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군 흑치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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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되짚어 볼 때 나라가 흥망성쇠의 기로에 놓인 상황에서는 배신, 배반이 난무하고 말미에는 이러한 난국의 상황을 정리하는 영웅이 등장한다. 고려를 건국한 왕건,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 정도전이 그러하다. 하지만 역사의 너울을 이기지 못하고 비참한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던 영웅들도 있다. 후백제 건국의 꿈을 이루고자 했던 견훤, 고려의 충신 포은 정몽주 그리고 백제의 명장 흑치상지 장군이 이에 해당한다. 여기서 아들들의 배신으로 왕건에게 투항할 수 밖에 없었던 견훤, 이방원에게 살해당한 정몽주는 우리에게 상당히 익숙한 인물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에게 백제의 명장 흑치상지 장군은 생소한 인물일 것이다. 백제의 부흥을 이룩하고자 했지만 백제 기득권층의 내분에 의해 현실에 굴복하고 백제패망의 순간을 지켜 볼 수 밖에 없었던 비운의 백제영웅 흑치상지 장군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서기 660년 나당연합군의 침입에 의해 700년 역사의 백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당나라 소정방등이 이끄는 13만명의 군대가 1,900척의 배를 타고 산둥반도를 출발해 서해를 건너 지금의 덕적도(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면)에 도착하고 신라는 김유신 등이 거느린 5만명의 군사로 백제정벌을 시작한다. 백제 계백의 5천명 결사대 등 백제군의 필사적인 저항에도 불구하고 결국 대규모 정벌군에 의해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백제는 전쟁이 시작된지 1년도 채 안되어 멸망한다. 짧은 시간에 백제가 멸망한 이유 중 하나는 백제의 내분이였다. 특히 웅진의 수성대장 예식진은 의자왕을 잡아 당에 항복하는 배신을 저질렀다. 포로가 된 의자왕은 당의 소정방과 신라 무열왕에게 술잔을 올리는 굴욕을 겪고 당나라로 압송 당하고 끝내 생을 마감한다.
사비성이 함락되었을 무렵, 백제의 명장 흑치상지 장군은 나라가 망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볼 수 없었다. 장군은 부하들을 데리고 임존성으로 갔고 이를 따르는 사람들이 3만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당시 백제를 점령한 당군은 어른 아이 가릴 것 없이 백제 유민들을 살육하는 상황이었기에 백제 부흥운동을 이끄는 흑치상지 장군의 존재는 백제 유민들에게 있어서 영웅과 같았고, 그들의 삶을 지켜줄 마지막 희망이였다. 그러나 계속되는 백제 왕족, 귀족들의 내분, 백강전투에서의 백제·왜 연합군의 패배는 백제 부흥군의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당나라 고종은 백제의 장군 흑치상지의 명성을 잘 알고 있었기에 사신을 보내 항복을 권유하였다. 결국 장군은 당군에 항복을 하고 자신이 지켰던 임존성을 자신의 칼로 스스로 무너뜨린다. 그의 기개와 능력을 높이 산 당 고종은 장군에게 벼슬을 하사한다. 장군은 당나라의 적이었던 토번과 돌궐을 정벌하며 연이은 승전보를 울렸고, 대장군의 지위까지 오른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 때문에 비운의 흑치상지, 잊혀진 민족의 영웅, 흑치상지의 배신 등 다양한 수식어가 붙으며 그에 대한 평이 엇갈린다. 소설의 시각으로는 백제의 충신이었지만 백제 기득권층의 내분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당나라에 귀속했다고 보는 시각이 있고, 백제 부흥의 초심을 잃고 당의 회유에 넘어가 오히려 백제 부흥군을 토벌하면서 당나라에서 큰 입지를 키웠다는 시각도 있다. 많은 역사가들은 후자에 좀 더 무게를 두며 국가와 민족을 배신한 변절자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필자는 데모를 막는 전투경찰 생활, 하루벌어 하루 살았던 해외생활을 하면서 변절자들을 많이 경험했다. 모의데모 훈련상황에서 그렇게 적극적이였던 지휘관들이 부하들이 다치는 실제상황에서는 대부분이 기동대 버스에 숨어 전경들을 지휘했다. 우리는 실전에서 항상 지휘관들의 목소리를 무전기 넘어 들을 수 밖에 없었다. 간혹 타중대 중대장님께서 우리애들 때리지 말라며 몸으로 막아서는 모습을 보면 어찌나 부러웠던지 모른다. 평소에만 힘이 잔뜩 들어간 지휘관의 어깨, 대인배이고픈 그들의 얼굴이 8년이 지난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처럼 기본적으로 변절자들은 평소에는 멋있고 당당하지만 놓칠 수 없는 기회 또는 위기의 상황에서 그 내면을 드러낸다. 기회나 위험이 다가오는 인기척만 들려도 벌써부터 냄새를 맡고 다른 가능성을 마음속에 품기 시작한다. 그들은 공존과 공생을 통한 문제해결을 최우선시 하지 않고 자신이 가장 이득 볼 수 있는 경우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가 흑치상지를 백제의 변절자로 칭하고자 한다면 장군은 백제궁궐이 함락되고 의자왕이 적에게 넘어가기 전에 다른 귀족들처럼 이미 나당연합군에 투항을 했어야 했다. 그러나 왕이 볼모로 붙잡힌 상황에서도 장군은 임존성에서 꺼져가는 백제의 불씨를 지키고자 안간힘을 썼고 백제인들을 다시 규합하였기에 변절자라 쉽사리 칭할 수 없다고 본다.
백제 멸망의 원인은 흑치상지 장군의 배신이 아니라 나라가 멸망해가는 와중에도 권력과 자신의 이익에 눈이 먼 왕족과 귀족들의 행태가 결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막강한 힘을 갖고 있는 영웅이더라도 부패한 권력층과 손을 잡고 난국을 해쳐나갈 수는 없을 것이고 설사 일시적으로 큰 어려움을 극복하더라도 나라의 멸망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군은 희망이 없는 나라, 존재하더라도 백성에게 독이 될 백제라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내린 결정이 아닌가 생각한다. 또한 백제부흥의 불씨를 밝힌 흑치상지 장군이 스스로 백제를 포기하는 심정이 어떠했을지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다. 자국을 배신하고 적에게 투항했으며 백제의 멸망을 도왔던 흑치상지 장군의 불충(不忠)을 비난 할 수는 있다. 그러나 패망 전 백제왕조에서는 어떠한 의(義)나 리(理)도 찾을 수 없었던 만큼 쉽게 장군을 폄하하기는 힘들다. 과연 우리가 흑치상지 장군의 입장이라면 단호히 자신의 목을 희망없는 백제에 바칠 것인지를 숙고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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