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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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의 목소리
-미래의 연대기
-2015 노벨 문학상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저
-미래의 연대기
-2015 노벨 문학상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저
두렵고 무섭다. 부정적인 감정을 뜻하는 단어 중에 앞에서 이 감정들은 오묘하다. 사람들은 두려움을 즐기기도 한다. 호러 영화나 익스트림 스포츠 등을 통해 두려움을 환희나 즐거움으로 바꾸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감정의 전환을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것은 ‘앎’이다.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 안전하다는 것과 같이 궁극적으로 그 끝을 안다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현재의 두려움이 ‘연출된 두려움’이라는 보호막을 씌어주어 두려움 대신 안도감을 갖게 한다. 이 책은 체르노빌 원전사고 후 주변 지역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그대로 들려준다. 사고의 마지막을 상상할 수 없는 그들은 두려웠고, 두려워하고 앞으로 올 두려움을 예상하며 떨고 있다.
1986년 어느 날,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에서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였다. 막대한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사고 지역으로 투입되었다. 그들의 발 빠른 몇 분의 대처가 재난으로 인한 국가 멸망을 막았다. 그러나 원전사고 이후 150만 명 이상이 죽었고, 벨라루스내의 마을이 485개가 없어졌으며, 러시아에 흩어진 방사선 핵종은 20만년 이상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전쟁에서 사용되는 핵은 두려워하지만, 원자력 발전소 내의 핵은 ‘평화적 핵’이라 부른다. 정치가들과 과학자들이 그것은 에너지를 공급해주며 매우 안전하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전한 체르노빌 발전소가 폭발했고, 진도 8.0의 지진을 견딜 수 있는 후쿠시마 발전소가 진도 9.0의 지진에 무너졌다. 일반적인 사고라면 막대한 재산 피해에 슬퍼할 테지만 원전사고의 경우는 재산 피해에 슬퍼하며 눈물을 흘릴 정신적 여력이 없다.
세계적으로 443기의 원자력 발전소가 가동 중이다. 미국 104기, 프랑스 58기, 일본 55기, 러시아 31기, 그리고 한국에 21기가 있다. 정확한 계산은 못해봤지만 아마도 우리나라가 단위면적당 원자력 발전소의 개수가 세계 최정상 수준일 것 같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나라는 지진대의 영향권에 속해있지는 않다. 그래서 내진설계가 약하다. 예전처럼 원자력의 힘을 모르지 않는다. 그 종말을 안다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의 행동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자본이 지배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기도 하다.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꿈을 꿀 수 있고, 대부분의 사람은 그를 좆으려고 노력한다. 꿈을 이루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들을 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어떤 이는 낙오하고 어떤 이는 꿈을 이룬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낙오하는 이의 실패이유가 기회의 불평등에서 기인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단지 원자력 발전소 주위 혹은 원전사고가 일어났던 지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기형적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꿈을 좆는 인생의 시작점부터 평등하지 못하다는 것은 이 시대를 먼저 살고 있는 선배로서 해야 하는 행동이 아니다.
체르노빌과 인근 지역의 사람들은 ‘평범한 죽음’을 원한다. 방사선 피폭으로 인한 기형적 죽음이 아닌 인간이라면 자연스럽게 겪게 되는 노화로 인한 죽음을 원한다. 그들은 선천적 ‘체르노빌 장애’를 겪고 있다. 그들은 마치 실험 대상처럼 원자력 연구자들의 시선을 받는다. 그들의 일생은 방사선이 인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정확하게 기록해주는 ‘인간 블랙박스’이다. 그들이 그들의 삶을 이런 식으로 인식한다는 것은 이 시대의 뼈아픈 실수이다.
책의 한국어판 서문에 옮긴이는 ‘나는 과거에 대한 책을 썼지만, 그것은 미래를 닮았다.’라고 적었다. 책의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원전사고가 위험한 것은 그것이 단지 과거의 사고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후대에까지 매 시간 사고가 나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공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지금 당장 원자력 연구소를 모두 폐기하자고 주장하긴 어렵다. 하지만 앞으로의 연구는 원자력을 더 안전하게 하는 방향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에너지를 얻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고도화된 미래 기술이 원자력의 안전을 보장하더라도 100%가 아닌 99.99%일 것이고, 기술 발전은 뒤에 9를 하나 더 만들 뿐이다. 우리는 실수할 가능성이 있는 나약한 인간이기에 실수해도 ‘재산피해에 슬퍼할 여력이 있는’ 기술을 택하고 그것을 발전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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