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북소리 - 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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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북소리 – 무라카미 하루키
무엇인가에 잔뜩 집중해 오랜시간 자리에 있을 때가 있다. 사람마다 그 시간은 제각각이겠지만, 자신말고는 아무도 없는 그 고요한 시간의 끝자락 즈음에서 나는 종종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듯한 북소리를 들을 때가 있다. 이것은 비단 나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무엇인가에 오래토록 집중을 했다는 성취감 또는 뿌듯함에 의한 심장의 쿵쾅거림도 있겠지만은 이성만이 존재하던, 나만이 존재하던 세계가 무너져버리는 듯한 아쉬움, 허전함 혹은 공허함이 급작스럽게 밀려와 어쩌면 조금은 공포스러운 느낌에 의한 맘 속 깊은 곳의 두려운 떨림이기도 할테다. 이런 느낌이 들 때면 이내 나는 집중하던 일은 조금 제껴두고 다른 것을 일부러 뒤적거리기도 한다. 의지할 곳을 찾고 싶기도하고 조금은 그 곳으로부터 심적으로 도망치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1986년, 하루키는 지쳐 있었다. 거미줄처럼 짜여진 강연과 원고 청탁도 문제지만, 자신이 이 생활을 끊을 수 없으며 이렇게 성큼 마흔줄에 들어설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어느 한 시기에 달성해야 할 무엇인가를 하지 않은 채 그 나이에 도달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강박관념, 이것이 어느 날 아침 그가 서둘러 유럽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이유라고 한다. 이 작품은 하루키 자신도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그는 나이 40이 되기 전에 ‘정말 알알하게 내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생의 시간을 자신의 손으로 쥐고 싶어서’ 1989년부터 3년 동안 유럽에 체류하면서 일상을 기록한 (여행)에세이다. 하루키는 이 기간동안 ˹노르웨이의 숲˼과 ˹댄스 댄스 댄스˼라는 2권의 장편 소설을 쓰고, 몇권의 번역서 및 단편집을 탈고했는데, 이 작품을 찬찬히 읽다보면 ˹노르웨이의 숲˼에서 장면마다 왜 그렇게 비가 많이 내렸던가 하는 이유를 알게 된다. ˹댄스 댄스 댄스˼에서 '나'는 왜 하와이를 찾아 떠났는지를 알게 된다.
제목이 유럽여행기 혹은 유럽으로 떠나자 등이 아니라 ˹먼 북소리˼인 이유는 이 작품은 여타 다른 여행기와는 다르게 관광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먼 북소리는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쳇바퀴에서 벗어나고 새로워져야 한다는 불안감과 압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소멸되기 전에 나를 찾고 싶다는 생각. 이렇게 계속 나이를 들어 갈 수는 없다는 생각. 참 지극히 보편적이고도 일반적이며 인간적인 고민을 품고 조금은 다른 환경에서의 일상을 느껴보기 위함이었다. 비단 하루키여서가 아니라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다른 인격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작품을 읽는 내내 나는 왠지 모를 위안과 평온함을 느끼게 되었다.
“아침이 찾아오기 전의 이 짧은 시각에 나는 이처럼 죽음의 기운이 고조됨을 느낀다. 죽음의 기운이 먼 파도 소리처럼 내 몸을 떨게 하는 것이다. 장편소설을 쓰고 있으면 종종 이런 일이 생긴다. 나는 소설을 쓰는 행위를 통해서 조금씩 생의 깊숙한 곳을 향해 내려간다. 작은 사다리를 타고 나는 한 걸음 또 한 걸음 내려간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생의 중심으로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나는 분명하게 느끼게 된다. 그 바로 앞의 어둠 속에서 죽음도 또한 동시에 심하게 고조되고 있다는 것을.” - ˹먼 북소리˼ 중
등장인물의 내면 깊숙한 곳을 다루기 위해서는 모든 작가들이 그러하겠지만 하루키 또한 자신의 생의 깊숙한 곳을 한 걸음 한 걸음 내려가지 않으면 안됐었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그는 어둠을 경험하였다. 그러나 그는 오래토록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나 보다.
“매일 계속해서 소설을 쓰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때때로 자신의 뼈를 깎고 근육을 씹어 먹는 것 같은 기분조차 들었다. 그렇지만 쓰지 않는 것은 더 고통스러웠다. 글을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글은 써지기를 원하고 있다. 그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집중력이다. 그 세계에 자신을 몰입시키는 집중력, 그리고 그 집중력을 가능한 한 길게 지속시키는 힘이다. 그렇게 하면 어느 시점에서 그 고통은 극복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을 믿는 것. 나는 이것을 완성시킬 능력을 갖고 있다고 믿는 것이 중요하다.” - ˹먼 북소리˼ 중
내가 원하는 것 혹은 하고싶은 것을 확고히하고 나 자신을 믿는 것. 자기 계발서에나 나올듯한 뜬구름 잡는 얘기같아 보이지만 (비록 내가 20대 중반의 비교적 어린 나이일지라도) 내가 느껴온 감정과도 너무나도 흡사한 경험을 가진 하루키가 내린 결론을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어쩌면 오랜 집중시간 끝자락의 왠지 모를 두려움은 내가 과연 이것을 잘 마무리할 수 있을까, 혹시 이 길었던 시간이 헛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나에 대한 못미더움으로부터 야기된 불안감이었을 수도 있다. 때때로 들려오는 북소리에 두려워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감을 가져 그 북소리를, 심장의 쿵쾅거림을 좋은 방향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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