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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지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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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규섭
댓글 0건 조회 6,135회 작성일 16-06-01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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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지 강의-리중톈

이규섭

 

역사의 존재는 많은 의의가 있으며,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에도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초등학생에게 역사를 왜 알아야 할까요? 라고 물어본다면 온고지신의 측면에서 역사의 의의를 이야기하지 않을까 싶다. 역사는 과거의 기록이며, 과거를 돌아본다는 것은 앞으로의 일을 대비한다는 반성과 복기의 의미가 강하다. 그러나 역사 속 인물들을 볼 때마다 나는 역사를 안다는 것에 과거를 통해 미래를 대비하는 성찰의 기능이 있는지 의구심을 품게 된다.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알아갈 때마다 깨우침의 느낌표보다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물음표가 앞선다. 역사는 때로 우리가 진리라 알고 있는 것들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유방이 패권을 거머쥔 것이 항우보다 덕이 많다거나 인재를 보는 눈이 있어서라고 하기에는 설명이 부족할 것이다. 사실 붙일 설명이야 가득할 것이지만, 결과를 아는 입장에서야 어떤 이유든 붙이지 못할까. 소인배가 자신의 목숨을 챙기면 기개가 모자란 겁쟁이이고, 왕이 자신의 목숨을 챙겼다면 큰 그림을 보고 인내하는 용기를 가진 자라 평한다. 반대로 왕이 된 자가 목숨을 던지면 용맹하고 남다른 기개를 가진 자가 되는 것이고, 소인배가 목숨을 던지면 순간의 감정에 몸을 싣는 필부의 용기만을 가진 범인이 되는 것이다.

백번 양보해서 유방이 항우와 비교해서 어떤 점에서도 왕이 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고 하자.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초한지에서 가장 난감한 부분은 한신의 최후이다. 그는 최후에 토사구팽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순간의 감정에 분노하지 않고 불량배의 가랑이 사이를 기었다는 일화를 알고 있다. 한신은 분명 항우와 유방의 차이인 필부의 용기와 대인의 용기를 구분할 줄 아는 자였다. 그랬던 그가 큰 그림을 보지 못해 수하 기통의 말대로 결정적인 순간에 망설여 엿 후에 잡혀 허무하게 죽고 말았다. 사마천을 비롯한 후세의 역사가들은 여러 가지로 그의 최후를 평하지만, 그럼 그가 반역을 저지르는 것이 더 옳은 선택이었단 말인가?

희대의 악녀로 불리는 여 후의 경우도 나를 난감하게 했다. 최근의 일부 사람들은 역사 속의 지도자들이 모두 냉혹한 면모를 가지고 있는 만큼 여 후가 여자라는 이유로 후세에 뛰어난 통치자로서의 측면이 강조되지 못하고 악녀로만 기억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고대의 형벌이 잔혹하다지만, 남편 유방의 애첩이었던 청부인을 제거하기 위해(그것이 정적 제거를 위한 수단이던, 질투이든 간에) 눈을 뽑고, 귀와 코를 잘라내고, 손, 발을 절단하고 혀를 뽑아 측간에 넣은 뒤 ‘인간 돼지’라고 불렀다는 잔학 무도한 성정을 정당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들인 혜지가 이를 보고 기겁하여 몸져눕고는 1년 뒤 죽었으니 그 잔혹함을 알만하다. 이러한 잔혹한 성정은 분명 돌아올 법 한데, 그녀는 이를 감당할 능력이 있었다. 여 후는 용맹했고, 영리했으며, 기개가 있었고, 행동력이 있었다. 비록 그녀가 죽은 뒤에 여 씨 일족이 망하고 다시 유 씨의 왕권이 강해졌지만, 그녀 개인의 일생은 부족함 없는 인생을 살 수 있었다. 돈과 권력을 위해서라면 살아 있는 동안에도 나쁜 평판을 듣는 것쯤은 감수하려는 사람들이 그득한 세상이다. 살아있는 동안 저지른 악행의 결과가 죽고 나서야 돌아온다면 그리고 돈과 명예, 권력을 모두 손에 넣을 수 있다면 그걸 마다할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이며 누가 여 후의 삶을 비판하겠는가?

역사는 분명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능력 없는 왕으로 살다 위나라에 촉을 넘긴 황제 유선은 다른 공신들이 죽어 나가는 와중에도 편안한 삶을 살다 갔다. 왕자의 난으로 피바람을 일으킨 태종은 무사히 왕권 강화를 마치고 아들에게 왕권을 넘겼다. 충신이었던 이순신은 그 권력이 비대해지자 왕의 의심을 사 백의종군을 해야 했고, 독립운동가들이 피땀 흘려 노력한 것이 허무하게 해방을 부른 건 원자폭탄 두 발이었다.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묘사한 감이 있지만, 역사 속 인물들의 삶은 우리네 삶의 지침이 되지는 못한다. 역사는 권선징악을 보여주는 어린이용 동화책이 아니다. 리더의 자질을 보인자들이 모두 지도자가 되지 않으며, 때론 평범한 사람이, 심하면 악인이 군자보다 더 완성된 삶을 사는 모습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 물론 역사는 분명히 큰 시야에서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그러나 개인의 입장에서 바라본 역사는, 역사 속 인물들의 삶은, 인생이란 것이 얼마나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지를 잔인할 정도로 뚜렷하게 보여준다. 같은 삶을 살아도,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운에 따라 얼마나 다른 결과를 보여주는지 생생하게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역사 속에서 배운다고 해서는 안될 것이다. 역사가 현실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 만큼 쓰여있는 사실 너머에 있는 것을 깨우치고 읽어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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