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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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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태인
댓글 0건 조회 6,123회 작성일 16-08-16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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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독서

- 유시민 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는 기존의 언어인 영어를 대체할 신어(新語, Newspeak)라는 언어가 등장한다. 신어는 나라를 지배하는 당(黨)이 만든 언어인데, 이는 기존에 사용하던 영어에서 쓰이는 어휘나 문법 중 굳이 필요가 없는 요소를 없애거나 단순화시킨 언어이다. 작중에서 신어는 계속해서 수정되고, 그럴수록 그 어휘의 수가 줄어드는데, 무작정 단어의 수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어느 특정한 단어의 여러 가지 의미를 삭제하여 한 단어가 단 하나의 의미만을 나타나게 한다. 이를 통하여 특정 단어를 이용해 비유적으로 혹은 은유적으로 당을 비판하는 사태를 막고, 당의 입장에서 정치적으로 반대되는 말과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최종 목적이다.


   예를 들면, Free라는 단어는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은 상태’를 뜻하는 자유의 의미(Free from ~)와 ‘존재하지 않음’의 부재의 의미(Free of ~)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는 단어인데, 당의 독재에 방해가 되는 ‘자유’라는 의미를 없애버리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사상범죄’라는 단어 자체를 아예 없애버림으로써 사상범죄라는 단어가 존재함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귀찮은 가능성을 모두의 생각에서 지워버리려 의도한다. 이처럼 여러 가지 단어의 수를 줄이고 의미도 줄이면서 사람들의 사고의 폭을 줄일 뿐만 아니라 어떠한 개념 자체를 생각하지 못하게 만든다.


   놀랍게도 북한에서 신어 창제 작업과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북한의 언어 사전인 문화어 사전에는 자유라는 말에 해당하는 어휘가 정의되어 있지 않다. 자유라는 말과 비슷한 의미를 가진 해방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만, 해방은 ‘자본주의나 제국주의로부터의 자유’라고만 정의되어 있다. 즉,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여있지 않은 상태’를 의미하는 자유는 애초에 북한 국민의 머릿속에 없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은 자유라는 개념이 없다. 지금의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데, 그 심정을 제대로 표현할 어휘도 모르고 서로 의견 교환도 못 하게 되는 것이다.



   ‘언어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이다.’라고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말했다.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이고, 사고의 한계이다. 언어는 사유의 도구이다. 사람의 사고와 생각을 조정하고 제한하는 방법의 하나가 바로 언어를 통제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어휘를 자신들의 사상에 유리하게 조금씩 바꾸어나가면 사람들은 언어를 사용함과 동시에 그 프로파간다에 젖어들게 만들 수 있다. 예컨대 인민이나 시민이라는 단어가 ‘국가의 주인인 주권자’라는 뜻을 내포한다면, 반대로 국민이라는 단어는 ‘국가를 앞세우고 시민을 국가의 구성품’으로 보는 단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에서 인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인민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느끼게 하여 우리는 인민보다는 국민이라는 말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 결과 국가와 민족과 기업은 시민의 개개인보다 앞서있고, 개인은 이것들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프로파간다가 우리의 머릿속에 새겨졌다.


   언어와 말은 이토록 강력하다. 단지 단어 하나를 사용했을 뿐이지만 이것은 사람의 생각을 바꾸고 태도를 바꾼다. 단지 그것 때문에 사람의 생각이 바뀐다는 것을 과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언어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이며 사고의 한계이다. 한 사람의 세계는 한 사람이 사고하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의 넓이를 가진다. 따라서 우리의 세계를 넓히기 위해서는 언어의 다양성을 가지는 것이 필수적이며, 이와 동시에 자신의 사고를 표현할 수 있는 능력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유시민의 저서 <청춘의 독서>는 유시민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총체적인 집합체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부터 E. K.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까지 총 14권의 고전을 소개한 책이다. 유시민은 20대 때 읽었던 책 중 자신의 인생의 이정표가 되었던 책들을 선정해 그때 읽었던 생각과 감정을 50대에 다시 읽고 나서의 생각과 감정을 비교하며 글을 적었다. 독재 시절 보유했다는 것만으로도 강력한 범죄가 될 수 있는 책인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을 밤에 손바닥만 한 창문을 담요로 가리고 작은 스탠드 아래 숨어서 읽는 청년 시절의 유시민을 보았을 때 왠지 모를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가 이 14권의 고전들을 처음 읽었던 나이는 지금의 내 나이와 별반 다르지 않지만, 그가 가졌던 생각이나 취했던 자세는 지금 우리 시대의 청년들과 비교해보았을 때 사뭇 다르다.


   같은 책을 읽더라도, 특히 고전의 경우에는 한 사람의 세계와 사고의 넓이에 따라서 그 사람이 받아들이는 정도는 하늘과 땅 차이다. 유시민은 청년 시절부터 자신만의 넓은 세계를 가졌으리라. 그가 고전들을 읽고 생각하고 고민했던 흔적은 지금의 유시민을 만든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독재 시절 억압 속에서도 권력과 자본에 지지 않으려 노력했고 끊임없는 투쟁과 성찰을 한 그는 이 나라의 지식인이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제 갓 세상에 나가 길을 찾는 딸에게’ 들려주는 이 이야기는 딸에게 부끄러움 없는 아빠인 동시에 이 나라의 훌륭한 아버지이기도 하다.


   책에서 소개한 14명의 저자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었다. 희망은 때때로 우리를 속이지만, 용기는 그렇지 않다. 유시민을 포함한 이 14명의 저자는 부조리한 현실들을 직면했을 때 언젠가는 세상이 변할 것이라는 희망만을 가지기보다는 세상을 바꾸려 하는 용기를 지녔던 사람들이다. 이들의 세계는 누구보다 넓었다. 고전이 후세에까지 두고두고 읽히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인간이 끊임없이 질문했던 것에 대한 과정과 결과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이 이 책들이 고전으로 남아 지금까지 전해진 것이리라.


  지식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리영희 선생은 말한다. 진실, 진리, 끝없는 성찰, 그리고 인식과 삶을 일치시키려는 신념과 시조. 진리를 위해 고난을 감수하는 용기. 지식인은 이런 것들과 더불어 산다. 선생의 글을 읽으니 선생이 내게 묻는다. 너는 지식인이냐. 너는 무엇으로 사느냐. 너는 권력과 자본의 유혹 앞에서 얼마나 떳떳한 사람이었느냐. <청춘의 독서> p. 47-48


   유시민 작가의 글을 읽으면 내 마음은 마치 호수 위에 떨어진 나뭇잎처럼 일렁거린다. 두근거린다. 내 생각들과 내가 가진 세계가 얼마나 좁은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서 부끄럽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 내 삶을 돌아볼 수 있게 한다. 지금 나는 과학의 한 분야 중에서도 아주 작은 부분을 연구하는데, 이것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혹은 내가 하는 일이 의미가 있는 일인가에 대하여 이따금 생각이 들었다.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잃어 답답했던 적도 많다. 이 책을 통해서 위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 어느 정도 된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을 아는 것이고, 답이 아니라 답을 도출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한계 없는 넓은 사고를 하는 것이다. 논문이나 연구의 성과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상황이지, 우리가 스스로 지켜나가야 할 가치가 아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는 그보다도 더욱 인간적인 것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인간적인 것은 여전히 아름다운 것이며, 이것이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다. 요즘 뉴스엔 슬픈 소식이 많이 들린다. 하지만 세상이 아무리 살기 팍팍하고 힘들어도 유시민 작가와 같은 지식인이 있으므로 세상이 아름답게 변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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