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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 홍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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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재환
댓글 0건 조회 5,495회 작성일 16-04-02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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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라는 책은 순전히 제목 때문에 읽게 되었다. 제목에 포함된 빠리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이미지가 기대감을 갖게 했다. 파리에서 택시운전을 하며 느낀 고충을 토로하는 정도의 책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막상 읽어보니 그렇지 않았다. 남민전 사건, 유신, 망명 등 심오한 단어들이 책 곳곳에 쓰여 있어 책을 다 읽고 나니 머릿속이 복잡했다.

  먼저 작가 홍세화에 대해 소개한다면 서울대 재학 시절 민주수호선언문사건으로 제적당했고, 이후에 ‘민주투위’, ‘남민전’ 조직에 가담을 했다. 다니던 무역회사의 해외지사 근무차 유럽으로 갔다가 남민전 사건이 터져 귀국하지 못하고 망명하여 파리에 장착하게 된 사람이다. 책에는 작가가 파리에서 택시운전을 하며 느낀 점과 자신의 이러한 자전적 이야기를 교차하는 방식을 서술하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어를 뽑자면 ‘똘레랑스’라고 할 수 있다. 똘레랑스란 프랑스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이성의 소리이며,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정치적 종교적 견해에 대한 존중, 배려를 의미한다. 프랑스 사회는 이 똘레랑스가 깊숙이 박혀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자기의 견해를 마음껏 표현하고, 자유로운 토론을 하고, 뻔뻔할 정도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나는 당신의 견해에 반대한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그 견해를 지킬 수 있도록 끝까지 싸우겠다” -볼테르-

 

  작가는 프랑스의 이러한 점을 정말 높이 사고, 부러워한다. 우리 사회에는 이런 ‘똘레랑스’가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된 해가 1995년이니, 우리 사회의 모습이 어떠했는지는 당시 어린이였던 나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2016년 현재 우리는 확실히 발전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프랑스처럼 자신의 반대 견해를 존중하는 사회라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지만, 적어도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는 인정되니 민주주의의 발전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프랑스는 우리나라보다도 먼저 시민혁명을 겪은 국가이다. 우리나라는 기껏해야 80년대 후반에서야 민주화항쟁이 있었는데, 그 오래전에 시민혁명을 겪었으니, 우리보다 똘레랑스가 발달한 사회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작가는 망명 신청을 할 때 조사관에게 자신이 정부에 대해 다른 목소리를 내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과 조사관이 그 점을 이상하게 여긴다(프랑스는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이기 때문에)는 것에 대해 부끄러웠다고 말한다. 프랑스 사회와 우리 사회의 역사적 배경이 다르고 발전 속도가 다르다는 것을 작가는 전제하고 있었을까.

  내 권리를 주장하고, 내 견해를 표현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회는 흠잡을 데가 없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똘레랑스가 항상 긍정적이기만 할까? 나는 두 가지 점에서 똘레랑스가 항상 긍정적인 측면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첫째, 프랑스인들의 모국어 사랑이 낳은 외국인들의 불편함이다. 파리를 여행하는 외국인들이 공통적으로 택시운전을 하는 작가에게 토로한 고충 한 가지는 바로 프랑스인들은 영어를 알아도 못 들은 척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에 놀러왔으면 프랑스어를 기본적으로는 하고 와야한다’라는 모국어에 대한 자부심이 외국인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다. 똘레랑스를 표방하고 있는 있는 집단 자체 내부에서는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지만, 그 집단에 속해 있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 똘레랑스가 이기적일지도 모른다. 프랑스인들은 모국어 사랑과 더불어 미국 문화를 저급한 문화로 취급하며 배척한다. 자신들의 문화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존중하는 것은 좋으나 미국 문화를 ‘저급하다’라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것은 과연 그들이 내세우는 똘레랑스로 어떻게 설명을 해야하는지 의문이다.

  둘째, 사회 전체의 효율성에 대한 점이다. 우리 사회는 파업을 하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기 마련이다. 그러나 프랑스 사람들은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파업을 응원한다고 한다. 파업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본인들의 밥그릇 싸움인데, 결국은 이것도 이기적인 것 아닌가. 부당한 노동조건, 누가 봐도 불합리한 조건의 임금이라면 노동자들이 최후의 수단으로 파업에 돌입하는 것은 이해한다. 그런데 그 파업을 응원해주고 지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무리한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등의 파업이 습관화될 것이다. 개개인의 좋은 근로조건에서 일할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기본권 보장, 표현의 자유보장에 있어서 발전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 전체적인 효율로 봤을 때 이것이 좋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전체를 생각한다면 때로는 침묵할 수 있는 똘레랑스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우리 사회에도 똘레랑스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작가의 말처럼 서로 다른 견해가 자유롭게 표현되어 부딪힐 때 진리가 스스로 드러난다. 지금 세상은 서로 다른 견해가 자유롭게 표현 될 수 있는 세상이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그 다른 견해들을 존중하고 충돌의 합의점을 찾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똘레랑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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