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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쓰지 않는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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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현준
댓글 0건 조회 5,552회 작성일 16-03-29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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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우르르 몰려나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방금 전 까지 본 영화의 이야기를 나눈다.

 영화 보는것을 좋아하는 나는 매번 영화를 볼 때마다 일부로 들으려하지 않아도 들리는, 수 많은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

 굉장히 특이 한 점을 발견한 적이 있다.

 지금까지 총 본 영화가 200편 정도이니 적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들의 대화 중의 특이 한 점을 일반화하거나

 그런 현상을 간드러지게 분석하기엔 나는 사회학자도, 심리학자도 아니였기에 곧 잊고 다시 일상생활을 해왔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는 연습'을 읽어 내려가다가 문득 머릿속에서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듯 그 특이한 점을

 설명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을 적어 내려가보려 한다.


 내가 느낀 특이한 점은 같은 영화를 보고도 반응이 다르다는 것인데, 이러한 차이가 단순히 취향적인 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닌 것 같다는 것이다. 모두가 한 영화를 보고 재밋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재미를 못느낀 사람과 느끼는 사람이 단순히

 취향이 안맞은 것이 아닌, 같은 영화를 봐도 전혀 다른 곳에 포인트를 두기 때문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이다.


 내가 과감히 말 할 수 있는 것은 영화를 보고난 뒤에 느낌점을 들으면 그 사람의 관심사나 인성에 대해 대충은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래된 영화이지만, 이해하기 굉장히 어려우면서도 흥행을 한 영화로 '인셉션'을 꼽을 수 있다.

 이 영화가 끝난 무렵에 사람들은 주인공이 죽은 것이냐 만것이냐에 대해서 열띤 토론을 했고, 또 한무리의 사람들은

 '인셉션' 영화를 흥행에 오르게한 환상적인 영상미에 대해서 환호하고 있었다.


 어떤 남여커플 중에는 남자는 이해하기 난해한 스토리라인에 대해 토론하고 싶어하지만

 여자는 영상미에 충분히 감동하였고 더이상 이해하기 힘든 스토리라인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보이는 커플도 있었다.

 특히 그 둘의 대화의 끝이 안쓰러웠는데, "다시는 영화 끝난 뒤에 영화에 대해 이야기 하지 말자"

 라는 여자 쪽의 통보로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남자가 얼마나 분석에 자신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영상미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여자친구에게 굳이 해답이

 나올 수 없는 (인셉션의 결말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많아, 멈추지않는 팽이는 그 이후 많이 패러디가 되었다.)

 질문을 걸어가며 본인의 분석에 감탄하기를 강요해야만 했는지가 궁금했다.


 그 남자의 행동을 본 이후에 난 어떤 느낌을 받았고 한 번 그 느낌을 받은 이후로는 영화관 뿐만이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굉장히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산이 좋냐 바다가 좋냐는 질문에, "조개구이를 맛잇게 먹을 수 있는 바다가 좋다"

 혹은 "산에 오르면서 머릿고기와 함께 곁들인 막걸리 한 잔은 정말 일품이지"라고 가볍게 말해줄 수 있는 것을.

 "산은 어떤 장단점이 있고 바다는 어떤 장단점이 있기에 본인은 바다가 좋다. 하지만 때로는 산의

 장점이 매력적으로 보일 때도 있다" 고 새밀한 본인의 분석능력까지 자랑하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되면서 말이다.

 

 여기서 더 신기한 것은 본인의 분석능력을 일상생활 대부분의 질문에 적용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다른 사람들과

 의견충돌을 하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였다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나의 개인적인 경험에

 비춰보았을 때 그랬다. 하지만, 더이상 나 혼자만의 느낌이 아니라는 것이 얼마나 신기했는지!


 "생각이 아닌 느낌을 말한다"

 저자 '나토리 호겐', 현재 못토이후도(元結不動) 미쓰조인(密藏院) 주지 스님인 그의 까마득히 깊은 수행끝의 무거운

 한 마디에 다소 불안정하고 뜻 몰랐던 내 느낌이 실려있음을 읽었다.


 사람은 본래 많이 알고싶어 함과 동시에 아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그 뜻을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고 싶어한다.

 실제로 가벼운 지식을 입밖으로 내어 상대방의 머릿속에 넣고싶어하는 것은 '미숙한'행동이다.

 영화관 속 한 커플의 여자가 그랬듯, 사사건건 불필요한 생각을 상대로 부터 들어주는 일은 굉장히 불쾌한

 일이기때문이다.

 본인의 생각을 전하고 싶은 가벼운 욕심에 상대방에게 지루하고 불쾌한 시간을 선사하는 행동이 성숙한 행동일리가

 없지 않는가.


 여기서 한 발 자국 더 나아가, 나는 카이스트 학생들이 대화를 할 때에 상대방을 굉장히 지치게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우스갯소리로 '카이스트 학생 같다' '카이스트 맞네' 라는 식의 이야기가 오고가는

 것을 들을 수 있는데, 말많은 카이스트 사람과 대화중에 상대방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면 칭찬을 아닐 것이다.

 상대방이 맥주 한 잔 하며 당신에게 가벼운 질문을 던질 때마다 당신은 멋지게 분석하여 대답했다고 느낄지 모르겠지만

 상대방은 지쳐갈 것이다. 이야기의 진보가 없다고 느낄 것이며, 당신이 겸손하지 못하고 느낄것이다.


 카이스트에는 여러 학과가 있다. 학생 한 명 한 명은 본인의 전공에 대해 자부심을 느낄 수도 있다. 또 카이스트 뱃지는

 충분히 그 분야에서 자부심을 느껴도 될 만큼의 노력의 결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좁은 영역을 제외하고 나서는 보통은 평범한 사람의 평균보다 더 모르고 더 부족하기 일쑤다.

 보편적으로 한곳에 투자된 시간과 비용을 다른 사람들은 다른 곳에 투자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보통 카이스트 학생들이 본인이  광범위한 사회이슈들에 대해 평범한 사람들보다 더 혜안을 가지고 있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혜안에서 나온 분석을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고, 심지어 심어주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불겸손한 문화가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카이스트 학생들은 영화를 본뒤에 논리의 헛점이나 엉터리 같은 스토리라인을 꼬집느라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는 영상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느끼지 못할 것이리라.


 저자는 정중한 삶은 '신경 쓰지 않는 힘'을 길러준다고 말한다.

 모든 곳에 신경쓰고 분석하고 참견하는 것은 다소 불겸손한 면모이다.

 생각이 아닌 느낌을 말하자.

 상대방과의 대화에서 교주가 된마냥 상대방 머리에 똑같이 자기 생각을 불어넣는 것은 상대를 불쾌하게 할 뿐이다.

 상대의 자유로운 사고와 행동을 '신경 쓰지 않는 힘' 그래서 유쾌하고 겸손한 대화로 삶을 환기할 수 있는. 

 그 힘을 얻는 길은 본인의 지식의 잘남을 뽐내고 싶은 욕심을 잘라냄으로 부터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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