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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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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유진
댓글 0건 조회 5,412회 작성일 16-09-01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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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영화나 소설을 대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각색에 따라서 왜곡된 내용을 사실인양 받아들이기 쉽기 때문이다. 특히 역사 중 특정한 인물이나 단체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 드라마틱한 서사시의 형태로 과장되게 이야기를 서술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이론물리학자를 핵물리학자로 둔갑시키고 비운의 애국자로 묘사한 한 소설의 경우 해당 인물에 대한 인식을 크게 왜곡되었으며 이로 인해 아직도 소설의 내용이 사실인 줄 아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이러한 각색이 뭐가 문제가 되겠냐는 목소리도 있을 법 하지만, 단순한 과장을 떠나 비약 가득한 수사는 거짓이나 마찬가지이며 한 나라의 역사와 관련될 경우 역사 왜곡이라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내가 알고 있는 덕혜옹주는 대한제국의 황녀로서, 광복을 위해 헌신했다는 이야기를 접해본 적은 없기 때문에 일제의 간섭에서 벗어나 조권을 복권하기 위해 분투하는 것처럼 보이는 영화 <덕혜옹주>에는 흥미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덕혜옹주>의 각색은 이러한 역사 서사보다 비극적인 황녀의 개인적인 이야기에 주목한다.

 

 덕혜옹주는 고종황제의 늦둥이 고명딸로서 행복한 유년기를 보내지만, 불의의 사고로 고종이 붕어한 뒤 일본의 앞잡이로 행동하며 자신의 권력을 확고히 하고자 하는 대신들에게 반감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스러져가는 제국의 옹주에 불과한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고, 대한제국의 다른 황족들이 교육 또는 일본 귀족들과의 혼인을 이유로 일본으로 향하였듯이 마찬가지로 황녀 대우를 빙자한 볼모 신세로 일본에 끌려간다. 일본에서의 생활은 우울 그 자체로, 간간히 들려오는 고국 소식에 근심하면서도 돌아가고 싶다는 일념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이후 대한제국의 명을 잇는 독립국의 얼굴로서 활동 하겠다고 다짐하며 독립 운동가들과 함께 일본 탈출을 계획하지만, 이 탈출은 황족으로서 조국에 대한 책무를 다하기보다 일제의 손을 벗어나 그리운 이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개인의 소망이 많이 비추어 진다. 이런 점은 동일한 시기에 망국의 황제로써 만주국의 부흥을 꿈꾸었던 푸이 황제와 유사함을 보이는데, <마지막 황제>의 푸이는 만주국을 건국하고 국가 부흥을 꾀하지만 열강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황제로서의 책무를 행한다기보다 만인지상의 위엄을 되찾기 위한 개인적 열망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개인적인 감정을 바탕으로 하는 이들의 행동은 왕실의 일원으로서 무책임한 것으로 보일 수 있으며 그 역사적 책임을 소홀히 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전근대적 사상이 팽배하던 시기의 일개 옹주로써 국내외 영향력이 전무 하다시피 했던 덕혜옹주로써는 상황을 타파하기 위한 노력조차 시도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면에서 실제 황제의 자리에 올랐으며, 현 중국 입장에서 괴뢰 정부 수립에 일조한 전범으로서의 평가 또한 존재하는 푸이와 동일선상에서 평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개인적으로 역사, 특히 근현대사에 대한 지식이 매우 얕기 때문에 내가 알고 있는 역사가 학계에서 주류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객관적인 내용인지 알지 못하며, 이와 맞물려 영화에서 나타나는 모습들이 실제와 얼마나 일치하는지도 쉽게 비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의 이야기에서 흔히 나타나는, 불타는 애국심에 의한 과도한 영웅 서사시가 아니라 그러한 국내외의 혼란 속에서 방황하는, 황녀라는 남들보다 조금 특별한 개인의 비극을 큰 역사적 왜곡 없이 그려냈다는 점이 오히려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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