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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르게 결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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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용준
댓글 0건 조회 6,077회 작성일 16-02-05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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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르게 결단하라, 한비자처럼 

신동준 저 

 

 

     약 3년 전 학부생 시절에 나는 말 못할 고민으로 혼자 끙끙앓다 큰 결심을 하고 교내에 위치한 상담센터를 찾아간 적이 있다. 고민인즉슨, 나는 거절을 못했다. 아니, 왠만하면 하지 않았다. 설령 내가 이 날만큼은 나만의 시간을 가져야지, 혹은 이 날만큼은 미루고 미뤄왔던 과제를 꼭 끝내야지하고 마음을 먹었더라도 나는 너무나도 쉽게 흔들렸다. 내심 그런 마음에서였다. 상대방 입장에서 얼마나 고민하고 말했는데 내가 거절을 하면 안되는 것이다, 내가 조금 힘들더라도 이 사람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그에 의해 평가받는 나의 가치는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라고 말이다. 

 

    상담사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결단력’을 가지라고 말씀해주셨다. 일주일 7일 중에 아예 (사전에 약속되지 않은) 어떤 부탁도 받지 않고 거절하는 요일을 하루 정하고, 거절하는 연습을 하라고 하셨다. 지금은 내가 얼마나 힘들어 보이셨으면 이런 조언까지 하셨을까 싶지만, 그 당시에 나는 너무나도 힘들었기에 이를 악물고 훈련을 했다. 

 

    사실 걱정을 많이 했다. 이제까지 잘 다듬으로 쌓아올려왔던 나의 가치, 나만의 가치가 이렇게 한 순간에 추락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에 한동안 그 전보다 오히려 더 힘들었기도 했다. 하지만 이 훈련의 효과는 나의 걱정과는 다르게 나의 가치, 나만의 가치를 더욱더 높여주었다. 예스맨이었던 내가 미리 세워둔 스케줄이 있다며 거절하고, 오늘은 선약이 있으니 내일, 아니 모레 만나자하는 나를 보며 친구들은 내 시간, 내 약속, 내 컨디션을 먼저 물어봐주기 시작했다. 그저 일주일 중 하루만, 오히려 냉정한 결단을 보였던 나의 가치가 올라갔다.  

 

    서론이 길었지만, 나의 가치를 올리고 더 나아가 양질의 인간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힘들다.  변화무쌍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데 있어 인간관계는 때로는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때로는 나에게 천군만마가 될 수 있다. 비록 20년 남짓 살아온 나도 절실히 느끼는 정도라면, 치열하다 못해 잔인하고 단련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이 세상의 리더들은 얼마나 뼈저리게 느낄까. 최근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골방철학자들이 다른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가지기는 힘들다. 반대로 말하면 뛰어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수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사람은 그 수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오면서 훈련에 훈련을 거듭한 결과이다. 서점 입구부터 빼곡히 진열되어 있는 방송인이나 연예인의 인간관계 자기계발서에도 물론 좋은 내용들이 많지만, 나는 요즘 고전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자동차가 도로를 달리고 비행기가 하늘을 날아다닌다는 것이 바뀌긴 했지만 사람대 사람, 인간대 인간의 관계는 인류 태초부터  이루어져 왔던 것이기에 고전 인문학에서의 인간관계, 리더십의 의미는 값지다. 예를 들어 고전시대 만 명과의 인간관계로부터 우러나온 노하우가 전파되고 전파되어 나에게까지 오게 되면 수 없이 많은 사람들, 어쩌면 현세를 살아가는 지구인 모두와 인간관계 훈련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고전에는 수천년간 수많은 사람들이 몸소 검증한 소중한 내용들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그 중에서는 시대를 넘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적용가능한 이야기들이 많다. 특히, 난세를 헤쳐 나가야 하는 현대의 리더들에게 다양한 지혜를 제공하는 시대를 초월한 학자로는 서양의 마키아벨리, 동양의 한비자를 꼽을 수 있다. 특히 이 책에서는, 난세에 인재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한비자의 36가지 비술을 알려준다. 한비자가 전하는 이 비술들은 그 옛날 춘추전국시대에 천하를 통일하는데에 필요했던 방법이 아니다. 이는 오늘을 사는 모든 리더들이 알아야 할 농축된 지혜이다. 

 

    어떤 기업이든지 간에 성장을 위해 다른 무엇보다 더욱 필요한 부분은 바로 인재이다. 어떤 인재를 등용하느냐에 따라 그 기업의 미래가 완전히 달라진다. 그렇기에 인재 경영을 외치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런 인재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리더들이 의외로 상당히 많다. 한비자의 여러 비술들 중 나에게 가장 와닿았던 것은 바로 ‘명확한 상벌 시스템’이다. 

 

    한비자는 ‘형벌권’과 ‘포상권’은 모두 군주 한 몸에서부터 나와야 한다고 일관되게 강조한다. 쓴 소리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리하여 현대 사회의 기업에서 이 두 가지 권한이 분리되어 있는 곳이 꽤 많은데 이는 상당히 위험하다. 군주로부터 형벌권과 포상권이 떨어져 나갈 경우, 그 권한을 물려받아 휘두르는 권신들에게 권한이 집중되고 남용될 위험이 크며, 궁극적으로는 신하와 백성들이 군주보다는 형벌권을 행사하는 권신들의 뜻을 더 따르려고 할 것인데, 이렇게 될 경우 결국 군주가 권위를 잃어버리게 될 뿐만 아니라 그 자리까지 위험해 질 수 있음을 한비자는 경고한 것이다. 한비자는 다음과 같은 사례를 언급한다.

  

    자한이 송나라의 군주에게 말했다. ‘포상을 받는 것은 백성들이 좋아하는 일이므로 왕꼐서 직접 하시고 형벌을 받는 것은 백성들이 싫어하는 일이므로 신이 담당하겠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하자 송나라 왕은 형벌의 권한을 잃게 됐고, 자한은 이를 사용해 결국 왕을 협박했다.  

 

    조직원들에게 혜택을 주며 상을 내리는 것이나, 징계를 가하는 것은 리더의 본질적인 권한에 속한다. 이 권한이 위임될 경우 권력의 지형도는 바뀌게 되고, 리더의 통솔력은 그 무게중심을 잃고 위태로워 질 수 있다. 악역을 맡는 것 역시 피할 수 없는 리더의 운명이기에, 리더는 악역 맡기를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한다. 

 

    이 내용은 물론 기업과 같은 단체에 적용되는 것이지만, 나는 개인의 마음 혹은 결단력에 적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서론에서, 내가 힘들었던 것은 (섣부른 일반화일 수는 있지만) 형벌권을 저 멀리 방치해 버린 리더의 최후일 수 있는 것이다. 혹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그것을 위임해버린 리더일 수도 있다. 조금 더 냉정한 결단력을 가지는 것이 오히려 통솔력을 얻게되고, 큰 단체하나가 혹은 나를 중심으로 하는 나만의 인간관계도가 안정된 무게중심을 가지고 조화롭게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욕심이 많다. 옛날부터 장래희망을 쓰라하면 어떤 말의 약자인지도 모른 채 CEO라고 적곤 했다. 주위사람들에게 쓴소리 못하고 거절 못하는 것은 당장에 좋은 친구, 좋은 사람 평가를 받을 진 몰라도 강인하고 통솔력있는, 또한 능력있(다고 평가받)는 리더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마음을 다잡고 나만의, 나 자신만의 형벌권을 멀리 방치하거나 남에게 위임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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