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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왜 부조리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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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위주형
댓글 0건 조회 6,619회 작성일 16-02-02 21:49

본문

 

< 법은 왜 부조리한가 >

 

 

 

 

 

 

1997년 4월.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당시 홍익대 대학생이었던 조중필 씨가 칼에 찔려 살해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둔 아더 패터슨과 그의 친구인 재미교포 에드워드 리가 용의선상에 올랐으나, 이 둘은 서로 조 씨를 죽인 범인은 친구라며 자신은 구경만 했다고 주장하였다. 당시 검찰은 부검 결과 가해자는 피해자보다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사람일 것이라는 소견과 주변인 진술 등을 바탕으로 키 170cm이 안 된 패터슨에 비해 키 180cm이 넘고 몸무게 100kg에 가까운 에드워드 리를 용의자로 보고 수사를 진행하였다. 결국 칼의 원래 소유자였던 패터슨은 흉기소지 혐의로 1년 6개월 구형 뒤 출소했고, 그의 친구 에드워드 리는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그러나 조 씨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에드워드 리는 2년에 걸친 재판 끝에 1999년 9월 대법원은 증거불충분 등의 이유로 결국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났다.

 

그리고 18년이 지난 2015년 9월. 아더 패터슨이 다시 인천공항을 통해 송환되었고, 결국 1심에서 법정 최고형인 징역 20년이 선고되어 미제로 남을 뻔한 사건의 진실이 밝혀졌다. 이 사건은 속칭 <이태원 살인사건>으로 불리며 여러 미디어들을 통해 방송된 사건이다. 사실 아더 패터슨이 다시 송환된 것도 <이태원 살인사건>이 영화로 제작되면서 국민들의 여론이 들끓었고, 이로 인해 재수사로 가능했던 것이다.

 

당시 사고 현장에는 단 3명밖에 없었다. 1명은 죽은 피해자이고, 나머지 2명은 당연히 용의자였다. 이는 당시부터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죽인 범인이 반드시 있음에도 불구하고 ‘증거불충분’의 이유로 법은 그들을 19년 동안 처벌하지 못했다. 법(法) 이란, 이런 비인간적인 행위들을 규제하고자 인간들이 상호 협의 하에 만들어낸 규범들이다. 그러나, 그 법전에 쓰여 있는 글들은 때로는 규제를 벗어날 수 있게 하는 또 하나의 ‘도구’가 되어 버린다. 법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법의 집행에 있어서는 이러한 이중적인 모습이 때때로 보여 지고 있는 것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법(法)’에 대하여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될 때가 많이 있다. 가장 공정하고 정의로워야 한다고 여겨지지만, 판결이 내려지는 것을 보면 납득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법은 왜 부조리한가>는 여러 방면의 학문으로 접근하며 독자에게 말해주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 사회에서는 변호사를 고용하고 법의 허점을 찾아 탈세를 하는 개인과 기업이 많이 있다. 그러나 세금을 줄줄 세게 만드는 법의 허점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없애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런 것일까? 또 법적 판결은 유죄 혹은 무죄 식으로 지극히 ‘이분법적인 판결’만을 고집한다. 극단적인 판결이 아닌 중간선 상에 있는 판결을 내릴 수는 없을까? 나 또한 악랄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에 대해서 극히 적은 형량이 부과될 때 법의 제도에 대해 분노하곤 했다. 하지만 더욱 안타까운 것은 대중들이 기대하는 법의 모습과 현행 법 제도 사이 존재하는 모순을 판사, 변호사 같은 법조인을 포함해 그 누구도 시원하게 해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발적으로 고문을 받고 형량을 몇 년 줄여 달라고 하면 안 되는 것일까? 세금을 줄줄 세게 만드는 법의 허점은 왜 생겨난 것일까? 무죄나 유죄가 아닌, 절충적 판결을 내릴 수는 없을까?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지 않은 수영 챔피언을 처벌할 수 있을까? 법은 왜 양쪽이 다 만족하는 거래인 장기 매매나 대리모 계약을 거부할까? 이 책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작가가 나름의 답을 하는 책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위의 질문들에 대한 답은 ‘그럴 수 없다!’ 이다. 아무런 강압이나 속임수가 없었다고 해도, 그것이 순수하게 100%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거래라 해도 장기매매나 대리모, 고문을 받는 대신 형량을 줄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해도 다 법으로 처벌 할 순 없다. 또 어느 정도의 무죄, 어느 정도의 유죄 역시 불가능한 일이다. 그 결론에 다다르는 과정을 작가는 몇몇 예시를 통해서 논리적으로 접근한다.

 

책 전반에 걸쳐 작가는 ‘응급 순위 순환론’을 예로 들고 있다. 의사가 한 명밖에 없는 응급실에 사고로 다친 부부가 실려 온다. 남편 A는 두 다리를 모두 잃을 수 있는 중상을 입었고, 부인 B는 집게손가락 하나만 심하게 다친 상태였다. 그런데 남편 A는 의사에게 자신의 치료를 포기하고 피아노 치는 것이 삶의 희망인 부인 B의 손가락을 치료해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한다. 의사가 부인 B의 손가락을 치료하려는 순간 다리 한 쪽을 다친 다른 환자 C가 들어온다. C는 손가락보다 더 심각한 자신의 다리를 먼저 치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자 남편 A는 자신에게 치료 우선권이 있다며 아내 B의 치료를 요구한다. 다리 한 쪽을 다친 환자 C는 손가락보다 자신의 다리가 더 응급상황이라고 주장한다. 이때, 의사는 누구를 먼저 치료하느냐를 두고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법은 왜 부조리한가>는 이 같은 상황을 ‘응급 순위 순환론’으로 설명하면서 법과 현실 사이의 ‘부조리’를 얘기한다. 그러면서 법이 상충하는 여러 기준과 대안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지지 않고, 최상의 선택을 하기 위해 어떤 것을 왜 포기하거나 금지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사실 A, B, C의 의견은 나름대로 다들 타당한 면이 있지만 세 사람의 의견을 모두 수용하면 결론은 영원히 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의사는 그것이 ‘부조리’해 보이거나 또는 그들의 의견과 ‘불일치’하더라도 어느 순간 누군가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고 결론을 내야 한다. 작가는 이 ‘응급 순위 순환론’을 법의 부조리 그리고 불일치와 연결 지어 설명하고 있다.

 

또 다른 예로, 왜 법은 무죄냐 유죄냐만 따지고, 80%의 유죄성이나 혹은 40%의 유죄성 같은 것은 따지지 않느냐고 물으며 인간의 삶을 예로 든다. 아주 건강한 상태를 A라고 가정하고, 건강이 점점 안 좋아질수록 B, C, D... 순으로 내려가다 마침내 죽어 시체가 된 경우를 Z라고 가정해보자. A 한 명 보다는 B 두 명이 더 중요할 수 있고, B 두 명 보다는 C 네 명이 더 중요할 순 있지만 아무리 많은 Z가 있다 해도 살아있는 A나 B보단 중요하지는 않다. 결국 어느 단계에선가 ‘살아있음’과 ‘살아있지 않음’을 구분하는 단절성이 있기 마련이고, 그 단절성을 인정하는 것은 법의 이분법을 인정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살아있음의 단계에 따라 주어지는 권리가 다르다면 신체가 건강한 사람과 장애인에게 주어지는 권리 역시 달라진다는 말인데 사람들은 누구도 그런 차별을 합당하다 생각하지 않는다.

 

법(法)은 가장 논리적인 부분 같지만, 이것 또한 사람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모순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법의 허점을 이용하여 이익을 얻는 사람도 있고, 그 허점 때문에 피해를 입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법은 그렇게 부조리하다. 그러나 반대로 그러한 부조리가 없다면 법의 집행에는 더 많은 모순과 마찰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아이러니한 결론이지만 우리는 더 많은 정의를 위해 지금도 소수의 피해자를 발생시키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부조리한 사법권 안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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