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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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자본주의 사회는 은행을 빼놓고는 이야기 할 수 없다. 은행은 예금을 받아 그 돈을 자금으로 하여 대출, 어음 거래, 증권의 인수 따위를 업무로 하는 금융기관이다. 이 중 은행의 업무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대출이라는 업무일 것이다. 대출은 한 사람의 신용을 평가하고 그 신용에 담보를 걸어 돈을 빌려준다는 행위이며 이는 기본적으로 철저한 손익 계산에서 나온 행동이다. 때문에 은행은 지극히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고, 돈을 벌어들일 확률이 높은 자산가에게는 간이라도 내놓을 태세로 자금을 빌려주고 정작 자금이 절실히 필요한 빈곤층에게는 곳간을 열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태도를 취하지 않는 은행이 있는데, 바로 그라민 은행이다.
책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는 그라민 은행의 설립자인 무하마드 유누스가 은행을 설립하는 과정을 회고록 식으로 서술한 책이다. 저자는 그라민 은행을 통한 소액 신용 융자 프로그램으로 수백만에 달하는 사람들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회복하도록 하였으며, 이에 2006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저자는 방글라데시에서 교수 생활을 하면서 대학 주변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며 그들의 삶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한다. 하루 종일 끊임없이 일하고 또 일하는 여성들이 왜 가난한지를 살펴보니, 그것은 고리대금업자에게 돈을 빌려서 수공예품을 만들 재료를 사고 저녁에 이자와 함께 갚는데 이자가 너무 비싸 일한 사람에게는 너무 적은 돈만 남은 것이었다. 이제 저자는 그저 몇 달러만 있다면 가난을 퇴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하지만 은행은 담보가 없는 사람에겐 융자를 해주지 않는다. 그들이 갚을 능력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저자는 가난한 여성 5명씩 그룹을 묶어 담보 없이 돈을 빌려주고 갚게 하였는데, 놀랍게도 상환율이 98%가 넘고 대부분 가난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보통 은행에서 대출받고자 하는 사람들은 담보와 보증인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담보도 없고 보증인도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들은 가장 대출이 필요한 사람이지만 대출을 받을 수 없다. 얼마나 역설적인 일인가? 바로 이러한 생각에서 그라민 은행은 출발하였다. 자본금이 없어서 남의 밑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하루하루 생계를 유지 하기만으로도 벅차고, 잉여 재산과 저축이라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 하지만 그런 이들에게 그라민 은행은 소액 신용 융자를 통해 자신의 사업을 일으킬 수 있게 도와줌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을 빈곤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다. 소액 신용 융자라는 제도를 처음 접해본 사람들은 대부분의 은행들처럼 회의적인 반응을 보일 것이다. 소액 신용 융자는 복잡한 서류나 담보가 아닌 철저한 신용에 기초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위험성이 크고, 원금이라도 상환할 수 있을 것이란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은 빌린 돈을 갚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은 실제로도 그라민 은행의 운영 과정에서도 큰 걸림돌이 되었던 문제이다. 하지만 98%에 달하는 대출 상환 율을 본다면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신용까지 좋지 못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라민 은행은 처음 취지뿐만 아니라 이 생각들을 실현하는 과정 또한 창의적이었다. 까다로운 서류를 작성하게 하고 이런 저런 조건을 내세우면서 엄격하게 대출인을 선정하는 다른 은행들과는 달리 그라민 은행은 오히려 대출을 받을 사람들을 직접 찾아 나선다.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이야기이지만, 그라민 은행의 주안점이 가난의 퇴치라는 거시적인 목표에 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수긍이 간다. 대출이라는 것을 멀게만 느껴왔던 사람들에게 일단 은행의 문턱을 낮추고 소액 신용 융자라는 제도를 더 널리 파급하는 것이 그들이 목표하는 공공의 이익에 더욱 부합하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그라민 은행은 확실히 여타의 은행들과는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일단 은행이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지만 이해관계에 얽혀있지 않고, 정치적 문제들로부터도 거의 자유롭다. 가난한 사람들과 사회적 약자들에게 돈을 빌려주어 자립을 돕고 최소한의 이자를 받아서 은행을 유지해 나간다는 책 속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가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사실 그라민 은행의 탄생은 ‘실험’에 가까웠다. 성실이라는 담보에 의존하여 모든 업무를 진행해 나가는 시도는 자칫하면 은행의 파산으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였지만, 이러한 위험성을 감수하고 시작된 도전은 결국 성공하였다. 이는 가난한 사람들을 보는 다른 은행들의 시각에도 영향을 주었고, 빈곤 퇴치에 대한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하는 본보기가 되었다. 또한 그라민 은행이 영리를 추구하는 기관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선 단체는 아니었다는 점에도 의의가 있다. 저자가 생각한 것은 가난한 가구에게 일정한 지원금을 주는 임시방편적인 자선사업이 아니라, 적지만 이자도 있었고 상환에 대한 어느 정도의 강제성도 부여한 장기적인 ‘제도’ 였다. 가난한 이들을 단순한 자선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금융기관을 이용 할 권리가 있는 정당한 고객으로 보았던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그들이 원해서 가난하게 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은 ‘게으르다’, ‘노력하지 않는다’ 등등 차갑기 그지 없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수많은 편견과 문화적 차이, 정치적 시련들을 모두 이겨내고 그라민 은행을 지금의 위치에까지 올려놓았다. 이는 저자가 가난을 교과적인 경제논리로 접근한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의 권리와 존엄성까지도 연관지어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서민대출상품으로 ‘미소금융’, ‘햇살론’과 같은 소액융자 프로그램이 도입되었다고 한다. 무하마드 유누스의 바람처럼 이 세상에 가난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사라지는 그 날이 오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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