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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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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승윤
댓글 0건 조회 6,037회 작성일 16-07-06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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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하다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최성은 옮김)


 오랜만에 철학적이고 싶어졌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철학적인 척하며 스스로 고상하단 느낌을 받고 싶었다. 바쁜 시간 속에서 완독을 하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시집을 골랐다. 시는 중, 고등학생 시절의 자습서나 해설서 없이 그냥 읽기는 부담되니 유명한 사람을 찾아봤다. 마침 최근에 유고시집이 나온 노벨문학상 수상자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집 “충분하다”가 있었다. ‘충분하다’ 아주 멋진 말이다. 곱씹어 생각할수록 멋지고 대단하다. 주어가 무엇이 되었든 “충분하다”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더구나 주어가 없는 “충분하다”는 불특정한 것, 만물을 향한 만족의 표현이다. 안분지족의 삶을 산 것만 같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삶이 그대로 담긴 시집 “충분하다”는 읽기 전부터 제목만으로도 나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저자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는 그 유명세로 인해 그를 설명하는 여러 수식어가 있다. 저자는 ‘존재의 본질을 향한 열린 시선을 고수하며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대상에서 삶의 비범한 지혜를 캐내는 시단의 모차르트’라고 자주 소개된다. 이 설명은 약간 어려운 듯 하지만 쉼보르스카의 시를 보면 단번에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사실 한국인으로서 저자와 같은 문화적 배경을 공유하지 않았기에 느껴지는 어쩔 수 없는 괴리감을 제외하면 쉼보르스카는 동화적, 우화적 비유가 가득한 시를 썼다. 이 같은 비유적 시어의 선택으로 같은 문화권 사람들의 이해가 더 잘 될 뿐, 시는 존재의 본질과 참된 가치를 포착하는 데 주력하기에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어둡다.


 쉼보르스카의 시는 학창시절에 입시 공부를 위해 보던 시들과는 모양새부터 조금 다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시라고 인식하는 것들은 한 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 길이를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그의 시는 보통 몇 장을 넘어간다. 그래서 쉼보르스카는 자기를 능력 없는 시인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그의 시를 몇 가지 소개하고 싶다.


다른 곳은 어떤지 잘 모르겠어,
하지만 여기 지구에서는 모든 것이 꽤나 풍요로워.
여기서 사람들은 의자와 슬픔을 제조하지,
가위, 바이올린, 자상함, 트랜지스터,
댐, 농담, 찻잔 들을.


(중략)


여기서 무지(無知)는 과로로 뻗어버렸어,
끊임없이 뭔가를 계산하고, 비교하고, 측정하면서
결론과 근본적 원리를 추출해내느라.


(중략)


책상 위에는 본래 있던 그대로 종이가 놓여 있고,
반쯤 열린 창으로 한 줌의 공기가 스며들어오지,
벽에 무시무시한 틈바구니 따위는 없어,
혹시 널 어디론가 날려버릴지도 모를 틈바구니 따위는 말이야.          -[여기] 중에서


 책의 첫 번째 시인 “여기”의 첫 번째 연과 중간 부분의 연, 마지막 연이다. 우리는, 특히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 속에서 무엇인가를 바쁘게 만들며 삶을 꾸려나간다. 계속된 발전과 지식의 팽창으로 무지함의 영역은 없어져간다. 저자는 허겁지겁 무지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을 해칠 틈바구니는 없으니 천천히 살길 바라는 것 같다.


단 1초의 낭비도 없이
딱 필요한 만큼만 생각에 잠긴다,
왜냐하면 그 불필요한 1초 뒤에 의혹이 스며든다는 걸 알기에.


존재의 의무에서 해방되는 순간,
그들은 지정된 출구를 통해
자신의 터전에서 퇴장한다.  


나는 이따금 그들을 질투한다,
-다행히 순간적인 감정이긴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있다] 중에서


 저자는 어떤 삶을 사는 것이 좋은 삶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승에서의 해방으로 삶을 탈출되는 순간까지도 마치 해답을 아는 것처럼 효율적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을 저자는 진심으로 부러워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러한 이들을 불쌍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인가. 특정한 삶이 보다 성공적이었다라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저자는 주위를 둘러보며 조금 더 풍요로운 삶을 사는 것이 좋은 삶이라고 말하는 것이리라.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다른 생명을 먹는다.
사망한 양배추를 곁들인 돼지고기 사체(死體).
모든 메뉴는 일종의 부고(訃告).


가장 고결한 사람들조차
죽임을 당한 뭔가를 섭취하고, 소화해야 한다,
그들의 인정 많은 심장이
박동하는 걸 멈추지 않도록.


가장 서정적인 시인들조차 그러하다.
가장 엄격한 금욕주의자들도
끊임없이 씹고, 삼킨다,
한때는 성장을 지속했던 어떤 대상을.


나는 이 대목에서 위대한 신들과 화해할 수가 없다.
혹시 그들이 순진무구하다면 모를까,
그들이 귀가 얇아서
세상을 지배하는 모든 권력을 자연에게 넘겨준 거라면 모를까.
그리하여 광란에 휩싸인 자연은 우리에게 굶주림을 선사하고,
굶주림이 시작되는 곳에서
결백은 종말을 고한다.


그 즉시 배고픔을 향해 모든 감각들이 달려든다.
미각, 후각, 그리고 촉각, 그리고 시각.
어떤 요리를 먹는지,
어떤 접시에 담겨 나오는지 도저히 무관심할 수 없기에.               

 

심지어 청각도 동참한다,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광경 속으로,
식탁에서 유쾌한 대화가 오가는 건 흔한 일이니까.                   -[강요]


 이 시를 공유하고 싶어 책 한 끝을 접으며 읽었던 1독, 시를 타이핑하며 충격을 느끼는 2독, 오탈자 검사를 하며 분노와 좌절, 창피함과 인간의 이중성에 전율하는 3독. [강요]라는 시는 손끝을 저릿하게 할 만큼 충격적이다. 가장 고결한 사람들과 시인들, 금욕주의자들마저도 심장을 멈추게 할 수 없는 ‘사람’이기에 성장을 지속했던 자연의 일부를 도려낸다. 자연의 섭리를 쥐고 있는 신의 결백은 인간의 종말이기에. 아이러니하게 사람들은 이런 거대한 부고의 울림을 듣지 못하고 유쾌한 대화를 한다. 마치 장례식장에서 눈치 없이 히히덕거리는 어린 아이처럼.


 “충분하다”는 인간에 주목한 시집이다. 인간이 느끼는 피로감, 행복, 죽음 등 수많은 무거운 제재들을 생각지 못한 관점에서 충격적인 방법으로 풀어나간다. 시집의 뒷부분은 “충분하다”의 내용이 담긴 시들이 소개된다. 앞서 말했지만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충분하다”라는 말은 정말 멋진 말이다. 오랫동안 세상을 산 노인의 마지막 말로서 충분히 아름답다. 고 김수환 추기경의 유언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겠다.”는 윤동주 시인(서시),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는 천상병 시인(귀천). 비록 마지막 때가 아직은 멀어 보이지만, 앞길은 알 수 없기에, 나는 죽음에 직면했을 때 어떠한 말을 할 것이며 어떠한 말을 할 수 있는 삶을 살게 될 지 기대되는 동시에 비장한 각오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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