라면 이러한 재귀적인 방식이 얼마나 언어 학습에 어려움을 주는지 경험해본 바 있을 것이다. 결국, 국어사전은 그 언어에 어느 정도 능통한 사람을 위한 사전인 셈이다. ‘사전 = 모르는 것을 찾는데 쓰는 책’이라는 공식이 자연스러운 현대인들에게 국어사전의 소외는 당연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사전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얼마나 편협했었는지를 돌이켜 볼 수 있다. 사전은 ‘모르는 것을 찾아보는 것’을 넘어서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을 명확히 규정하는 것’으로 보다 넓게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단어의 정의를 생각하며 말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러나 한 권에 사전에는 사소한 단어 하나까지 그 의미를 정의하고 있다.

  행복한 사전은 한 사람의 성장기임과 동시에 사전 편찬자의 삶을 다루고 있다. 사전을 만드는 데 있어 편찬자의 직관은 매우 핵심적인 요소이다. 사전은 기존의 사전을 주재료로 이용하지 않는데, 이는 이전 사전의 오류를 이어받지 않기 위함이다. 즉, 단어의 의미를 포함하는 수많은 문장들, 이를 분석하여 그 의미를 뽑아내는 작업을 모든 단어에 대해서 진행한 것이 사전이다. 최근에야 더욱 정확한 제작을 위해 전산학과 통계학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사전을 만드는 것은 대작업이며, 그 과정은 수백, 수천 번의 망치질을 거듭하는 장인의 그것과 유사한 것이다.

  언어는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수단이며, 하나의 도구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주인공 마지메의 삶을 좇다 보면, 반대로 언어의 의미를 찾아가는 삶을 사는 것도 하나의 인생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살아가다 보면 잘 알지 못하는 것을 당연히 알고 있다고 여기며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누가 ‘오른쪽’을 오른쪽이라는 단어 없이 설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겠는가. 그러나 이처럼 당연히 여기던 것들의 의미를 그 단어 이외의 것으로 메우려는 시도를 반복하다 보면 우리가 지나쳤던 것들의 의미를 유기적으로 연결하게 되고, 보지 못했던 단어들 사이의 복잡한 관계, 그 새로운 생태계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언어가 어디서 비롯하였는지에서 알 수 있듯, 그 생태계라는 것은 결국 다시금 우리네의 삶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이라는 표제어를 맡게 된 마지메가 한 사람을 사랑하는 모든 감정을 겪는 동안 그 정의를 바꾸어 가는 것처럼. 그리고 그 끝에서 비로소 만족할 만한 사랑의 정의를 내놓게 되었듯. 단어에는 여러 삶의 경험들이 녹아 있다. 마지메는 아마도 그러한 것들을 알아가는 기쁨에 오랜 기간 사전을 제작하는 고된 일을 멈추지 않았을는지 모른다.

  모두가 의미 있는 일에만 혈안이 되어 별 의미 없는 일에 삶을 소모하는 시대다. 정신없는 요즈음, 잔잔한 분위기와 함께 또 다른 형태의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엿볼 수 있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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