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 쓰지 않는 연습 – 나토리 호겐 / 반응하지 않는 연습 – 구사나기 류순
페이지 정보

본문
신경 쓰지 않는 연습 – 나토리 호겐 /
반응하지 않는 연습 – 구사나기 류순
미래에 대한 걱정,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 마태복음 6장 34절
그리고 과거에 대한 집착,"자신의 잘못을 자책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오래도록 마음속에 담아두어서는 안 된다."는 정자(程子)의 이 말은 실로 절실하다.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는 참으로 어렵지만, 지난날의 잘못을 다스려서 다시 잘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면 된다. 만일 잘못한 일에 대한 후회를 오래도록 마음속에 담아둔다면 본심이 쇠하여 사라져 진취적이지 못하게 된다. – 정조이산어록
사람들의 삶은 미래에 대한 걱정과 과거에 대한 집착으로 가득 차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불명확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현재 만족하는 삶을 사는 사람일수록 더 커지기 마련이다. 언젠간 잃을 지 모른다는 것이 불안감의 씨앗이 되어 삶을 괴롭게 만든다. 불안정한 요소가 넘치는 미래는 현재의 안락한 행복을 어느 순간 앗아갈지 모를 뿐만 아니라 정해진 것 없는 미래의 문제들에 모든 해답을 내릴 수 없는 입장에서는 끊임없이 불안감에 휩싸일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잃을 것 없는 삶은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매 순간 옥죄어 오는 과거의 미련과 후회로 더욱 더 견디기 힘든 삶을 살아 갈 것이다.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면, 모든 사람들은 다가오지 않은 일들을 열심히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하며 대비하느라 자신의 머릿속 가상공간에 갇혀서 살거나, 과거의 미련과 후회 속에서 이미 지나간 삶을 수 천 번씩 떠올리며 과거 속에 갇혀서 살아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영혼의 감옥에 과거와 미래 모두에 갇혀서 산다. 아주 가끔 두 공간(자기자신이 만들어 낸)에서 자유로워 질 때, 행복감을 느낀다. 다 잊고 아주 멀리 떠나는 여행, 머릿속을 새하얗게 비워주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하룻밤처럼, 마치 죄수가 감옥에서 잠시 외출을 나오듯이 드디어 주변을 바라보고 상쾌한 공기를 느낄 수 있게 된다.
물론 과거의 일을 정리하여 현재의 결정에 반영하고,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워 다가오는 문제에 빠르고 정확한 대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현대인이 살아가는 사회 분위기 상 피할 수 없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점이라는 것을 반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만든 가상의 공간에서 발이 묶여 언제 내가 현재(살아 있는 나)를 느꼈는지 조차 기억나지 않는다면, 죽어서 꿈만 꾸는 시체와 다를 바가 있을까?
두 권의 책을 덮었을 때, 내가 만든 감옥에서 빠져 나오는 방법은 나를 설득하는 것뿐이고 과거에 휘둘리고 미래의 걱정에 현재를 숨막혀 하는 것의 원인은 ‘나’라는 결론을 내렸다. 과거의 문제에 얽매이는 것은 인정하지 못하는 ‘소심한 나’에서 비롯된 것이고 같은 문제를 반복하게 될까 바 두려운 ‘겁쟁이인 나’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가올 미래에 대해 계획을 세우고도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 ‘도량이 좁은 나’에서 비롯된다.
문득 현재는 과거와 미래가 버무려져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는 지금까지 지나온 시간들이고 미래는 다가오지 않은 시간들이라면 현재는 그 둘을 잇는 찰나이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과거와 미래로부터 현재가 완전히 자유로워 진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과거의 미련을 떨치고 미래에 다가올 불안감으로부터 흔들림 없이 자기 자신을 믿는 것 또한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본인을 감옥에 가두고 끊임없이 고문하는 쳇바퀴에서 벗어나 냉철하게 마음을 다 잡아먹고 세상을 두 눈 똑바로 바라볼수록 과거에 밀고 미래가 당기며 내는 시끄러운 전쟁 음이 잔잔한 호수처럼 가라앉고, 시체가 아닌 살아 숨쉬는 ‘나’로 현재를 느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스치듯 떠오른 시 한편을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歸天’
시인은 고통스러운 현존의 삶을 죽음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바라보고 있다. 누구보다도 비참하고 불행한 삶을 이어가며, 누구보다도 고통스러운 삶을 견딘 시인은 놀라운 관용과 초연함으로 삶을 끌어안는다. 그러자 비참한 불행으로 얼룩진 삶은 “아름다운 소풍”이 되어버린다. 이 시의 어디에도 삶의 고단함이나 죽음의 쓸쓸함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