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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에드워드 윌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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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재환
댓글 0건 조회 6,008회 작성일 16-07-01 22:38

본문

  지식의 기하급수적 증가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높은 대학진학률,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다양한 방송매체 등 기술과 경제의 성장은 지식의 증대를 가져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간의 지식에 대한 수용능력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이라도 하듯 대학은 학문을 세분화 하여 과를 만들기도 한다. 지식이 쪼개지기(엄밀히 말하자면 지식을 참구하는 방법) 시작한 것은 16세기를 기점으로 한다. 그러다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모든 학문 분야에 통합의 바람이 불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자면, 생물학은 자연사, 유전학, 실험발생학의 세 분야로 나뉘어 발전하다가 진화발생생물학이라는 통합적인 성격을 띤 학문이 등장하게 되었다. 통합, 특히 지식의 통합. 이것이 바로 저자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학문의 모습이다.

 

  책을 읽기 전부터 드는 의문이 있다. 한데 어우린 것을 모으는 단어는 통섭(consilience)이라는 단어 말고도 다양하게 존재한다. 통일, 통합, 일치, 합치 등, 오히려 이런 단어들이 접근하기가 더 좋은 것 같은데, 작가는 왜 굳이 생소한 ‘통섭’이라는 단어를 선택하였을까? 그 이유는 바로 ‘큰 줄기’ 또는 ‘실마리’라는 뜻의 ‘통’과 ‘잡다’라는 뜻의 ‘섭’을 합쳐 ‘큰 줄기를 잡다’, ‘모든 것을 다스린다’. 또는 ‘총괄하여 관할한다’라는 의미로 저자의 의도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저자의 말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렇다. 경제학은 경영학과 연결되어 있고, 의학은 생물학과 연결되어 있고, 생물학은 물리학과 연결되어 있고, 경제학은 다시 물리학과 연결되어 있다. 또한 학문의 세분화는 지식의 활용에도 걸림돌이 된다.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학문 간의 통섭이다. 가령 환경문제는 과학적 관점과 윤리적, 경제적 관점을 종합적으로 적용해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이론을 실제에 적용하면, 그것이 정확하게 실현되지는 않는다. 그 이용을 위해서 여러 관점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단 학문의 실질적 활용을 위해 통섭을 주장하는 저자의 의견도 일견 타당한 면이 있다고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그것은 굳이 통합이 아니더라도 실용성을 확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통섭의 핵심은 학문의 실용성보다도 세분화 된 각 학문을 하나의 학문 아래 모으는 것이다. 저자는 사실에 관한 모든 것을 물리학에, 당위에 관한 모든 것을 윤리학으로 통합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자신의 생각에 기해 저자는 각 장마다 과학과 인문학, 과학과 예술 등을 통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저자의 말에 완전히 반해 버리고 만다. 특히 개인적으로 유전학과 인간 생물학(문화)를 넘나드는 장이 너무 좋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생각을 해보면, 통섭을 주장하는 저자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이 든다. 먼저, 저자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을 보면, 그는 전 학문의 관점을 잘 알고 있는 제너럴리스트로 보인다. 그러나 사실 그는 개미에 관한 연구로 생물학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다. 물론 개미연구 뿐 아니라 섬 생물지리학 이론 및 사회생물학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그의 학문 기반은 생물학, 큰 분류로는 과학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통합학문을 제시하기위한 노력으로 과학과 다른 학문의 개연성을 서술한 부분이 많다. 실제로 인지과학 안에 심리학, 생리학이 통합되고 있고, 과학 통합에 힘을 얻은 저자는 과학과 사회과학, 인문학과의 통합까지도 시도한다. 생물학에서는 권위자임에는 틀림없겠지만, 과학을 넘어서 사회, 인문학까지 접근하는 것은 본인의 역량을 무시한 시도가 아닌가 싶다. 즉, 통섭을 시도한 주체의 학문의 근간에 대한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생물학으로만 통합이 편중되어 있다.)

 

  또한 저자가 서술한 내용은 다양한 학문의 내용을 열거하고 있어, 독자들의 상식수준 향상에는 높은 기여를 할 것으로 예상이 되나, 그것이 새로울 것이 없다는 점에서는 ‘통섭’이라는 단어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과학이 양자물리학에서 시작하여 뇌과학과 진화생물학을 아우른다는 사실은 통섭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그 개연성에 대해서는 알고 있을 것이다. 저자가 통섭의 사례라고 든 것들은, 단순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학문의 개연성에 대해 정리를 한 것에 불과하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시 말해, 작가의 통섭 예시들은 크게 혁명적일 것도 없고 구체적이지도 않는다. 통섭에 대해 개연적인 사례들은 있지만 그것이 필연적이라고 느껴지는 사례는 없었다. 인지 심리학에 뇌 과학, 뉴런의 문제가 다루어지고 연결되는 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저자의 주장이 옳을 수도 있다. 학문의 통합이 실용성에 기여를 하고, 지식을 크게 하나의 줄기로 정리를 하는 일이 또 다른 발전을 위해서 현명한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98년도에 출간된 책이라 약 17년 정도 지난 지금의 학계의 모습이 어떤지는 자세히 모르겠다. 하지만 통합연구를 설명하고 각 장마다 통합을 찬양하는 말로 끝내버린 작가의 주장을 보면 이 통합은 거의 불가능한, 이상적인 방법으로만 그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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