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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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만장했던 4·13 총선이 끝나고 곧 20대 국회가 새 문을 연다. 특히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 당의 성과는 괄목할 만 하다. 양당체제의 국회에 진절머리를 느낀 국민들의 표심이 그대로 반영되었고 이는 곧 대한민국의 정치변화를 요구하는 것으로 해석이 된다. 그러나 특정 지역민의 특정 지역 출신 정치인에 대한 몰표현상은 여전했다. ‘영남은 새누리당’, ‘호남은 야당’ 부끄러운 대한민국 국민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결과이다.
1789년 7월 14일 무능한 왕실, 귀족들의
비합리적인 행태에 불만이 극에 달했던 프랑스 국민들은 바스티유 감옥 습격을 시작으로 프랑스혁명을 일으킨다. 이로
인해 시민계급이 성장하게 되고, 봉건제 붕괴, 근대 자본주의의
기틀을 확립하게 되었다. 모든 권력은 민중에게서 나온다고 선언했고, 민중의
뜻을 가장 효과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1인 1표제라고
믿었다. 이후, 자유, 평등을
기반으로 여성과 소수인종에게도 선거권이 부여됨으로써 현재의 선거시스템이 확립되었다.
선거는 국민의 뜻을 정치에 반영하는 신성한 표결권, 민주주의 꽃이라
일컫는다. 프랑스 혁명의 계기로 다수가 권력을 행사 할 수 있는 선거 시스템이 정착했지만, 다수가 현명하지 않을 경우 선거는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 한다. 구미에서
박정희를 욕하면 역적이 될 수 있고 호남과 영남에서 야당과 새누리당을 각각 비판하면 몰매를 맞을 수도 있다. 우리는
이러한 지역주의를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그들이 겪었던 역사를 공감해주고 이해하며 지역주의를 이해하는
것이 맞을까? 필자는 이 모든 것이 지역 이기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하나의 악습으로 해석하고 싶다. 역사적 사실 등을 기반으로 자신의 고장에 특정정당이 무조건적으로 이익이나 해가 될 것이라고 판단을 내리는 것은
현명한 국민의식이라 볼 수 없다. 과거의 아픔과 영광을 모두 잊고 냉정한 사람이 되라는 얘기가 아니다. 특정정당에 대한 무조건적인 알러지 반응이 아니라 과거의 아픔을 교훈삼고 더 나은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현명하고
객관적인 사고를 하라는 얘기이다.
의사의 부모가 수술을 받을 경우 보통 다른 의사가 그 부모의 수술집도를 대신 맡게 된다고 얼핏 들은 적이 있다. 위독한 부모를 둔 의사의 마음은 세상 누구보다 간절하기 때문에 더 나은 수술 결과가 나올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간절함이 조급함이 되고 결국
객관적인 판단을 흐리게 하여 환자의 생명을 도로 잃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감정에 기반을 두게
되면 객관적인 판단이 흐려지고 참담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지금은 국민 개개인의 선거권 행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419혁명, 6월 민주항쟁 등을 거치면서 수 많은 민초들이 피를 흘려가며 얻은 고귀한 결과물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만약 우리가 단순히 마음 가는 대로 또는 지역주의에 휩쓸려 투표권을 행사한다면 어떠한 형태로든 흘렸던 피를 다시 흘려야 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 어쩌면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이미 쓰디쓴 피를 흘리며 고통을 느끼고 있을 지도 모른다. 우둔한 생각으로 선거의 명분만 살리고 실질적으로는 전혀 효과가 없으며 기득권층 좋을 일만 시키는 선거가 되지 않아야 한다. 지역의 이익을 우선시 하지 않고, 내 자식이 건강한 미래 대한민국에서 살 수 있도록 현명한 사고를 하는 국민이 많이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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