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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집단에서 바보가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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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형도
댓글 0건 조회 5,990회 작성일 16-05-04 23:20

본문

         항공사에서 잠시 일하던 시절이 있었다. 특별한 기억은 없다. 동료들이 내 스타일의 사람들은 아닌지라 정붙이기도 싫었고, 그냥 나한테 주어진 일만 열심히 했기 때문인 것 같다. 내 선배라는 사람들은 항상 힘들다고 외쳐댔다. 뭐만하면 힘들다, 아주 약간의 틈만 나면 힘들다, 담배만 물면 첫 마디가 맨날 힘들다. 도대체 뭘 했다고 힘들다는 건가? 까라면 까야한다, 어쩔 수 없는 거다, 후배니까 이건 네가 해야 한다. 그럼 도대체 당신이 하는 건 뭔가? 그리고 다시 묻지만 그럼 당신은 도대체 뭐가 힘들다는 건가? 그러면서 직장 생활은 버티는 거란다. 사실은 맞는 말이겠지, 어차피 밤 9시만 채우면 퇴근할 테니.

 

 

 

         군대에서도 보던 모습을 설마 사회에 나와서도 똑같이 볼 줄이야. 그래서 직장이 싫었다. 처음에는 재밌게 자부심을 가졌던 정비일도 정이 떨어져갔다. 정말 웃긴 얘기를 들어도, 여자 친구와 통화할 때도 별로 유쾌하게 웃지 못했다. 난 그 당시 열정적이고 싶었기에 이딴 회사에서 병든 닭 마냥 수동적으로 살기 싫었다. 그리곤 앞으로의 일을 고민했다. 회사 그만두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해볼까? 그런데 과연 이제 와서 그걸 할 수는 있을까? 늦지는 않았을까? 결국은 일단 다니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며칠을 생각 없이 나가던 찰나, 기분 나쁘게 넘겼던 선배들의 말이 떠올랐다. 이래서 직장생활은 버티는 거라고 했나?

 

 

 

         이제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저 사람들도 분명히 처음부터 저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도대체 뭐가 우리들을 이렇게 바꾼 것일까? 이 사람들은 왜 항상 퇴근시간만 기다리며 슬슬 일하는 바보가 되었을까? 무려 몇 년이 지난 지금, 서점에서 썸녀를 기다리던 최형도는 어떤 책에서 우연히 그 답을 찾았다. 작가분의 말을 빌리자면, 이것은 내 탓도, 그들의 탓도 아니란다. 시스템이 우리를 이렇게 만드는 거란다. 짧게 얘기해보자면, 초기 시스템은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향으로 설계되었다고 한다. 공장에서 효율을 높이기 위해 분업, 자동화, 관리 등의 시스템을 도입했고, 그 효율은 숫자로 증명되어야 했다. 오늘은 얼마나 일했는가? 얼마나 생산해냈는가? 자연스럽게 숫자의 증가는 효율의 극대화로 이어졌다. 이때부터 숫자는 다른 부분에서도 척도가 되기 시작했고,

 

         “업무 시간이 긴 직원은 열심히 일하는 직원이다!”

         “그래? 그럼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야근을 합시다.”

 

이렇게 야근을 권하는 사회가 창조됐다. 어쨌든 책의 내용은 그렇게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결국 우리 사회의 집단은 점점 멍청해진다는 것이 이 책의 내용이다.

 

 

 

         한편 나는 그길로 회사를 때려치웠는데, 회사를 때려치우는 데에는 우리 부장님이 결정적으로 한 몫 하셨다.


         부장님      (대리를 향해) “나 때는 너처럼 일찍 퇴근하는 사람이 없었어!

                            맨날 일찍 퇴근하니까 성과가 그 모양이지!”

 

소름. 왜 자신의 부하직원을 혼내는 데 자신의 경험을 가지고, 자신이 살아온 틀에 남의 삶을 끼워 맞추려 하는 건가. 요즘은 이런 말 하는 게 오히려 낙오되고, 사회에 적응 못한 취급을 받기에 사실 글쓰기조차 조심스럽다. 아무튼 우리 부장님은 저런 스타일이셨다. 모진 질책과 비난을 쏟아내고, 업무 성과가 안 좋은 것은 다 너 때문이라고 모든 것을 뒤집어씌운 뒤, 불만 있으면 지금 말하라고 했다. 그러다가 자기가 조금 심했다 싶었는지 술 한 잔 사주면서 말하지 못한 마음, 섭섭한 마음 있으면 말하라고 했다. 사회는 원래 다 그런 것이라고. 참 말도 안 되는 보스쉽이다. 그러자 우리 심성 착한 대리님께서 그 분의 생각과 속마음을 순진하게 얘기했다. 바보 같은 사람. 역시나 우리 부장님은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변명으로 생각했다. 이해는 간다. 남들을 이끌어가는 입장에서 자신이 항상 옳아야만 하니까. 불만이 있으면 말하라는 것은 부장님 자신이 훈계했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함이지, 대리님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렇게 마음속에 있는 말을 한 대리님에게 더한 질책이 쏟아졌다. 잘 모르겠지만 부장님도 은연중 자신의 행동이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셨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들의 보스로써 부족한 모습, 틀린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질책과 비난을 쏟아냈다. 그리고는 결국 결과는 이랬다.

 

         대리님      (고개를 조아리며)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앞으로 좀 더 신경 쓰겠습니다. 이런 일 없도록 주의하겠습니다.

 

그만두기에는 더 이상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그 후, 대학원에서 연구를 지금껏 해오고 있다. 결과가 안 나오면 열도 받지만, 고민했던 것들은 대부분 해결됐기에 나름 시간을 투자한 보람을 느낀다. 그래서 한때는 쉬라고 있는 주말까지 괜히 나와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연구를 했다. 물론 약속이 없어서 서울갈일도 없고, 여자 친구도 없을뿐더러, 어디 가봐야 돈만 쓰기에 그냥 실험실에 박혀 주말을 평일처럼 보냈다. 시간을 더 투자하니 당연히 연구결과도 좀 더 나왔다. 확실히 주말을 투자하지 않은 때는 그만큼 결과가 적었다. 이것만 보면 일찍 퇴근해서 성과가 그 모양이라는 부장님 말이 얼추 맞는 것 같긴 했다. 재밌는 것은 지금부터다. 그 이후로 난 별일이 없으면 주말에도 나와서 일을 했는데 언제부턴가 무언가에 쫓기기 시작했다. 주말을 다른데 쓰지 않고 연구에 사용했으면, 그에 따른 결과가 무조건 따라와야 한다는 생각에 쫓겼다. 이전만큼의 결과를 얻기 위해, 그리고 그를 통하여 누군가에게 좀 더 인정받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한 주를 마무리 하는 날 미팅을 진행하면, 다음 미팅까지 무언가를 준비하기 위해 주말에 뭐라도 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만, 맡은 일에 진척이 보였다. 주말을 쉬면 당연히 결과가 적기에, 그런 때는 한 주 시작을 질책 아닌 질책으로 시작했다. 그렇게 생활한 지난 6개월 간, 정상적으로 쉬며 보통의 사람들처럼 보냈던 주말은 10번이 채 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또 다른 바보가 되어 있었다. 내 건강, 심리 상태, 스트레스지수 같은, 내 일의 효율을 위한 정말 중요한 본질들은 모두 놓쳤다. 취미, 가족을 챙길 시간, 친구들과의 우회, 새로운 사람과의 조우 이 모든 것들은 어느 순간 내가 기대할 수 없는 것이 됐다. 어쩌다 남는 하루의 시간을 통해 체력을 회복하는 일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친한 선후배와 밤늦게 나가서 가끔 가지는 술자리에도 더 이상 정신적인 힐링을 기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술을 마시면 독이 될 것 같은 느낌이다. 또 어느 순간 내 자신이 역겨워졌다고 느꼈던 적이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게 정시 퇴근을 할 수 있는 동료들이 얄밉게 느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난 이 멍청한 사회에서 점점 바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

        앞으로 이런 나에게 정신적인 티핑포인트가 존재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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