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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만 볼 수 있다면 - 헬렌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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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재환
댓글 0건 조회 6,263회 작성일 16-02-02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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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헬렌 켈러가 이 자서전을 쓴 나이는 고작 스물 셋이다. 스물 세 살에 영작문 교수님의 권유로 쓰게 된 글과, 53세에 쓴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합친 것이 바로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이다. 스물 셋. 그 나이에 나는 무얼 하고 있었는지를 생각해본다. 나는 학과공부에 온 힘을 쏟느라 정신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힘든 사람인 것 같다고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여러 지극히 평범하고 철없는 대학생들 중 하나였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스물 세 살짜리를 생각한다면, 겨우 이십대 초반 밖에 안 된 학생이 무슨 할 말이 있다고 자서전을 썼는지 의문이 들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헬렌 켈러라면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배운 점 두 가지는 감사할 줄 아는 삶의 자세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강한 의지를 지닌 자세이다.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은 제목 그대로 시각장애인인 헬렌 켈러가 3일만 볼 수 있다고 가정하고 보고 싶은 객체들을 서술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녀가 첫째 날 보고 싶은 것은 친절과 겸손과 우정으로 내 삶을 가치 있게 해 준 사람들이다. 우리에게 너무나 유명한 설리번 선생님도 그녀가 보고 싶은 사람들 중 하나에 속해 있다. 둘째 날 보고 싶은 것은 밤이 낮으로 바뀌는 기적이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보고 싶은 현실세계에서 사람들이 일하며 살아가는 모습이다. 사실 책 제목을 보면서 과연 저자가 보고 싶은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추측해보았는데, 나의 예상과는 달라서 조금 많이 놀랐다. 정말 지극히 평범한 것들 아닌가! 나 역시도 책을 읽던 중에 잠시 책을 덮고 나 자신에게 이 질문을 해보았다. 시력을 잃은 나에게 사흘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보고 싶을까? 안타깝게도 나는 딱히 보고 싶다는 것들이 머리 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부모님의 얼굴? 친구들 얼굴? 아님 내가 좋아하는 음식?···.

 

  나는 이제까지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눈이 보이고, 귀가 들리고 말할 줄 알며, 팔과 다리, 손가락까지 멀쩡하게 붙어있기 때문에 이러한 신체를 가진 것이 지극히 정상적이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감사함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살이 찐 것 같아 내 자신이 짜증나고, 남들만큼 뛰어난 것 같지 않아 불만을 갖고 있는 나를 다시 뒤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더 좋은 것을 바라는 나에게 엄마는 항상 놓여있는 상황에 불평불만을 표출하지 말고 매사에 감사하며 살아보라고 말씀하시곤 하셨다. 엄마의 그 말이 그저 잔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엄마의 말씀이 백번 옳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만일 내가 갑자기 귀가 들리지 않는다면, 지금 내가 불만사항으로 안고 있는 모든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또한 어린 나이에 찾아온 병으로 갑자기 귀가 안 들리고, 눈이 안 보이는 엄청난 시련을 극복해 낸 그녀의 의지적인 자세는 나에게 새로운 삶의 자극이 되어 다가온다. 물론 그 시련을 극복해낸 것은 설리번 선생님, 벨 박사 등 주변 사람들의 도움도 한 몫지만, 제일 중요한 사항은 헬렌 켈러 자기자신의 의지였을 것이다. 나는 어떤지 자문해본다. 나는 의지가 강한 사람인지, 나에게 시련이 닥쳐도 나는 그것을 이겨낼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의지가 강해서 시련이 들어올 틈도 없는 사람인지, 나 자신에 대한 고민을 해 본다.

 

  ‘당신이 지금 낭비하고 있는 오늘은 누군가가 간절하게 살아가고 싶어하던 하루입니다’라는 말이 있다. 내일이 당연히 올 것을 알고 있기에 우리는 오늘을 간절하게 살아내지 않는 것은 아닐까. “시각을 잘 활용하려면 내일 장님이 될 사람처럼 귀하게 감각기관을 사용하세요.”라는 헬렌 켈러의 말이 가슴에 와 콕 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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