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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관심을 증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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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태인
댓글 0건 조회 5,989회 작성일 16-06-10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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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관심을 증오한다


- 안토니오 그람시



   우리나라의 젊은이 중 자신의 정치적 생각을 당당하게 표명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정치와 종교에 관한 얘기는 친한 친구 사이에서도 하지 말라는 우스운 농담까지 있을 정도로 우리 젊은이들은 정치에 대해서 매우 방어적인 태도를 보인다. 민주주의가 개개인이 철저한 주인 의식을 갖는 사회라고 말한다면, 민주주의는 젊은이들이 가질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차라리 여당이라도 지지하는 나이 드신 분들이 젊은이보다 민주적인 자세를 갖춘 것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우리 젊은이들이 정치 문제에 대해서 소극적인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 대다수의 젊은 사람들이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적극적인 자세를 갖추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주위에 정치적인 입장을 SNS를 통해서 피력하는 친구들이 종종 있었다. 이들이 SNS에 본인들이 지지하는 정치적인 글들에 ‘좋아요’를 누르거나 자신들의 의견을 내비칠 때, ‘친일파’라 거나 혹은 ‘좌빨’이라는 댓글을 종종 목격한 적이 있다. 물론 그들의 의견에 동조하는 댓글들도 있긴 했지만, 그들에게 반대하는 댓글들에 더하여 정도를 넘어선 댓글도 보였다. 반응이 이렇다 보니 상처받지 않기 위해 자기 생각을 남들에게 밝히는 것을 꺼리게 되었고, 이제는 SNS에 정치적인 의견을 내놓는 글들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렇다 보니 자신의 정치적인 입장을 다른 사람들에게 표명하는 것은 우리 젊은 사람들 사이에 ‘금기’처럼 여겨진다.



   젊은이들에게 미래란 이상적인 것으로 언제나 바꿀 수 있는 대상인 반면에 노인에게 미래란 선택적 자유로움이 크지 않은 협소한 것이라고 했을 때, 젊은이들은 ‘이상’적이며 노인들은 ‘현실’적이다. 하지만 계속된 경기 침체로 인해 취업이 힘들어지고 경쟁이 치열해져서 한창 ‘이상’을 추구해야 할 젊은이들의 신경은 온통 취업과 스펙에 집중되었다. 소위 ‘취업깡패’라는 기계과나 전자과 친구들도 쉽사리 취업이 되지 않는 것을 보면 경기 침체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당장 먹고 살기가 힘든 젊은 사람들은 ‘이상’보다는 ‘현실’에 집중을 하게 되었고, 정치와 사회에 대한 자세도 회의와 무관심으로 변했다. 겉으로는 젊은이지만 속으로는 온통 현실만 생각하며 사는 노인이 된 것이다.



   진보의 필두라고 생각되었던 젊은이들이 정치와 사회에 대해 점점 무관심해지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기존의 정치체제를 존속시킨다. 무관심이야말로 최악의 태도이다. 무관심은 현재의 상태를 묵인, 방조하겠다는 의사의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나는 무관심을 증오한다>의 저자인 안토니오 그람시는 파시스트 이탈리아가 탄생한 이유를 비판적으로 분석했다. 그람시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의 참여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역설하고 있으며 시민의 참여가 없을 때나 시민들이 정치적으로 무관심할 때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를 설명한다. 그는 살아간다는 것은 삶에 참여하는 것이며, 무언가를 지지하는 일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람시가 살았던 당시는 무솔리니가 경제 위기를 틈타 정권을 잡고 독재하려던 시점이기에 우리에게 더욱 많은 것을 시사한다. 파시스트 이탈리아 정부에 의해 감옥에 갇힌 그람시는 그곳에서 이탈리아의 역사와 현실 정치에 대해 깊은 사색을 했으며, 그는 평생 ‘왜 가난한 노동자와 농민이 자신들의 이익과 전혀 무관하게도 파시스트 독재를 더 지지하는가’에 대해 평생 고민하였다. 그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무관심에서 찾았다.



무관심한 사람들을 증오한다. 프리드리히 레벨이헤벨이 그랬듯이 나는 “산다는 것은 지지자 (혹은 참여자)가 된다는 것을 뜻한다”라는 말을 믿는다. 세상에 시민만 존재할 수는 없다. 도시에는 이방인도 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살아있는 사람은 시민일 수밖에 없으며, 무언가를 지지하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 무관심은 기생적인 것이며 비겁함일 뿐 진정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무관심한 사람들을 증오한다. - p. 27
나는 살아있고 삶에 참여하는 인간이다. 그러므로 나는 삶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을 증오하며, 무관심한 사람들을 증오한다. -p. 32



   독재와 독재자는 어떻게 탄생하는 것일까. 독재는 국민이 먹고 살기 힘들 때 나타난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 바쁜 국민에게 문화나 취미는 사치이며 정치도 같은 선상에 있는 것이라 여긴다. 그리고 오랜 기간 가난이라는 굴레에 종속되어 살아가는 그들은 점점 희망을 잃게 된다. 경제를 회복시키겠다는 많은 정치인을 보아왔고, 매번 그들을 믿었지만 돌아오는 건 늘 배신뿐이었다. 정권이 수없이 바뀌어도 좋아지기는커녕 더욱 피폐해지는 삶은 그들을 더욱 무기력하게 만들며 그들을 체념시킨다. 이렇듯 정치를 혐오하고 정치에 무관심한 국민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구원해줄 사람을 찾게 된다. 국민 스스로가 자신을 구원할 수 없으니 이 문제를 해결해줄 영웅을 찾는다. 아돌프 히틀러나 무솔리니 같은 독재자들이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현재 전 세계적인 상황들도 그람시가 글에서 언급한 이탈리아의 상황과 매우 닮아있다. 최근 트럼프의 지지율이 힐러리보다 앞섰다고 뉴스에서 보도가 되었다. 다른 대선 후보에게 “지 남편도 만족 못 시키면서 미국을 만족시키겠다고?”라는 막말을 한 사람이 과연 미국의 대선 후보에 오를 만한 덕목을 갖춘 사람인가. 보통 사람은 입에 담기도 험한 말을 내뱉는 사람이 부상하는 이유는 경기 침체가 길어지면서 주머니 사정이 개선되기는커녕 악화되는 상황에 대한 불만을 속 시원하게 말해주는 정치인들에게 동조하며 대리 만족을 얻고 있다. 기득권 정치인들에 대한 깊은 불신과 실망이 이런 포퓰리즘을 낳게 된 것이다. 트럼프의 고공 행진한 지지율은 그가 무엇을 건드려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이는 과거 히틀러나 무솔리니의 예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인종차별적인 연설과 저속한 말투, 무솔리니 흉내를 내면서도 인기가 치솟는 이유는 바로 저소득층들의 잠재된 분노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볼 수 있다. 필리핀의 트럼프라고 불리는 두테르테의 대통령 당선도 마찬가지의 경우이며 이러한 현상은 전 지구적으로 퍼지는 추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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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길, <트럼프는 히틀러의 ‘도플갱어’?>, 한겨레신문, 2016. 3. 21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유신 체제를 만들어 독재한 박정희 대통령을 지금도 추모하는 사람이 있는 이유도 ‘먹고 살기 힘들어서’이다. 당장 내일이 걱정되는 지금보다 독재 치하였더라도 초고속 성장을 이룩한 그때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최근 두 번의 대선에서 여당에서 대통령이 당선된 이유도 이와 일맥상통하지 않는가. 젊은 나이에 사장에 올라 중동 신화의 아우라 때문에, 대한민국의 경제를 성장시킨 독재자의 딸이라는 이유로 두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 우리나라 국민도 자신들을 구원시킬 메시아를 찾는 것이다. 국민이 안철수를 지지하는 이유도,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그저 메시아만 기다려서는 안 된다. 현실에 우리를 구원해줄 영웅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무관심 속의 메시아만 기다려서는 안 되며, 우리 스스로가 나서야 한다. 쉽지 않다는 것은 안다. 당장 우리가 하는 일들을 내팽개치고 거리로 나가라는 말은 아니다. 우리에게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온라인에서든 오프라인에서든 정치권력과 시장권력의 오만과 횡보를 비판하자. 컴퓨터 앞에 앉아서 자기 생각이 담긴 댓글 하나 정도는 누구나 달 수 있으며 이러한 작은 일들이 세상을 조금씩 바꾸는 것이다. 현실에 대한 무관심과 냉소만으로는 세상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우리의 작은 실천과 정당한 분노가 세상을 바꾼다. 각자가 각자의 방식에서 각자의 능력을 발휘하여 작은 움직임을 보이자. 대의민주주의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니다. 무관심한 민주주의는 5년에 한 번씩 독재자를 뽑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만들기 위해서는 대표자를 뽑은 뒤에도 그 대표자가 실제로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지 끊임없이 관찰하고 감시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가 참여하지 않으면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경우처럼 역사는 반복될 것이다.



 분노할 일을 넘겨버리지 말라. 찾아서 분노하고 참여하여, 반죽을 부풀리는 누룩이 되라. 어느 누구라도 인간의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사람을 만나거든, 부디 그의 편을 들어주고, 그가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라.
- 스테판 에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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