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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루덴스 - 호이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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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규섭
댓글 0건 조회 6,117회 작성일 16-07-03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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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루덴스

-놀이에서 시작된 문화, 놀이를 부정하는 문화-

이규섭

 

인간은 놀이에 강한 끌림을 느낀다. 인간을 “사로잡는” 것이 놀이라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욕구에 항상 목말라하는 존재로써, 인간의 문화 자체가 놀이로부터 기원한다는 호이징하의 견해는 신선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인간사를 돌아보면, 놀이를 규제하는 현상 역시 동반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인간은 놀이적 요소를 끊임없이 생산해 냄과 동시에 왜 놀이를 규제하는 것인가?

인간이 놀이를 규제하는 현상의 가장 대표적인 예시는 금욕주의다. 금욕주의는 영적인 이상이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육체적 심리적 욕망을 억제하는 사조로 그리스에서 시작해 칸트에 이르기 까지 그 영향을 미쳐왔다. 놀이에는 즐거움이 따르는데, 이러한 즐거움은 저급한 차원의 인간 욕망을 억제하는 금욕주의의 사조에 어긋난다. 즉, 금욕주의는 놀이와 인간의 공존을 부정한다. 하지만 종교의 영역에서 놀이의 문화와 금욕주의 사이의 모순성이 드러나게 된다. 호모루덴스에서 호이징하는 모든 종교적 의식에 놀이적 요소가 들어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모든 종교는 어느 정도 금욕주의적 성향을 내포하고 있기 마련이다. 종교 문화의 형성과정에서 바라보았을 때, 금욕주의적 특성을 보존하면서 놀이의 유희적 요소를 유지한다는 것은 모순적이다.

금욕주의의 철학적 사조의 영역 밖에서도 놀이가 부정당하는 문화는 종종 발견된다. 노름 혹은 도박이 그 중 하나이다. 노름은 한국어에서는 놀다에 그 어원이 있다. 즉 노는 것의 직관적 형태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는 호이징하의 놀이에 관한 서술에도 어긋남이 없다. 호이징하는 놀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놀이는 어떤 고정된 시간과 공간의 한계 안에서 수행되는, 그리고 자유롭게 받아들여진, 그러나 절대적 구속력을 갖는 규칙에 따라 수행되는 자발적인 행위 또는 일로서, 그 자체의 목적이 있으며, 또 거기에는 어떤 긴장감과 즐거움이 따르며, "일상생활"과는 '다른' 것이라는 의식이 따른다.

 

노름은 일정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가지고 있으며,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활동이다. 나아가 그 안에 나름의 절대적인 규칙이 있고, 참가자들은 긴장감과 즐거움을 가지고 각자의 역할에 몰입하여 목적을 가지고 임한다. 이처럼 놀이의 특성에 잘 들어맞는 경우가 있을까. 하지만 노름은 사회 질서 유지에 방해되고 기존의 인간윤리에 벗어나는 삶으로 개인을 인도한다는 측면에서 사회악으로 취급된다.

현대 사회에 들어오면서, 개개인이 가지는 잉여시간이 늘면서, 놀이가 여가의 성향을 더 많이 띠게 되고, 유희의 측면에 집중된 놀이 형식들이 늘어나고 있다. 노름 이외에도 단순 폭력 성향의 영화나, 선정적인 영화, 만화 및 게임 등은 놀이의 특성을 충실히 갖추고 있음에도 사회적으로 지탄받고 있다.

개중에는 물론 사회적으로 우대 받는 형태의 놀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왜 인간은 굳이 단순 유희를 따로 구분해 내어 배척하려 하는가? 금욕주의가 표방하는 대로 유희 자체가 인간에게 죄악의 행위이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다만 단순 유희로 취급되는 사회 질서에 문제를 야기하는 특정 놀이들에는 세계의 불편한 단면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앞서 나열한 놀이들은 사회 질서 유지에 방해되고, 개인 삶에 도움이 되지 않지만 그것만으로는 규제되어야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노름도, 게임도, 선정적인 영화도 모두 현실의 일부를 놀이의 틀에서 표현한 것이다. 폭력영화나 폭력성 짙은 게임은 실제 세계의 폭력적인 실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고, 노름과 투자는 관점에 따라서는 한 끗 차이에 불과하다. 놀이는 문화의 기원이며 나름의 형태에 맞추어 현실을 모방한 또 하나의 작은 세계이기도 하다. 이러한 작은 세계에서 드러나는 불편한 단면들이 문화 자체의 질서를 붕괴한다면, 이는 문화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행위이기에 일종의 방어 행위로써 놀이에 대한 규제와 억압이 나타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놀이를 억제하는 문화가 형성된 것은 문화라는 존재의 취약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문화의 취약성은 사실 다른 형태의 놀이들 -문화에 의해 억제 받지 않는 놀이들- 에서도 발견된다. 많은 예술은 문화가 지닌 모순성에서 탄생하며, 이러한 예술들은 때때로 기존의 놀이(문화)에 문제를 제기하며 새로운 놀이(문화)를 제시한다. 문화는 놀이를 만들어 내지만, 놀이는 문화의 약점을 드러내며 이를 바꾸고, 때로는 붕괴시킨다. 인간은 스스로가 그 뿌리를 문화에 두고 있기 때문에 문화의 취약성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놀이를 억제하는 문화의 형성은 충분히 필연적으로 보일 수 있다.

금욕주의적 윤리 의식과 사회질서유지라는 명분하에 많은 놀이들이 규제받아 왔고 일부는 현대에도 규제를 받고 있다. 이런 모순적인 현상은 문화가 스스로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는 단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좀 더 안심하고 놀 필요가 있으며, 이러한 놀이에 대한 억압이 들어올 때 우리 문화의 어떤 취약점이 드러나고 있는지를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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