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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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니콜라스 카 지음
나는 책이나 긴 기사에 쉽게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의 사고력은 서사 구조나 논거의 변화 등을 쉽게 따라갈 수 있었고, 수시간 동안 긴 산문 속을 헤매고 다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좀처럼 그러기가 쉽지 않다. 한두 쪽만 읽어도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시작하면서 안절부절 못하고 문맥을 놓쳐버린다. 그러다 곧 다른 할 일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다. 나는 다루기 어려운 뇌를 잡아끌어 다시 글에 집중시키려 애쓴다. 예전처럼 독서에 집중하던 행위는 어느새 벌써 투쟁이 되어버렸다. -p. 20
위 단락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20 페이지에 나오는 얘기이다. 나는 이 글을 보자마자 나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예전에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한 번에 열권 이상의 책을 빌려보던 때가 있었다. 앉아서 책을 읽노라면 네다섯 시간은 거뜬히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대학 입학 전까지의 이야기였다. 대학교에 들어온 다음에는 자료를 찾기 위해서 인터넷에서 여러 사이트를 돌아다녔고, 몇 가지 키워드와 클릭과 닫기 버튼만으로 손쉽게 많은 정보를 모을 수 있었다. 책을 빌리러 도서관에 갈 필요도 없었다. 방대한 데이터를 가진 인터넷의 사용에 익숙해지면서 내 생활과 습관은 많이 바뀌었다. 간단한 레포트를 낼 때에도 펜을 가지고 적어서 제출하기보다는 주로 컴퓨터 상에서 작업을 했고, 책을 찾아보기보다는 주로 구글을 이용했다.
그때부터였을까. 어느 순간부터 책을 읽기가 무척 힘들었다. 책을 빌리고 자리에 앉아서 책을 펴기까지의 과정조차도 벅차게 느껴졌고, 책을 피고 몇 장 읽지도 못하고 자꾸 핸드폰으로 손이 갔다. 정말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라 무척 읽고 싶었던 책인데도 불구하고 결국 마지막 페이지를 읽지 못하고 반납했던 기억이 있다. 책보다는 스마트폰의 메신저와 SNS에 자꾸 손이 갔다. 심지어 이런 일도 있었다. SNS를 지속적으로 이용하다보니 SNS를 자꾸 무의식적으로 클릭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래서 스마트폰 바탕화면에 있는 어플리케이션을 지웠는데, 지운 빈 공간을 클릭하고 있는 나를 보았을 때, ‘정말 심각하다’라고 느꼈다. 이와 더불어 한 가지 일에 몇 분 이상 집중하지 못하는 내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중학생 때나 고등학생 때와 달라진 환경 때문에 그렇거니 생각했었지만, 단순히 이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나는 아무 것도 안하는 시간조차도 자꾸 무언가를 원하고 무엇과 연결되기를 갈구하고 있었다. 몇 분을 못 참고 카카오톡을 확인하고, 일하는 시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메일을 들어갔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내가 이렇게 참을성이 없는 사람이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마크 주커버그가 개발한 SNS의 영향이 적지는 않을 것이다. 남들이 올린 글들을 최신의 순서대로 정렬해놓은 뉴스피드(News feed)라는 공간은 아마 SNS를 한번이라도 해 본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자꾸만 새 글이 올라오고, 예전의 글은 아래로 내려간다. 이러한 공간에서 긴 글들은 눈 깜짝할 새에 밑으로 내려가 버린다. 사람들은 점점 짧은 글을 선호하게 되었고, 이러한 경향에 맞추어 우리는 짧은 글과 함께 얕은 사고를 하는 사람으로 점점 변하고 있는 것이다. 긴 글을 읽을 기회도 없거니와 읽기 싫어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책을 거부하게 된 것이고, 자연스레 그 전과 비교하여 생각할 시간이 적어지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의 사고는 짧은 글 속에 갇혀버렸다.
구글의 성장도 무시하지 못 할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예전에 학교를 다녔던 교수님들께서는 말씀하시길, 그 시절에는 보고 싶은 논문이 하나 있으면 그 논문을 찾기 위해서 서울 혹은 포항에 있는 대학교의 도서관에 직접 가서 찾아보셨다고 한다. 당연히 하나의 논문 하나에 많은 시간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하셨다. 읽은 논문은 본인이 직접 적은 필기와 함께 책장에 차곡차곡 모아두었고, 이 논문들이 나중에 본인의 연구에 큰 재산이 되었다고 하셨다. 하지만 지금은 논문을 하나 찾는데 걸리는 시간이 불과 수 분, 길어도 십 여분을 넘지 않는다. 당연히 논문 하나를 읽고 고민하고 생각하는 시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다른 자료를 찾을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예전에는 도서관에 가서 직접 책을 찾고 목차를 보고 그 내용을 찾아서 필기를 하거나 복사를 했는데, 지금은 키워드 몇 개만으로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영향으로 인해 지식과 지식을 찾는 사이의 시간이 급격하게 줄어들게 되었고, 당연히 생각할 시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또한,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인터넷을 찾아보는 것이 시간으로나 효율 면으로나 더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문제나 사건이 생겼을 때 본인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인터넷을 검색하는 것을 당연히 더 선호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사색을 할 시간이 줄어듦은 물론 생각하기가 번거롭고 귀찮게 느껴지는 것이다.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도 마찬가지로 최근 들어 많은 사람들이 긴 글을 읽기 힘들어하고 집중하지 못하는 고충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의 논점을 따라가보면, 뇌는 ‘가소성’을 지닌다. 즉, 나이와 관계없이 뇌는 우리가 사고하는 대로 바뀐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부분은 점점 더 발달하고 어느 부분이 손상이 입었다고 할지라도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사용하고자 하면, 뇌의 시냅스 부분의 회로가 바뀌어 손상된 부분을 대체하게 된다. 실제로 마이클 번스타인이라는 남성은 쉰 네 살때 입은 심각한 뇌졸중으로 몸의 왼쪽을 조절하는 오른쪽 뇌의 절반이 손상을 입었지만, 지속적인 반복과 훈련을 통해서 몇 주만에 그는 지팡이를 버리고 왼쪽 손발을 거의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어떤 사람이 실명을 했을 경우, 시각을 처리하던 회로인 시각 피질 부분이 그냥 멈춰 사용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청각 혹은 촉각의 회로로 바뀌게 되고, 그 결과 다른 감각이 더 예민해진다.
뇌의 ‘가소성’ 덕분에 우리는 새로운 것에 적응을 할 수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적응이 무조건 좋은 쪽으로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많은 사람들은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것에 빨리 적응하고 손쉽게 정보를 찾을 수 있었고, 효율적으로 시간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인터넷의 사용은 많은 모순을 수반한다. 인터넷은 우리의 관심을 사로잡기는 하지만, 결국 우리의 정신을 산만하게 만든다.
인터넷을 이용한 정보의 검색은 정신적으로 집중하는 형태의 멀티태스킹을 요구한다. 우리의 기억을 수많은 정보로 넘쳐나게 하는 것 뿐 아니라, 우리의 인지력에 대한 ‘전환 비용’을 부과하게 한다.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관심을 돌릴 때 뇌는 스스로 방향을 다시 잡아야하고, 우리의 정신에 더 많은 고통을 가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음악을 듣는 동시에 어떤 악기를 연주한다고 생각해보자.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수행하지 못할 것이다. 단지 ‘두 가지의 일을 동시에 하는 척’을 할 뿐이다. 인터넷으로 정보를 검색하는 것은 세 가지 이상의 일을 계속적으로 전환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하나의 정보를 유심히 읽기 보다는 몇 분 내에 열 댓가지의 정보를 열고, 눈으로 대강 훑고, 닫는다. 결과적으로 같은 시간에 하나의 글을 읽는 것보다 많은 양을 보기는 했지만, 이해하는 정도는 급격하게 낮아진다. 또한, 인터넷 검색 이외에도 우리는 문자와 이메일, SNS, 음악듣기 등을 동시에 수행하고, 몇 십 분동안 최소한 대 여섯개의 알람을 받게 된다. 당연히 이런 많은 일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은 집중력을 상당히 분산시키고 뇌를 산만하게 만들어 기억을 약화시킨다.
인터넷 사용자들의 집중적인 뇌 활동 양상은 깊은 독서 등, 지속적인 집중을 요하는 행동들이 온라인에서는 왜 그렇게 어려운지를 설명해준다. 온라인에서는 수많은 찰나의 감각적 자극을 처리하며 링크들을 평가하고, 또 관련된 내용을 검색할지 말지를 선택해야한다... (중략)... 우리가 링크와 마주칠 때마다 적어도 몇 분의 몇 초라도 멈추고 우리의 전전두엽 피질이 그것을 클릭해야 할지 말아야할지 판단하야한다. 이는 특히 자주 반복되었을 때 이해력과 기억력을 저해한다. P.182
인터넷을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이러한 환경에 반복적으로 노출되기 때문에, 우리의 뇌의 회로가 변화한다. 인터넷을 훑어보는데 시간을 보내느라 책을 읽을 시간이 사라진 것과 같이, 짧은 글과 간단한 단어로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고 SNS를 하는 시간 때문에 문장과 절을 지어내는 데 투자하는 시간이 사라졌다. 수많은 링크들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느라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우리에게는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 그 결과, 오래된 지적 기능과 활동에 사용되던 뇌의 회로들은 약해지고 해체된다. 뇌는 사용하지 않는 뉴런과 시냅스를 더욱 긴급하고 바쁜 업무 수행을 위해 변화한다. 우리는 새로운 시각과 새로운 방법을 얻지만, 오래된 것은 잃어버린다.
무엇보다도 무서운 것은, 내가 대학생일 때보다, 대학원에 있을 때 인터넷의 사용 시간이 훨씬 많아졌다는 것이다. 실험과 연구 계획을 설계하기에 앞서 선행된 연구를 찾아보는데, 빠른 시간에 많은 문헌을 찾기에는 단연 인터넷이 으뜸이다. 하지만 인터넷으로 빠르게 논문을 찾고 읽는 것이 반복될수록, 책을 읽는 것이 어려워졌고 이와 더불어 사색하는 시간이 줄어 생각하는 능력이 줄어든 것은 나만 느끼는 생각이 아닐 것이다. 많은 대학원생들, 특히 긴 글을 읽지 않는 이공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아마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느낌을 적지 않게 받았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측해본다.
기술의 유혹은 거부하기가 어렵고, 우리가 사는 정보 시대에서 속도와 효율이 주는 이득은 무시할 수 없는 가치이다. 하지만 우리가 항상 인스턴트 식품만 먹고 살 수 없듯이, 인스턴트와 같은 정보들만으로 살아가서는 안 된다. 생각하는 힘은 언어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내 생각을 상대방에게 표현하는 것도 언어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언어는 사고와 서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발전하거나 퇴화한다.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다가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다른 동물들에 비해서 인간이 뛰어난 점은 사고를 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생각을 넓게 확장시키는 것은 사람을 더욱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한다. 계산을 하고 정보를 찾는 속도는 실리콘으로 이루어진 컴퓨터를 절대 따라갈 수 없다. 인간에게 필요한 능력은 어떤 지식에 대해 직접 아는 능력이 아니다. 그 지식에 대한 관련 정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것과 더불어 우리의 생각 안에서 독창적인 지식이 떠오르게 하는, 새로운 일련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능력이다. 이따금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책을 들고, 인터넷을 끄고 생각하는 시간을 갖자.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486컴퓨터보다 못한 신세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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