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olumn

  • Home
  • Cultural Activity
  • Culture Column

왓칭 - 신이 부리는 요술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김충선
댓글 0건 조회 5,949회 작성일 16-02-01 21:56

본문

왓칭 – 신이 부리는 요술

김상운 지음

 

평소 나는 형식적으로 틀과 목차가 정해져 있는 자기개발서 보다는 이야기의 흐름에 감정을 맡기면서 또 때로는 이야기 속 인물들과, 감정이 이입된 나에게 이성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소설을 좋아한다. 하지만, 2016년이 시작되는 이 시점에 나에게 좀더 확실하고 명확한 동기부여를 줄 책을 찾기 위해서 서점의 자기개발서들이 진열되어 있는 공간에서 한참을 이책 저책 기웃거리다 결국 집어든 책이 바로 이 ‘왓칭’ 이라는 책이다. 예전부터 미디어나 주변 사람들의 소개를 통해서 이러한 책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딱히 끌리지 않아 읽는 것을 미뤄두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표지에 선명하게 그려져 있는 커다란 눈 속에 내 모습이 투영되면서, ‘당장 읽어봐야겠다’ 라는 생각으로 바로 구매를 하고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의 내용에 따르면, 어떠한 방식으로 내 자신을, 그리고 다른 사물들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변할 수 있다. 내 안에서 치솟은 화를 남의 일인 양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쉽게 사그라뜨릴 수 있고, ‘평생 이 악기를 다루고 살겠다.’ 라고 생각한 아이들의 그 악기에 대한 지능은 1년만 하다가 그만두겠다고 다짐한 다른 아이들에 비해 훨씬 높아질 수 있다. 또한, 감사와 사랑의 마음으로 음식을 먹으면 영양분 흡수율이 높아지며, 자세한 이미지를 상상하는 것으로 천장에 매달려 있는 열쇠를 흔들리게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현상들은 책에서는 양자물리학에서 설명하는 ‘미립자’라는 물질의 가장 작은 단위를 바라봄으로써 설명한다. 모든 것을 쪼개고 쪼개서 더 이상 쪼갤 수 없을 때까지 쪼개면 미립자가 나오는데, 이 미립자의 정체는 양자물리학 분야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이스라엘 와이즈만 과학원이 1998년에 실시한 이중슬릿 실험에서 살펴볼 수 있다. 하나의 벽 앞에 두 군데의 가늘고 긴 틈이 뚫려 있는 또다른 벽을 세우고, 미립자들을 발사하고 지켜보면 미립자들은 하나씩 직선으로 날아가 두 슬릿 중 한 곳을 통과하고 그 뒤에 벽에 부딪혀 알갱이 자국을 남긴다. 하지만 관찰자들이 자리를 비운 후 잠시 뒤 돌아와보면, 벽면에 알갱이가 아닌 물결자국들이 나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즉, 관찰자가 미립자를 보고 있을 때는 ‘미립자는 고체 알갱이야’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미립자가 고체 알갱이처럼 행동하게 된다. 이처럼 만물의 근본을 이루는 미립자가 관찰자의 마음을 읽어내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것들은 생각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


이렇게 내용을 보게 되면 몇 년 전,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등장한 ‘론다 번’의 ‘시크릿’이나, ‘조엘 오스틴’ 목사님의 ‘긍정의 힘’ 과 비슷한 방향으로 전개되는 듯 하다. 생각한 대로 이루어 진다는, 우주의 기운이 우리의 염원을 듣고 한데 모여 우리가 생각한 대로 세상을 바꾸어 나간다는 류의 이야기 말이다. 반복적으로 수집되어 신뢰성을 가지는 데이터와 이론적, 실험적으로 완벽히 증명된, 눈에 보이는 사실만을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한 사람의 공학도에 입장에서, 인간의 생각만으로 주변의 물리적인 현상들이 변한다는 내용들은 도저히 믿지 못할 수 밖에 없는 내용들이라 그냥 가볍게 웃어넘기거나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인간의 이러한 잠재되어 있는 힘 – 책에 따르면 신이 부리는 요술 – 을 믿는 이유는, 정말 우리가 그려내는 이미지 속에 우주를 움직이는 힘이 존재하느냐 마느냐를 떠나서 이러한 생각들 속에 미래에 대한 희망, 그리고 내 인생에 대한 간절함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것은, 아무리 힘든 시간이라도, 혹은 문득문득 드는 분노의 순간이라도, 그러한 순간에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이 큰 우주라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나아갈 수 있는 좀 더 바람직한 길을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꿈으로써 팔다리를 잃고도 인생을 충분히 누리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오체 불만족’의 저자인 ‘오토다케 히로타다’ 라던지 ‘닉 부이치치’ 같은 사람이 바로 우리 곁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좌절하거나, 혹은 남들이 만들어 놓은 편견이라는 벽에 부딪혀 벽을 넘을 가능성조차 생각하지 못하며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눈을 조금만 돌려보면 너무도 많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이들이, 혹은 좌절에 빠지고 벽을 넘을 수 없게 된 그 순간에 나 역시, 상상할 수 없는 가능성을 가진 우주의 관찰자가 되어 우리들 자신을 바라봄으로써, 하루하루를 간절한 희망이 가득한 마음으로 살아내어, 우리와 같은 눈에 보이는 질서와 인과관계만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놀랍고 긍정적인, 그리고 희망이 넘치는 변화들이 나타나기를 기대해본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