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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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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규섭
댓글 0건 조회 6,058회 작성일 16-03-31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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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이규섭


 소설 ‘멋진 신세계’ 속에서 세상은 완벽히 통제되어 있다. 청결 그 자체를 표방하며, 풍요로 가득 찬 소설 속의 세상(이하 ‘문명 세계’로 통칭한다.)이지만 독자의 시선으로는 삭막하게만 보인다. 그리고 문명 세계의 외부에서 온 야만인 존의 눈에도 과거 선망의 대상이었던 ‘멋진 신세계’는 쾌락의 노예이자 자유의지를 잃은 타락한 괴물들로 가득 찬 지옥으로만 보이게 된다. 부족함과 고통 속에서 행복을 찾는 삶을 살아온 야만인이 어떤 사건으로 인해 문명 세계로 데려와 지면서 소설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작가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소설이 현실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핵심구도를 중심으로 접근하는 것도 흥미롭지만, 이번에 책을 읽는 동안에는 이 모든 것을 젖혀두고 ‘버나드’라는 인물에게 초점을 맞추어 감정이입 해 보았다.


 소설 속의 대부분의 인물들은 완벽한 사회의 시스템에 녹아들어 자신의 삶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단 세 사람만이 자신들이 속한 세계에 문제가 있다고 의심을 하게 되는데, 한 명은 알파 계급의 ‘버나드’, 다른 한 명은 그의 절친한 친구인 ‘헬름홀츠’, 그리고 외부에서 온 야만인 ‘존’이다. 헬름홀츠는 문명 세계 내 최상위 계급인 알파 계급으로 그중에서도 특히 뛰어난 사람이다. 그는 너무 뛰어나기에 세상의 시스템이 무언가 결여되어 있음을 알아차리고 이내 의심하게 된다. 야만인 존은 완벽한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은 열악한 외부 세계에서 자랐기 때문에 문명 세계의 문제점을 바로 체감하고 거부감을 드러내게 된다.

 ‘버나드’는 소설 내에서 가장 먼저 문명 세계의 현 시스템에 문제를 자각하고 반감을 품는 인물이다. 그에게는 모두가 의심하지 않는 세상의 문제점을 알아차리는 비범함이 있었지만 신은 그 이외의 것을 그에게 주지 않았다. 그는 알파 계급으로 사회 내 가장 상위 계급에 있으며 업무 능력 역시 뛰어나지만, 세상에 불만을 품고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다. 그런 그의 모습에 주변 동료들은 그가 시험관에 있을 때 낮은 계급에 넣어야 할 약품을 그에게 잘못 투여 했을 거란 의심을 하기까지 한다. 그는 세상을 의심하는 자신의 가치관을 강하게 믿었고, 오히려 그것을남들과 자신을 다르게 만드는 아이덴티티로 받아들였다. 그는 더더욱 세상에 의심을 품었고, 때로는 그것이 자신을 우월하게 만들어 준다고 여겼다. 

 결국 열등의식으로 가득 찬 버나드의 행동은 그를 사회적 이단아로 만들었고, 사회로 부터 퇴출될 위기에 처하기 까지 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야만인 존을 발견하면서 그의 유일한 관계자로써 사회적 지위가 급격히 올라가게 된다.

 버나드는 세상의 이단아에서 세간의 관심을 받는 스타가 되었고 거만해졌다. 그리고 동시에 그는 더는 세상에 불만을 느끼지 않았다. 불만을 느낄 틈이 없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우월해진 자신의 삶을 즐기면서 문명 세계에 흡수되어 버렸다. 그가 세상에 불만을 느낀다는 것은 더는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비범함의 확인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는 대담하게도 세상에 불만을 품고 있다는 점을 더 당당하게 자신을 만나러 오는 사람들에게 설파했다. 많은 유명인이 버나드를 통해 존을 만나보려고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였고, 결국 존이 문명 세계를 거부하게 되면서, 버나드의 짧은 볕 들 날은 끝이 나버렸다.

 취소되었던 아이슬란드 행 퇴출이 다시 확정되면서 그는 비굴한 인간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주는데, 그의 친구인 헬름홀츠와 존이 보는 앞에서 그들을 부정하며 총통 앞에 무릎을 꿇고 절대 충성을 맹세하며 퇴출을 재고해 주기를 요청한다. 눈물 흘리며 이성을 잃은 그의 모습은 구질구질하지만, 한편으론 순진하기 그지없어 보였다.

 그는 세상의 문제점을 발견하는 비범함을 보이기도 했다. 알파 계급답게 자신의 업무 수행 능력 역시 뛰어났다. 그러나 그는 비범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가 세상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자신이 문제라고 생각한 것을 위해 어떤 것도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 버나드를 보면서 세간의 많은 사람들을 떠올렸다. 생각보다 세상에는 참 똑똑한 사람들이 많다. 세상의 많은 문제점들을 분석하고 자기 생각을 마구 늘어놓는 그런 사람들은 세상에 널리고 널렸다. 그러나 진정으로 세상을 바꾸는 이들은 그들이 아니다. 그들은 단순히 자신의 가치관을 어필할 뿐이며, 비범한 통찰력으로 세상을 문제점을 발견한 것이 아니다. 얼핏 보기에 그들은 세상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에게 있어 비판적인 사고는 자신만의 가치관을 구축하는 과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만, 존의 등장으로 사회적 지위가 급부상한 버나드가 그러했듯, 이들 중 대다수 역시 그들의 열등의식을 채워줄 무언가가 충만해지는 순간 그들의 비범함을 벗어 던지고 현실에 안주할 것이다. 남들과는 다른 비범함을 보이기 위한 수단으로서 비판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이 세상의 ‘버나드’들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정말 가슴 아프게도, 나는 나 자신을 버나드에 투영해서 소설을 읽고 있었다. 나 역시 그와 다를 바가 없었다. 타인과 세상을 비판하고, 내 삶을 의심하며 끊임없이 반성하고 그러면서 그 안에서 스스로를 구축해오고 있었다.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끊임없이 스스로의 가치를 찾아 헤매면서 결정적인 순간에는 주저했었다. 그렇기에 책을 읽는 내내 버나드를 분석한 헬름홀츠의 냉철한 한 마디 한 마디가 아팠다. 그러나 어느 누군들 그러하지 않을까. 그래서 버나드가 보여주는 구차하고 추잡한 모습에도 그를 미워할 수만은 없었다.


 멋진 신세계는 기형적인 미래 세계를 그리고 있다. 그럼에도 다시 한 번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세상이 친숙하게 느껴진 것은. 지금의 세계와 닮은 점을 발견했다는 그런 일반적인 평론을 벗어나,지금 나와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닮은 비범한 듯 평범한 인물이 전체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소설 속에서 헬름홀츠의 입장에서 날카로운 묘사로 버나드를 분석한 구절을 인용하며 마친다. 


그는 버나드를 좋아했다. 그는 자신이 중요하게 느끼고 있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친구가 버나드라는 이유로 버나드에게 감사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버나드에게는 그가 싫어하는 점이 있었다. 예컨대 뽐내려는 태도가 그런것에 속했다. 게다가 그것과 교대로 나타나는 비참한 자기연민이었다. 또한 일이 끝나고 난 다음에야 대담해지는 슬픈 습성과 사건의 현장을 벗어난 곳에 와서 비범한 침착성을 발휘하는 습성이 싫었다. 그는 버나드를 좋아했기 때문에 이러한 습성이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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