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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아 아프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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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형도
댓글 0건 조회 5,131회 작성일 16-04-04 01:35

본문

         우리는 여행 가방을 꾸릴 때마다 짐을 줄이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러면서 여벌옷이나 액세서리나 굳이 필요 없는 것들을 과감히 가방 밖에 내놓는다. 그 셔츠들은 사실 마음에 쏙 드는 것이 아니었고, 그 책들은 한 번도 읽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읽지 않을 것들이었으며, 그 바지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받은 선물이었지만 막상 입어봤을 때 그렇게 마음에 든 것이 아니었다. 아무튼, 우리는 확실하게 떼어버릴 수 있는 것들은 밖에 빼놓고 가방 안에는 필요하고 정말 중요한 것들만 넣는다. 우리의 멋 혹은 편안한 느낌, 우리의 냄새와 우리의 읽을거리, 우리의 좋은 정신, 우리의 침착함, 우리가 날씬하고 매력적으로 보이거나 사람들이 그렇게 봐주길 바라는 데에 필요한 것을 담아둔다. 또한, 우리의 신뢰와 실망에 대한 두려움, 다른 사람에게 남기고 싶은 흔적도 담는다. 물론 우리가 꿈꾸고 있는 사회적인 성공, 우리의 중장기 미래까지도. 이렇듯 우리를 담고 있는 여행 가방은 우리 자신을 가장 잘 함축해놓은 축소판이자 우리의 버릇과 기호, 의도, 살면서 잃고 얻는 것 등 자신의 모습이 어떤지를 요약해준다.

 

        우리는 앞에서 말한 사실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우리의 이름을 담고, 몸짓을 그 가방에 전달하게 된다. 그리고 절대 그 가방과 헤어지지 않는다. 자물쇠로 잠그고 묶고 봉인해서 내용물들을 보호한다. 비밀스럽게 자물쇠 번호를 조합해보고, 가방이 얼마나 연약한지도 알린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가방이 우리 자신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모든 것은 공항에서 가죽이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작은 평행 육면체 안으로 들어가는데, 어떤 낯선 곳에 그것을 맡겨두기도 한다. 그래서 다른 공항에 와서 벨트컨베이어 앞에서 몇 시간씩 걱정하며 그것이 나타나길 기다린다.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너무나 고대하던 특별한 순간을 위해 넣어둔 속옷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넣어둔 그 가방이다.


         한편 여행가방도 우리처럼 늙어간다. 다크서클과 주름이 생긴다. 가방의 원래 재질은 단단하지만 많이 사용하면 할수록 약해진다. 한 승객이 가방을 분실한 대가로 아주 합당한 보상을 받았다고 했는데, 똑같은 가방을 받았다고 해도 절대 예전과 똑같을 수는 없다.

 

    

 

         요즘은 몇몇 추억이 그립다. 많은 날을 보냈던 장소부터 이제는 다시 못 볼 것 같은 사람들까지. 이제는 그 추억을 다시 꺼내고 싶어도 그럴 수 없을뿐더러 설령 다시 꺼내진다 해도 추억속의 그 모습은 없다.

 

         발전의 대로와 풍요의 거리가 만나 생긴 길모퉁이에서는 똑같은 종이 상자들 사이에서 각양각색의 노숙자들이 밤마다 잠을 청하고, 이웃 간 분쟁, 예상치 못한 잔인한 강도질이 벌어진다. 사랑의 거리와 우정의 거리가 만나서 생긴 길모퉁이에서는 사고가 자주 일어난다. 연인들은 자주 싸웠고, 길거리를 지나던 사람들이 지갑을 잃어버리며, 이전에는 한 번도 문적이 없는 개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어린이들을 물기도 했다. 네 이름과 내 이름의 거리는 흙바닥인 어느 조용한 광장을 지나가고 있다. 그리고 이전에 우리가 갔던 그 공원에서는 여전히 연인들이 서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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