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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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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성준
댓글 0건 조회 6,152회 작성일 16-05-28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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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Sapiens> - 유발 하라리 Yuval Noah Harari

 

요즘 들어 유독 자주 눈에 띄는 책이 하나 있었다. Facebook의 팔로워들이 너도나도 추천하는 바람에 타임라인에서도 몇 번씩 접하였고, 오프라인 서점을 갔을 때에는 가판대 하나를 통째로 차지하고 있었다. ‘사피언스’라는 책 제목만 보고는 과거 원시시대를 기술한 역사책인가 싶었고, ‘유발 하라리’라는 저자 이름은 난생 처음 들어 보았다. 도대체 어떤 점이 그다지 유명하지도 않은 저자의 책을 갑작스럽게 초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려 놓은 것일까? 너무나도 궁금하였기에 서점에서 책 실물을 보는 즉시 별 다른 고민도 없이 바로 구매하게 되었다.


책을 읽으며 가장 놀라웠던 것은 과거 호모 사피엔스가 지배했던 수렵채집인 생활부터 현대 문명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역사를 포괄적인 시선으로 이해하기 쉽게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태껏 특정 시대의 단편적 모습만을 서술한 글은 쉽게 접할 수 있었지만, 이처럼 인류 역사 전체에 걸쳐 각 시대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을 통찰력 있게 풀어낸 글은 본 적이 없었다. 특히, 인류의 기원이라 불리는 호모 사피엔스와 호모 네안데르탈인, 호모 에렉투스 등 여러 인간 종이 섞인 시대에서 각 종들 간의 관계와 상호 작용을 풀어낸 책은 처음이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어떻게 사피엔스가 다른 인간 종들을 모두 멸종시키고 세상의 주인이 되었는가 하는 점이었다. 모든 동물은 유전자에 있는 DNA에 의해 행동 발달이 이루어지고 그 종 만의 특성을 갖게 되는데, 침팬지나 보노보 원숭이같이 아무리 사회성이 좋은 동물이라도 한 군집을 이루는 개체 수는 150마리 라는 임계치를 넘기가 어렵다. 군집이 그 이상으로 커지게 되면 무리의 리더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영역이 필연적으로 생기게 되고, 그로 인해 성장하는 반란 분자에 의해 새로운 무리가 분리, 독립하게 된다. 만약 다른 동물들과 같이 사피엔스도 단순히 DNA에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대로만 움직인다면 한 군집에 150명 이상의 개체 수를 유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사피엔스는 어느 순간부터 창조적 돌연변이에 의해 허구를 상상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역사상 군집을 결속시키는 가장 강력한 도구의 발현이었다. 저자는 이를 인지혁명이라고 하는데, 약 7만년전부터 3만년전 상에 출현한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방식을 말한다. 무엇이 이를 촉발했는지 입증할 수는 없지만 가장 보편적인 대답은 우리 언어의 놀라운 유연성이라고 한다. 동물의 언어는 사실만을 말하지만 인간은 뒷담화와 허구를 말할 수 있다. 뒷담화는 악의적인 능력이어도 많은 숫자가 모여 협동을 하려면 반드시 필요하고, 또한 허구는 단순한 상상을 넘어 집단적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많은 허구들이 모여 커다란 집단이 협력하는 유례없는 능력을 갖게 하였고 이것은 자연적 규모인 150명이라는 결정적 임계치를 넘어 수십만 명이 거주하는 도시, 수억 명을 지배하는 제국을 건설할 수 잇게 만들었다.


또 다른 흥미로웠던 점은 농업혁명에 대한 저자의 시각이다. 흔히들 생각하기로는 농업혁명으로 인해 인간의 삶이 급격하게 풍요로워졌고 다른 떠돌이 동물들과 달리 정착 생활이 가능해 짐으로써 인류의 역사와 문화가 유지, 발전될 수 있었다고 알고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수확량이 늘어나서 인류에게 양적으로 풍요롭고 무엇보다 안정적인 식량 공급을 가능하게 하였다. 하지만 농업혁명 이면에는 현대의 불평등과 노동 착취의 시작점이 있었다. 농작물을 수확함으로써 초기 인류는 더 많은 수확물들로 인해 개인에게 돌아오는 식량이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래서 과거 수렵채집시대 때 보다 주 평균 노동 시간이 증가하더라도 기꺼이 농업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들은 수확량이 많아지면 아이들이 더 많이 태어날 것이란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증가한 수확량은 모두 더 많아진 아이들에게 돌아가야 했고, 개인에게 돌아오는 식량의 양은 이전만 못하게 되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와중 일부 소수 엘리트 들에 의하여 수확물의 불평등한 분배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결국, 농업혁명은 더 나은 식사와 더 많은 여유시간을 가져오기는커녕 오히려 인구폭발과 방자한 엘리트를 낳고 사회 서열화와 착취 가부장제의 길을 열었다. 평균적인 농부는 수렵채집인 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며 그 대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


이후 인류의 또 다른 전환점은 과학혁명이라고 한다. 과학혁명이 가지는 의미는 인지혁명이나 농업혁명과는 사뭇 다른데, 이 전까지는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자연 선택의 지배를 받아왔다면 과학혁명 이후부터는 인류가 점차 신의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는 점이다. 생명과학을 통해 그 동안은 거스를 수 없었던 유전의 법칙을 바꾸고 수명을 연장시킨다. 그 전까지는 불가능 하였던 이종 교배가 가능해졌다. 이러한 과학혁명은 인류 전체의 지식과 생산량을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시켰지만 문제는 그로 인한 산물이 여전히 불평등하게 분배되고 있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오늘날 풍요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일주일에 평균 40~50시간 일하며, 개발도상국에선 평균 60시간, 심지어 80시간씩 일한다. 이에 비해 지구상 가장 척박한 곳에서 살아가는 수렵채집인, 예컨데 칼라하리 사막 사람들은 주 평균 35~45시간밖에 일하지 않는다. 이들은 사흘에 한 번밖에 사냥에 나서지 않으며, 채집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하루 3~6시간에 불과하다. 평상시에는 이 정도 일해도 무리 전체를 먹여 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인류와 세계경제는 성장을 거듭했을지라도 개인의 행복을 기준으로 하면 상황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그 동안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방식으로 인류의 역사를 서술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통찰을 준다는 점에서 왜 이 책이 그토록 인기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인류 역사의 거대한 흐름, 그 흐름 속에서 인류가 선택한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끔 하였다. 오늘날 과학혁명은 자연 선택을 약화시키고 이를 인간 자체적인 지적 설계로 바꿔나가고 있다. 이미 지구상의 주인으로 자리잡은 지금 인간을 견제할 만한 건 딱히 없어 보인다. 유일한 방어기제는 인간 스스로 자성하고 과거의 사례를 짚어 앞으로 닥쳐올 결과를 최대한 예측할 수 밖에 없다. 저자는 과학혁명의 결말은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이라고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인간은 어떠한 방향으로든 돌파구를 찾아내왔고 인류 보존의 본능은 그 무엇보다도 클 것이기에 저자와 같은 결말을 상상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항상 현재의 결정이 미래에 줄 영향을 생각하고 예측하고자 함은 누구나가 가지고 고민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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