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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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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태인
댓글 0건 조회 5,616회 작성일 16-05-17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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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한나 아렌트 저



   1961년 전세계 사람들의 이목이 이스라엘의 한 재판장에 집중되었다. ‘악의 화신’이라고 알려진 나치 아래에 있던 한 인물의 전범 재판이 있었기 때문이다. 재판장에 출두한 그 인물은 바로 아돌프 아이히만이었다. 독일 나치스의 친위대 장교였던 아이히만은 제 2차 세계대전 중 독일 및 독일 점령 하에 있는 지역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의 체포와 강제 이주를 계획한, 즉 유대인 박해의 실무 책임자였다. 그의 겉모습은 제 2차 세계대전의 홀로코스트의 전범이라고 하기에는 볼품이 없었다. 50대 중반, 작은 키에 숱이 없는 머리카락을 지닌 그는 실망스러울 정도로 평범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치스의 유대인 학살을 지휘했던 것으로 악명이 높았던 아이히만은 유대인들에 대한 범죄, 인류에 대한 범죄, 그리고 전쟁 범죄로 기소를 당하였는데, 기소 항목은 총 15가지였으며, 이 중 하나만 유죄 판결이 나도 사형이었다.


   재판장에 참관한 한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1906년 유대인의 핏줄을 가지고 태어난 철학자 한나 아렌트이다. 독일에서 태어난 그녀는 나치스가 독일에서 집권을 하자 프랑스로 망명하여 반나치 운동에 참여하다가 수용소 생활을 경험했었고, 가까스로 탈출하여 미국으로 이주하여 그 후에도 전체주의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서슴지 않는 철학자였다. 그녀는 제 2차 세계대전 후 유대인 학살의 주범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히만이 이스라엘의 비밀경찰에 의해 잡혀와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에 그녀는 미국의 교양잡지 ‘뉴요커’의 재정적인 지원을 받아 특파원 자격으로 예루살렘에 가서 재판을 참관하게 되며 그녀의 기사는 다섯 차례에 걸쳐 ‘뉴요커’에 게재되었다. 그 후 게재된 기사들을 엮은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출간된다.


   한나 아렌트는 직접 재판장에서 아이히만을 보았을 때 상당히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유대인의 학살을 저지른 그를 살육을 즐기는 악귀 혹은 냉혹한 악당이라고 지레짐작했기 때문인걸까. 아렌트는 피고석에 서서 증언을 하는 아이히만에게 실제로 저지른 악행에 비해 매우 평범하다는 인상을 받았고, 그는 어떠한 이념에 광분한 인간도 아니었다. 아이히만은 법정에서 한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검사 : 임무와 양심 사이에서 갈등한 적은 없었습니까?

아이히만 : 월급을 받으면서도 지시에 따르지 않았다면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것입니다.

검사 : 자신의 죄를 인정합니까?

아이히만: 도대체 무엇을 인정하라는 말입니까? 저는 남을 해치는 것엔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제가 관심이 있는 건 맡은 일을 잘하는 것 뿐입니다. 나는 잘못이 없습니다. 단 한 사람도 내 손으로 죽이지 않았으니까요. 죽이라고 명령하지도 않았습니다. 내 권한이 아니었으니까요. 나는 시키는 것을 그대로 실천한 하나의 인간이며 관리였을 뿐입니다. 

-1961년 이스라엘 예루살렘 법정, 아돌프 아이히만의 진술



   재판을 끝까지 지켜본 그녀가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은 놀라웠다. 전체주의와 나치를 그토록 싫어했던 그녀였음에도, 교수대에 처형시켜도 분이 풀리지 않을 민족의 원수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이히만을 살인자 혹은 정신 이상자라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를 흔히 주위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한 인간이라고 일컫는다. 하지만 그녀는 아이히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역설했다. ‘그는 아주 근면한 인간이다. 그리고 이런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유죄인 명백한 이유는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만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했을 뿐이다.’라며 아이히만이 유죄인 이유를 설명했다. 결국 아이히만은 사형판결을 받았고, 1962년 교수형에 처해진다.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을 주장했다. 홀로코스트와 같은 역사 속 악행은 광신자나 반사회성 인격장애자들이 아니라 국가에 순응하며 자신들의 행동을 보통이라고 여기게 되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행해진다고 아렌트는 말했다. 아이히만은 사악한 괴물이 아니라 평범하고 근면한 인간일 뿐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사유하기를 포기함으로써 인간이기를 포기했고, 악행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주어진 일을 행한 결과 그는 인간이 아닌 괴물이 되었다.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은 우리에게 많은 부분을 시사한다. 자신이 소속된 집단에서 권력자의 명령을 아무 생각 없이 수행하고, 상사의 명령을 기계적으로 성실히 따르는 사람들은 현실에서 여전히 많이 존재하고 있다. 아돌프 아이히만이 ‘재판에서 자기와 같은 상황에 있었으면 그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라고 했던 말에 대해서 솔직히 말하면 반박할 자신이 없다. 아마 그 상황에서 아이히만의 위치에 있었더라면 대부분의 보통 사람이 아이히만과 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실제로 유대인의 학살에 대하여 아무 말을 하지 못한 사람이 대다수였으니 말이다. 주어진 것을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기계적으로 따르는 것에 대해서 항상 경계해야 한다. 위계 구조가 뚜렷한 조직에서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기는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아이히만과 같은 괴물이 되어서는 안되지 않는가. 그렇기 때문에 비판적인 사고를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며, 자신의 주관을 가지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당당함을 가져야한다.


   세계적인 화학자이자 유대계 작가인 프리모 레비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생존자이며 반파시스트 주의자이다. 그는 아우슈비츠에서 겨우 살아남았고, 그의 경험을 사람들에게 글로 증언하고자 했다. 그런 그의 정신적 계기는 바로 ‘기억하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의미’이며 ‘인간은 불행한 경험 속에서도 살아가야 할 의무’와 ‘그 경험을 전해야 할 의무’였다. 본인과 자신의 민족이 경험했던 것을 기억하고, 그 기억을 잊지 말고 후대에 전하고자 했다. 하지만 유대인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팔레스타인을 몰아내고 이스라엘을 건국함으로 그 명분을 잃었다. 단지 자신들이 2천 년 전 그 곳에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하고 그들을 내쫓았다.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유대인 본인들이 자신들이 겪었던 그 끔찍한 기억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거의 모든 곳을 아우슈비츠로 만들고 있다. 과거에는 홀로코스트 범죄자라고 하면 나치 파시스트를 일컬었지만, 이제는 팔레스타인의 침공을 지지하는 이스라엘 국민들이 홀로코스트로 전락한 셈이다. 프리모 레비는 자신의 민족인 유대인이 팔레스타인 민족에게 저지르는 잔인한 행동을 목격했고, 아우슈비츠의 비극은 또 다른 형태로 반복되는 것에, 인간은 변하지 않는 다는 것에 절망을 하고 자살을 한다. 또 다른 아우슈비츠인 폭력의 땅 예루살렘에서 나치의 전범 재판이 이루어지고, 사형을 집행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모순적이다. ‘유대인 학살’과 ‘팔레스타인을 몰아낸 이스라엘의 건국’은 상당히 닮아있으며,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아이러니하다.


   현대 독일의 교육은 나치와 히틀러에게 생각 없이 동조했던 과거에 대한 반성의 결과이다. 독일인들은 교육을 통해 학생이 스스로 생각할 힘을 길러야만 과거와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들의 교육은 우리나라의 교육과는 차이가 많다. 선생님의 생각을 자신의 생각이라고 믿어버리는 암기와 정답 위주의 교육은 절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줄 수 없으며 단지 상사의 명령에 따라 복종하는 사람들만 키울 뿐이다. 오늘날 우리의 도처에서 마주하는 거대한 악들도 이렇게 생기는 것이 아닐까. 과거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사유하는 힘을 가져야한다. 여기서 말하는 사유란 타인의 입장에서 타인의 처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스스로 사유하지 않는다면 우리와 아돌프 아이히만이 다른 점이 무엇인가.



다른사람의 처지를 생각할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낳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


- 한나 아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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