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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Not to Be Wr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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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현준
댓글 0건 조회 5,480회 작성일 16-05-02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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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Not to Be Wrong : The Power of Mathematical Thinking / Jordan Ellenburg


손에서 책을 내려 놓았을 때, 문득 고등학교 학창시절에 흔하게 들었던, 써먹지도 못하는 수학을 배우고 있다는 식의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십여년이 지난 지금 주위를 돌아보면 흘려 들었던 그 이야기는 우스갯소리가 아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자연과학에 대해 고민하는 이공계열의 전공을 둔 사람들에 대해 상식에 어둡고 사회의 여러 이슈에 문외한이라고 생각한 다는 것을 심심치 않게 느낄 수 있다. 

과연, 전문적인 안목을 가지지 못한 것은 이공계를 나왔기 때문일까? 어떤 일에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사람을 일컫는 문외한은 각 분야의 특수한 전공(예를 들자면 정치이야기를 할 때, 정치학을 전공한)을 가진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일 것이다. 정치나 사회와 직결된 전공을 가진 사람보다 더 전문적인 안목을 가지기 힘든 것은 힘들 테니까.



한가지 떠오른 놀라운 영감은, 앞서 말한 특수한 전공을 제외한 정치사회에 대한 교육을 받지 않은 모든 부류들 즉, 문외한들 사이에서는 이공계열이 오히려 사회 이슈에 대해서 비교적 명확한 정답을 말해줄 수 있는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이는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극명하게 반대적이면서도 사실이다. 먼저, 나는 저자 엘렌버그가 소개한 ‘사라진 총알구멍’이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2차대전 당시 전투기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미군은 전지에서 귀환한 전투기 기체 어느 부위가 적탄을 많이 맞는지를 조사했다. 총알구멍 개수는 엔진 부위 평균 1.11발, 동체 1.73발, 연료계 1.55발, 기체 나머지 부분 1.8발. 취약 부분에 철갑을 둘러야 하는데 너무 많이 두르면 비행기가 무거워진다. 장성들은 총알구멍이 가장 많은 부위 위주로 보강하기로 하고 전쟁지원 기밀조직 ‘통계연구그룹’(SRG)에 그 정확한 수치를 내달라고 요청했다. 그 조직에서 '제일 똑똑'했다는 아브라함 발드 컬럼비아대 교수(통계학)는 장성들의 결정을 뒤집고, 엔진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장성들 생각의 맹점은 돌아오지 못한 전투기들을 고려하지 않은 것. 엔진에 총알을 2발 이상 맞은 전투기는 모두 격추당한 셈인데, 확률 개념에 익숙했던 발드는 문제점을 즉시 간파했다.”

이 이야기를 접하고 그럴싸하다고 생각했다면 두말할 필요 없지만, 심지어 본인도 이러한 문제는 간파할 수 있다며 코웃음 치며 "그게 어째서 수학이죠? 그건 그냥 상식 아닌가요?"라고 말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렇다. 수학은 곧 상식이다. 이 사실은 기본적인 차원에서는 더없이 명백하다. 당신은 어떤 것 다섯 개에 일곱 개를 더한 결과가 어떤 것 일곱 개에 다섯 개를 더한 결과와 같은 이유를 남에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아마 못할 것이다. 교환율(交換律)이라고 불리는 법칙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사실은 합산에 관한 우리의 생각에 그냥 기본으로 깔려 있는 내용이다. 이렇듯 수학은 모든 삶의 분야에 녹아 들어 있기 때문에 비슷한 사회에 대해 비슷한 수준의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수학에 능한 이공계열 전공자들이 더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


확률의 독립사건(獨立事件)대한 이야기 하나를 더 하자면, 동전을 던기지 시작해서 연속으로 앞면이 열 번이나 앞면이 나왔다고 하자. 이 대목에서 많은 사람들의 상식은 다음 번에는 뒷면이 나올 가능성이 약간이라도 더 높을 것이라고 소리친다. 그래야 기존의 불균형이 바로잡힐 테니까. 실제로는 뒷면이 나올 확률은 처음과 같이 50%이다. 동전은 지금까지 앞면만 나왔다는 사실을 기억못하니까. 독립사건에 대한 수학적 지식을 알고 있는 나로써도 만약 다음 번 동전 던지기의 결과에 배팅을 해야만 한다면 뒷면에 배팅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동전에 문제가 없다면). 

그렇다면 하물며 확률에 대한 지식이 없는 친구가 열 번이나 앞면이 나왔으니, 다음 번 이야말로 뒷면이 나올 때가 됐다며 다음 번 배팅에 큰 돈을 걸려고 한다면 다음 번의 결과가 앞면이 나올 확률과 뒷면이 나올 확률이 같다는 것을 무슨 수로 설득시킬 것인가? 누군가 와서 순식간에 설득할 수 있다고 하여도 그 누군가는 친구에게 확률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을 것이다. 올바른 가치판단은 상당부분 수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수학적 지식이 없는 사람의 가치판단은 직감과 근거 없는 믿음에 의한 결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확률을 모르는 친구가 전 재산을 50% 확률로 날렸음에도 본인은 “운수가 매우 안 좋은 날이다. 또 앞이 나왔다니!” 라고 생각할 테니까 말이다. 우리는 그 친구에게 판단이 ‘틀렸다’라고 확실히 말해 줄 수 있다. 그 친구도 확률에 대해 알게 된 이후 본인의 판단이 ‘틀렸음’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소름이 돋게도 엘런버그가 이 책의 제목을 ‘How Not to Be Wrong- 틀리지 않는 법’이라고 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수학을 기반한 가치 판단에는 옳고 그름이 분명하다. 정답이 있는 수학문제라면 나머지 모든 값들은 옳지 않은 것 틀린 것이다. 세상에 옳고 그름이 없다지만, 수학적 사고에 기반하여 틀린 일은 상당히 많아 보인다. 확률 모르는 친구가 뒷면에 걸어서 횡재를 하더라도 그가 생각한 뒷면이 나올 것이라는 가치판단에는 오류가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테니까.


이에 반해, 사회학은 여러 가지 사상들에 대한 지식과 지혜를 배우지만 오히려 그 어느 곳에서도 정답을 찾기 힘들어 보인다. 가령 수 많은 종교가 존재하지만 서로 배타적이면서도 수용적인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어느 하나 정답이다, 혹은 오답이다 라고 말하기 힘들다. 음식 문화에서도 개고기를 먹는 사람과 그것을 경멸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정답과 오답은 없어 보인다. 그뿐인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리비아, 요르단, 모로코, 레바논, 이집트에서는 종교 정책 차원에서 일부다처제를 허용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상상도 못할 일이다. 특히 이라크, 시리아, 알제리는 조건부로 즉, 남자의 경제적 능력을 고려해 일부다처제를 할 수 있는 남성과 아닌 남성을 구분한다니 이는 근본적인 사회구조와 그 원인들에 대한 이해도 없는 사람들이 본인의 답답한 현실을 금수저, 헬조선 이라 소리치며 가진 자들을 끌어내리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최근 우리 문화와는 더욱 더 멀게 느껴진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생각해 보더라도, 사회학에 능통하고 조예가 깊다고 해서 서로 다른 문화나 다른 생각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세상에는 정답이 없는 것들과 있는 것들로 가득 차있다. 정답이 있는 문제라면, 정답을 분명이 할 수 있는 것 즉, 논리적 사고로 맞고 틀림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오히려 이공계와 어울린 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다. 이공계열은 정답이 있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수학적 사고의 힘을 가지고 있다. 100점 없는 이세상에서 정답이 있는 문제들은 해결하며 50점은 맞을 수 있는 것이다. 처음으로 돌아가 이젠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수학적 지식”이라 말하고 싶다. 저자가 말하는 “틀리지 않는 법”에 능통한 이공계열이 사회적 이슈들에 관심을 갖는 것 자체가 얼마나 사회에 긍정적으로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해 밝은 전망을 생각해본다. 정답이 없는 정치 사상 종교의 싸움 말고, 수학적 사고로 한 단계 우리 문화가 성장할 수 있는 키는 오히려 이공계열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또 그러한 이공계열의 사회에 대한 관심이 반드시 필요한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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