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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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 - 미야베 미유키
벌써 4년 조금 넘게 지난 일이지만 그 때 친구의 행동은 내겐 충격적이었기에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 때의 상황은 이랬다.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대학교는 수많은 청년들이 그토록 울부짖던 ‘반값등록금’과는 조금은 거리가 있는 학교였다. 아니, 거리가 있는 학교라고 생각했었다고 말하는게 맞겠다. 전대 총장님은 성적순으로 학생들을 줄 세워 거의 반절의 학생에게 엄청난 등록금을 내게끔 했었다. 그 액수 역시 성적이 나쁘면 나쁠수록 더 많이 내게되는 것이었으니, (본인은 개혁이라 할지라도) 학생들에게는 너무나도 끔찍한 제도였다. 최대로 내게 된다면 1년에 1천 5백여만원 가량이었으니 학생들은 부모님께, 가족에게 동시에 두 가지의 불효를 저지르게 되는 셈이었다. 당시 친구는 선배에게 물어 물어 학자금대출이라는 제도를 알게 되었고 한푼 두푼씩 대출을 받다보니 어느새 1천만원이 훌쩍 넘었다고 했다. 함께 출전한 대회에서 꽤나 좋은 성적을 거둬 받았던 상금을 보고서는 대출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다고 좋아서 어쩔줄 모르던 친구의 표정은, 내겐 놀람을 넘어선 충격이었다.
한국장학재단에서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기도 하지만 돈을 빌려주기도 한다. 그리고 며칠 전 안양옥 신임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은 세종시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 자리에서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국가장학금 제도 변경에 대해, ‘앞으로 재단사업에서 국가장학금 비중을 줄이고 무이자 대출을 늘리는 방향으로 가야한다’며, ‘학생들은 빚이 있어야 파이팅을 한다’는 말했다. 물론 말을 하다보면 좋은 뜻이 변질될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발언은 부채로 고통받는 청년들의 고통은 외면하는 무책임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해명은 더욱이 이해할 수 없다. 부유한 경제력을 가진 부모를 둔 대학생들이 과도하게 부모에게 의존하지 말자는 취지였다며, 그들도 다른 학생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하게끔하고 싶었다고 한다. 말씀하시는 그 파이팅을 있게하는 원동력이 학생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졸업을 하고나서도, 직장인이 되고나서도 큰 부담감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과연 이사장까지 되시는 분이 모르는건 아닌가 의심스럽다. 반값등록금국민본부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의 조사에 따르면, 학자금 대출자 중에서 대출채무를 제대로 갚지 못하고 있는 청년들이 2015년까지 약 20만명, 이 중에서 소송까지 당한 사람이 약 1만여명 된다고 한다.
학생들의 빚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대출금 상환 부담으로 인해 청년들은 다급하게 구직을 하게 되고, 이로 인해 개인의 적성을 충분히 발현치 못하게 되어 이는 사회적 손실로도 연결된다. 자연히 결혼 연령은 후퇴하게 되고, 또한 가계 소득 감소로 인한 장기적 내수 침체까지 야기하는 사회 전반적인 문제를 불어올 수 있는 것이다. 한국장학재단에서, 이사장께서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해야 할 책임을 질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적어도 ‘빚’이 아닌 ‘빛’을 주려는 의도정도는 내비춰야 하는게 아닌가. 장학재단의 역할은 학생들이 안정적으로 학업에 정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곳이지 ‘빚’을 늘려주는 역할을 하는 곳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파이팅사태를 접하고 오래전 봤던 ‘화차’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찾아보니 미야베 미유키 작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었다. 극 중 다중채무에 시달려 끝없이 도피를 하던 히로인 세키네 쇼코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뱀은 허물을 벗잖아요? 그거 실은 목숨 걸고 하는 거래요. 그러니 에너지가 엄청나게 필요하겠죠.
그런데도 허물을 벗어요. 왜 그런지 아세요? 목숨 걸고 몇 번이고 죽어라 허물을 벗다보면 언젠가 다리가 나올 거라 믿기 때문이래요. 이번에는 꼭 나오겠지, 이번에는! 하면서.
이 세상에는 다리를 원하지만 허물벗기에 지쳐버렸거나, 게으름뱅이거나, 벗는 방법을 모르는 뱀이 수없이 많다는 거죠. 그래서 그런 뱀들에게 다리가 있는 것처럼 비춰주는 거울을 파는 뱀도 있다는 말씀.
그리고 뱀들은 빚을 내서라도 그 거울을 사고 싶어하는 거예요.’
‘빚’은 정말 ‘빛’의 속도로 불어난다. 가계빚은 1130조원으로 국내총생산의 73% 수준이고, 부동산 담보대출이 이 절반을 넘어선다는 자료로 나왔다. 나라빚도 올해 645조원 규모로, 나라도, 개인도, 청년들도 그야말로 혹독한 빚덩이에 구겨지고 있다.
‘나라 빚을 늘린 건 경기부양을 위해서다’
정부의 주장이다. 실상은 부양은커녕 이제는 (정부가 주장하는) 이를 위해서 빚을 더 늘리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지만 빚내서 집 사라고 한 뜻은 아니었다’
이 또한 정부의 주장이다. 빚을 지게 만든 쪽의 변명은 정부나 장학재단이나 넘쳐난다. 장학금대출과는 거리가 멀었던 나조차도 울분을 토하게 만드는 이 같은 상황에서 도대체 어떻게 이를 이겨내라는 말인지 알 수가 없다. 파이팅을 있게 하는 건 ‘빚’이 아니라 ‘빛’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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