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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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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의중
댓글 0건 조회 6,108회 작성일 16-02-01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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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사람들은 한 번 쯤 자신이 자급자족하는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나 또한 어린 시절 ‘무인도에서 살아남기’ 와 같은 만화책을 읽으며 상상을 펼치곤 했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하게 된 이유도 작은 소년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표면적인 이야기에는 인디언 탄압이라는 아픈 역사가 들어있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은 작가 포리스트 카터의 자서전적인 소설이다. 주인공 ‘작은 나무’는 어렸을 적 부모님을 잃고 체로키족 인디언인 할머니, 할아버지 곁에서 자라게 된다. 두 분이 사는 곳은 숲 속 작은 오두막이었고 할아버지가 ‘작은 나무’를 데리고 다니며 자연에서 볼 수 있는 세상의 이치를 알려주신다. 글을 읽는 내내 평화로운 산속의 오두막이 그려졌고 그 안에서 자급자족하는 소소한 즐거움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종종 대자연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사람들의 세상에 대입시켜 풍자하곤 했다. 이는 자신이 몸소 인디언의 아픈 역사를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할아버지는 인디언을 차별하고 강제적으로 이주 법을 세운 백인 정치가들을 혐오하며 이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엿들으며 체로키족의 아픈 역사 또한 파악할 수 있었다.

 

 체로키족에겐 가슴 아픈 역사가 있다. 일찍이 북미 대륙에 자신들의 오랜 전통과 문화를 이어왔지만 영국과 미국이 땅을 개척하면서 여러 압박을 가해왔고 19세기에 이르러 터무니없는 명분으로 [오클라호마 주]로 강제 이주를 당했다. 이 때 원주민 이주는 도보로 진행되었는데 이 길을 ‘눈물의 길’ 이라고 한다. 백인들은 무장을 하고 찾아와 땅을 포기한다는 각서에 강제 서명케 하고 체로키 족을 다른 곳으로 쫓아냈다. 그 때 백인들은 마차와 노새를 제공해주었지만 그들은 마차를 타지 않았고 덕분에 그들은 무언가를 지킬 수 있었다. 기나긴 행렬의 끝에 아무 쓸모없는 텅 빈 마차가 따라왔지만 땅도 집도 빼앗긴 체로키는 자신들의 영혼까지 마차에 팔지 않았다. 처음에 백인들은 덜그럭거리는 빈 마차들을 뒤에 달고 가는 체로키들을 보고 멍청하다고 비웃었다. 체로키들은 웃는 사람들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백인들도 입을 다물었다. 이제 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행진 중에 1/3이 넘는 체로키들이 숨을 거두었고, 백인들은 매장을 허락했지만 체로키들은 시체 또한 수레에 누이지 않고 안고 갔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 행렬을 눈물의 길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체로키 족이 울어서 붙여진 것이 아니다. 그저 그 행렬을 구경하던 사람들의 눈물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다.

 

 ‘작은 나무’가 조부모님 곁에서 삶을 배워 나갈 때 몇몇 사람들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작은 나무를 키우기에 부적합하다고 고발을 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고아원에 가게 된 ‘작은 나무’는 그곳에서 학대를 당하게 된다. 작은 나무는 자신을 항상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할아버지를 발견하고 고아원을 나와 다시 숲 속으로 오게 된다. “나는 오랫동안 엎드려 누운 채 나무에게 말을 걸었고,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겨울의 낮 시간을 나는 이렇게 내 비밀장소에서 보냈다. 자연은 내게 지옥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내 출생이 무엇인지 묻지도 않았으며, 그저 나를 품어주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행복한 삶이 이어졌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차례로 눈을 감으셨다. 그리고 11살의 ‘작은 나무’는 [오클라호마 주]로 남아있는 체로키족 인디언을 찾아 나서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

 

 이 소설은 읽는 동안 편안한 미소를 주었다가도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존중이라는 단어가 무겁게 느껴졌다. 나는 민족, 대자연과 같이 오랜 기간 계승되고 지켜왔던 것들은 위대하며 존중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인류는 미국의 인디언 탄압, 일본의 일제강점기, 여러 나라의 식민지 개척 등 무력으로 민족의 역사를 지우려 했다. 우리나라 또한 일제강점기라는 아픈 역사가 있기에 인디언들의 아픈 역사가 더 와 닿았다. ‘작은 나무’가 고아원에서 학대를 당할 때는 더욱 먹먹했다. ‘작은 나무’는 사라져가는 민족(체로키족 인디언)의 마지막 환생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나는 얼 이라는 단어가 새삼 좋아졌다. 얼이란 ‘정신의 줏대’이며 민족을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눈물의 길에서 체로키족이 지키려 했던 것이 진정한 ‘얼’ 이였음을. 그들의 숭고한 행진을 지금에서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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