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olumn

  • Home
  • Cultural Activity
  • Culture Column

세대 전쟁 _ 전영수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최형도
댓글 0건 조회 5,695회 작성일 16-07-01 16:02

본문

        누군가는 한낱 나비의 날갯짓이 날씨를 변화시켜 지구 반대편에 폭풍을 야기한다고 하는데, 영국이 스스로 심지어 무슨 짓을 하는지 알지 못한 채 신나게 흔들어댄 날갯짓이 얼마나 크고 광범위한 후폭풍을 몰고 올지 알 수는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들은 이념적인 측면만을 고려한 채, 과거의 영광을 잃어버린 조그마한 섬나라가 그런 선택을 한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애써 무시하려 들지만, 브렉시트는 그리 간단히 넘길 일은 아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원인을 진단하고, 그에 따른 결과를 예측하는 시도들이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뉴스를 통해 끊임없이 전달되고 있다. 사견이지만, 하나의 사건이나 현상이 발생하는 데 있어 오로지 단 하나의 원인만 존재하는 경우는 없다고 본다. 자신만의 정답을 찾아내 그 탓이라 규정하면 본인이야 편하고 좋겠지만, 복합적인 층위를 이루고 있는 까닭들을 단순히 무 자르듯 명쾌하게 판단내리긴 어렵다.

 

발생한 사건의 원인을 찾아내는 일도 이처럼 어려운데, 일어나지도 않은 결과들을 예측하고 정리하는 건 얼마나 난해한 일이겠는가. 또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진단, 분석, 예측, 그 무엇이든 인간의 작업들은 죄다 '그들이 가진 눈'을 통해 이뤄진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최대한 다양한 관점의 정보들을 종합적으로 습득할 필요가 있다. 무언가를 알아감에 있어 좌·우, 진보·보수의 담을 쌓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물론 그 누구보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한 것은 다름 아닌 브렉시트의 장본인, 영국일 것이다. 서로 백짓장도 맞들자며 머리를 맞대고 당장이라도 궁리를 해야 할 처지인데 그마저도 녹록치 않아 보인다.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승리가 아니라 탈퇴 찬성 51.9%, 반대 48.1%라는 박빙의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뉴스를 바탕으로 보면, 영국 내부의 묵은 갈등들이 여러 군데서 분출되고 있는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또 하나의 흥미로운 부분은 브렉시트 투표율이 72%에 달했지만, 정작 브렉시트에 대한 영국인들의 이해가 그다지 높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 중요한 것이 국민들의 정치적 역량이기에, 혹자들은 이와 같은 대중의 무지를 지적하면서도 직접 민주주의의 한계를 꼬집기도 한다. 사실 이렇게 말하기도 애매하다. 그럼 대의제를 통해 선출된 대표들은 무지로부터 자유로운가? 어떠한 사안이 됐든 우물 안 개구리 식의 논평밖에 내놓지 못하는 식자들이 대중보다 월등한 존재라 말할 수 있을까?

 

투표 결과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그들의 의지가 세대별로 극명하게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연령이 낮을수록 잔류를 외치고, 연령이 높을수록 탈퇴를 원한다.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와 밀레니엄 세대의 세대 갈등이 표출된 셈이다. 이전 방송내용을 보면, 젊은 층들은 ‘우리 세대의 미래를 왜 80세 이상이 결정하는지 모르겠다’, 혹은 ‘미래가 없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한탄한다.

  


  

        사실 영국의 이러한 연령대별 투표 성향은 대한민국의 연령대별 투표 성향과 묘하게 맞닿아 있다. 지난 18대 대통령 선거 연령대별 득표율을 살펴보면, 당시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는 20대 이하와 30대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고, 40대에서도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를 앞질렀다. 반면, 박근혜 후보는 50대 이상으로부터 몰표를 받았다. 어느 선거를 예로 들어도 무방할 정도로 우리나라에서도 연령대별로 매번 같은 결과가 나온다.

 

패배를 경험한 40대, 그리고 수적으로 열세에 놓여 있는 2, 30대 청년층은 자신들의 표가 결과로 반영되지 않는 현실에 좌절하고 한탄한다. 나이가 들수록 정치적 성향이 보수화되는 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추세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대한민국에 국한된 현상이 아닌, 인류 차원의 공통점이라 말해도 무방할 정도다. 출산율은 지속적으로 낮아져왔고, 결국 젊은 세대는 쪽수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세다.

 

따라서 국가 혹은 그를 넘어서는 큰 공동체의 결정권을 소위 노인층이 잡게 됐다. 젊은 세대의 입장에선 이에 대응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그래서 영국의 경우에는 16세에게도 투표권을 줘야 한다는 청원 운동을 벌이고 있고, 대한민국도 18세에게 투표권을 주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다음 세대의 미래를 결정하는 데 있어, 노인층의 의견에 본인들의 세대가 좌지우지돼야 하는 현실에 대해 젊은 사람들이 의문을 가지는 건 당연하다. 어떤 드라마에서는 우리 아버지 세대들에게도 지금이 가장 찬란한 시절이고, 오늘을 살아가는 데 젊음과 나이 듦이 차별을 두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줬지만, 막상 현실에서 접하는 괴리는 상당히 크고 절박하고 첨예하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결국 보수화로 귀결되는 인류적 현상처럼 세대교체 역시 인류가 수천 년을 살아온 방식 중 하나였다. 의학이 발달하고 삶의 양태가 과거와 달라졌다 하더라도, 나이가 들면 물리적 힘이 약해지고 사고의 경직성도 두드러진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다음 세대에게 자신들이 차지했던 자리를 물려주고, 관록과 경험을 통해 조언자 역할을 자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처럼 18세에게 투표권을 줘야 한다는 주장을 비롯해, 자라나는 세대 혹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주체인 청년들에게 더 많은 결정권을 줘야 한다는 주장들은 제법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때로는 그 주장에 비릿한 냄새가 배어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가령 정치와 같은 큰 담론 속에서 그런 주장들이 상당히 격렬하게 다뤄지지만, 정작 그들이 절실히 요구하는 사안들에 있어서 사회는 그 주체들을 충분히 존중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가령 학교의 주인은 누구인가? 누구나 학생이라 쉽게 말할 수 있겠지만, 정작 학교라는 사회 속에서 학생들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감옥의 수형자에 불과하지 않던가. 그들에게 선택권이라는 게 있을까. 보수적인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온갖 규율들은 학생들을 억압하고 통제한다. 거기에서 벗어나면 비행 혹은 불량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조금만 제 목소리를 내면, 어린 게 뭘 아느냐며 타박하기 일쑤다. 가정이라고 다를까? 자녀들에게 의사 결정권이 주어지는 수평적 구조를 지닌 가정이 얼마나 될까?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해!', '아빠 말 들어!'의 명령과 그에 대한 수용밖에 없는 수직적 관계가 아니던가.


브렉시트 결과를 두고, 영국의 젊은 층의 분노를 두고, 본인들이 대한민국의 진보 성향이라 믿는 소위 댓글러들은 우리와 같다며 혀를 찬다. 그들의 나이를 주로 40대로 추정해본다면, 과연 그들이 실생활에서 얼마나 '젊은 세대'를 인정해왔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제법 진보적이니까, 선거에서는 유용한 존재라 여기는 것일까? 투표 연령층을 더 낮춰야 한다는 주장에 적극 동의하면서도, 미래를 짊어져야 할 젊은 층의 의견이 보다 주도적으로 개진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적극 찬동하면서도, 실생활에 있어 그들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소위 젊은 층을 이용하려는 모습은 심히 불쾌하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