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olumn

  • Home
  • Cultural Activity
  • Culture Column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김선진
댓글 0건 조회 5,987회 작성일 16-06-07 23:06

본문

6월 6일은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애국 선열과 국군 장병들의 넋을 위로하고, 충절을 추모하기 위한 날 바로 현충일이다. 서울 국립 현충원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를 비롯하여 많은 국민들이 순국선열들의 넋을 기르고자 현충원으로 향하고 혹은 일제치하의 역사, 6·25전쟁의  뼈아픈 역사를 다시 한번 되짚어보며 국가와 민족의 중요성을 마음 속에 되새겨본다. 현충일이 가까워지는 시점 우연치 않게 중국학회 참석 후 상해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아침부터 숙소창가에 내리는 보슬비 소리와 도로를 오가는 자동차의 경적소리에 일찍이 잠에서 깼다. 방송매체를 통해서만 접했던 임시정부를 직접 찾아간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 켠이 무거웠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상해 신천지 거리를 잠시 걸으니 거리 왼쪽 한 켠에 새겨진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 표지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초라한 붉은 벽돌의 건물은 신천지 거리 주위의 나즈막한 주택과 별반 차이가 없어 어느 누구도 한 나라의 정부건물이라 생각지 못 할 것 같았다. 티켓부스에서 중국인으로 보이는 사람에게서 티켓을 끊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에서 중국인이 장사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불쾌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상해 임시정부는 중국 상해시 황포구 구청에서 관리하는 관광지였다. 우리나라에는 소유권도 없고, 관리할 권한도 없고 그냥 역사적 관광지였던 것이다. 건물의 내부는 다락방 규모로 매우 작았고, 임시정부 요원들이 일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최소한의 책상과 침상들이 겨우 놓여져 있었다. 특히 1층에 자리잡고 있던 5평가량의 부엌은 창고인지 부엌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초라했다. 그래도 한 나라의 정부건물인데 일개의 개인주택 보다 못한 시설들을 보면서 일제치하의 상황에서 꺼져가는 국운의 불꽃을 어떻게 해서든 살리기 위한 조상들의 간절함이 그대로 전해졌다. 임시정부 건물 내에는 임시정부의 역사 및 요원들의 활동에 대한 내용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일제탄압을 피해 수 차례 터를 옮겨야 했던 임시정부의 역사가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다.


1932년 4월 29일 홍커우 공원의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계기로 임시정부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겨우 마련한 임시정부 건물마저도 일제의 탄압을 피해 항저우(1932), 난징(1937), 창사(1937), 광저우(1938), 류저우(1938), 치장(1939), 충칭(1940) 으로 자리를 옮길 수 밖에 없었다.

임시정부가 난징으로 자리를 옮긴 후 1년이 멀다하고 다시금 중국내륙으로 길을 떠나야 했다. 가정집 주택보다 작은 공간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그마저도 일제는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피눈물의 역사가 서려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유적지에 100년이 지난 지금 두발을 딛고 서있으니 감회가 새롭다. 상해 임시정부는 선열들에게는 조국의 광복을 위해 목숨바쳐 일했던 곳이고, 지금 나에게는 20 위안의 입장료로 구경할 수 있는 관광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나의 자유가 선열들의 피와 희생으로부터 비롯된 것 같아 죄송스럽고 또 죄송스러운 마음이다. 빛 한줄기 겨우 들어오는 좁은 공간에서 선열들이 바랬던 것은 오직 조국광복과 동양평화였다. 100년이 지난 지금, 조국광복의 염원은 이루었지만 민족분단의 현실, 미소중일 강대국 틈에서 여전히 약소국역할을 하는 대한민국을 조상들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최근 들어 나라의 역사, 민족의 역사를 모르는 학생들이 많다. 자신을 낳아주신 부모님의 소중함은 알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 시대를 낳아주신 옛 시대의 조상들은 잊고 지낸다. 옛 역사가 존재하기에 우리 부모님이 존재하고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먼 과거라 그 인과관계를 의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난 역사를 되짚어보면 반드시 그 대가가 뒤따른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순국선열들의 대가를 무상으로 제공 받고 있다. 그들이 감내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가 겪을 수 있는 것들이다. 2016년 6월 6일, 순국 선열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그들이 느꼈던 간절함이 무엇인지를 단 하루라도 생각해보는 날이 되었으면 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