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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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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형도
댓글 0건 조회 6,229회 작성일 16-03-31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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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년 전 쯤 이태리에 갔을 때, 로마에 머물면서 바티칸을 다녀왔었다. 박물관의 조각 작품이나 벽화들도 상당히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베드로 성당에서의 기억이 상당히 인상 깊었다. 사실 여행을 다녀 온 이후에도 이 기억은 잘 잊히지 않았다. 정문을 들어가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지나가면 한쪽에 미사를 드리기 위한 공간이 있었다. 그 곳은 촬영이 금지되어 있단다. 밖에서 보기에도 조용하고 경건한 분위기였기에 괜한 분위기에 이끌려 들어가서 몇 분 동안 지켜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조용히 들어와서 무릎을 꿇고 본인의 기도를 했고, 다시 아무 일 없던 듯 일어나서 나갔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모습이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와중에 의문이 생겼다. 저들이 기도를 드리는 주체는 누구인가? 신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의 믿음 아래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분명 내 룸메이트는 이것에 대해서 설명해주기로 했는데, 잊어버린 게 분명하다. 이 질문에 대해 명쾌한 대답을 듣는다면 종교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가져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사람들은 항상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과거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신은 위대하지 않다."는 제목의 책을 썼는데 "종교가 모든 것을 죽인다."를 부제로 출판했다. 책의 내용 대부분에 걸쳐 공격적이고 신랄한 비판이 상당했기에 누군가에게는 상당히 불편한 마음을 가지게 만드는, 일종의 불온서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누군가는 이런 부정적인 묘사를 완화하기 위해 “종교를 조직화하지 않고는 어떤 중요한 사회적 변화도 일어날 수 없다”고 공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이러한 모든 이야기는 꽤나 오래전부터 진행되어왔다. 기원전 1세기 경, 루크레티우스라는 사람은 "사물의 본질에 대해서"라는 책에서 "종교가 악행을 권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종교가 사람들로 하여금 얼마나 많은 악행을 하도록 하는지를 언급하기 위함이었다. 수 천 년에 걸쳐 진행된 종교에 대한 긴 논쟁에 대해 사람들은 수많은 이야기를 하고 들어왔으며, 또 편들기도 하고 반대하기도 했으며 무관심하기도 했다. 아무튼 이 무리들에 편승해서 내 질문의 답에 힌트를 얻어 보고자 이 책을 접했다.

   

 

         사실 힌트를 얻는답시고 읽는 책 치고는 상당히 비판적인 책이었다. 그것도 특정 종교에 한해서. 하지만 도입부를 펼쳐보고 책을 선정하는 나로썬 하나님은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으로 시작하는 책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기독교인에 대해서 정의하고자 러셀은 그들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정의했다. 기독교인은 하나님과 영생을 꼭 믿어야하고, 예수에 대한 어떤 믿음이 있어야 한다. 이 두 가지 조건이 여타 종교인과 기독교인을 구분 짓는 확실한 잣대라고 한다. 그는 이 조건을 토대로 자신이 기독교인이 아님과 동시에 기독교인은 존재하지 않음을 역설한다.

         신학이 내세우는 제 1원인론은 `누가 날 만들었는가'란 질문의 종착지엔 반드시 신이 설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러셀은 "그렇다면 하나님은 누가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에도 똑같이 답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은 절대자이기에 원인 없이 존재할 수 있다면, 세상도 마찬가지로 원인 없이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러면서 `사물에는 시초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상상력의 빈곤에 다름 아니다'라 하며 제 1 원인론의 비논리적 결말을 지적한다. 제 1원인론 말고도 과정상의 문제도 언급한다. 절대자를 향한 확실한 증거나 이론 때문에 신앙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극소수 예외가 있긴 하지만 어떤 사람이 받아들이는 종교는 그 사람이 살고 있는 공동체의 종교이기 마련이라고 한다. 사실 인간에게 종교는 환경적 영향의 부산물과 같다. 이란에 태어난 사람이 이슬람교를, 캄보디아에 태어난 사람은 소승불교를, 러시아에 태어난 사람은 그리스 정교를, 이탈리아에 태어난 사람은 로마 가톨릭의 신자가 될 확률이 분명히 높긴 하다. 불교, 힌두교, 기독교, 이슬람교 이 모든 종교가 주장하는 진리가 제각각이니 논리적으로 봐도 하나만 빼고는 진실일 수 없음이 자명한 것이 아닌가?

         사실 내 주변의 사람들도 말하지만, 사람들은 보통 안정에 대한 욕구,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종교 생활에 전념한다고 한다. 오늘날 많은 종교인들이 주술적 의미의 `기복신앙'에 빠져든 것만으로도 이는 분명하다. 러셀은 이것을 `나를 돌봐줄 큰 형님이 계시는 것 같은 느낌에 대한 갈망'이라 표현한다. 러셀은 예수의 도덕적 성격에 중대한 결함이 한 가지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예수가 지옥을 믿고 있었다는 점 때문이다. "나는 누구든 진정으로 깊은 자비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영원한 형벌 따위를 믿을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34쪽) 비신자들도 성경 혹은 경전을 권위에 압도당해 읽기 마련이다. 우리도 분명 그런 생각을 했을 테지만 그냥 넘기고 말았을 것이다. 러셀은 경전을 읽을 때도 자신의 합리주의적 관점을 적용한다. 그것이 옳고 그르냐를 떠나 지식인은 진정 어떤 태도로 세계를 검토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듯하다.

 

 

         러셀이 이렇게 기독교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종교에 거부감을 가지게 된 것은 합리주의에 기반을 둔 철학적 태도 때문이다. 하지만 설령 그것이 그의 태도나 사상 때문이 아니더라도, 역사적으로 볼 때 종교가 과연 어떤 일을 했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사건은 많다. 히틀러가 유대인을 가스실로 보내 집단 학살한 것은 종교에서 시작된 차별 관념 때문이다. 중세 종교재판소의 고문과 마녀들에 대한 화형식은 기독교 교리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역사였다. 과연 인류는 종교를 통해 행복해졌는가? 그들의 삶이 더 나아졌는가? 1,2 세계대전을 겪은 러셀은 그곳에서 종교는 과연 어떤 일을 했는지 묻는다. 그는 "인간의 정서적 발전, 형법의 개선, 전쟁의 감소, 유색 인종에 대한 처우 개선, 노예제도의 완화를 포함해 이 세계에서 단 한 걸음이라도 도덕적 발전이 이뤄질 때마다 조직화된 교회 세력의 끈덕진 반대에 부딪히지 않았던 경우가 한 번도 없었다"고 주장한다. 교회가 인류의 진보를 막아왔고 삶을 획일적으로 규정하고 억압해 왔음을 지적하는 부분이다.

         물론 러셀의 극단적인 반 기독교적 논리를 모두 수긍할 순 없다. 어떤 것을 알 수 없는 경우에는 그것을 지적인 문제로 다루지 말아야 하는 게 맞을 수도 있다. 인간의 인식능력엔 한계가 있고 생각은 바뀌기 마련이다.이어령은 평생 무신론자로 살았지만 일흔이 넘어 신실한 종교인이 되지 않았는가. 그것보다도 ‘종교를 갖지 않고도 사람은 올바른 삶을 살 수 있는가?‘라는 보다 실질적인 문제에 주목하는게 좋을 것 같다. 러셀은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이단아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가 생각하는 훌륭한 삶은 사랑에 의해 고무되고 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삶이었다. 그것은 결코 반종교적인 삶이 아니다. 훌륭한 삶의 조건으로 그가 말하는 "사랑과 지식"은 늘려갈수록 좋은 것이다. 굳이 종교인이란 타이틀을 달지 않아도 그 두 가지를 키워갈 수 있다. 러셀의 전체 종교에 대한 부정과 비난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지만, 그가 종교의 대안으로 내건 '사랑과 지식'이란 명제에는 적극적으로 공감할 수 있었다.

        종교인이라고 해서 올바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이라크를 침략해 수많은 민간인을 살해한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테러와 보복전은 민족보다 종교라는 이질성으로 범죄를 합리화 하는 측면이 강하다. 이슬람 세계의 수니파와 시아파는 천년 넘게 사소한 교리상의 차이 하나로 인종청소에 맞먹는 범죄를 상대에게 저질러왔다.

        이 세계에는 다양한 종교가 있고, 그들 종교는 대립한다. 종교인들은 종교적 가르침에 맞는 삶을 살고 있지도 않다. 그러면서, 종교간 대립과 반목을 부추긴다. 과학은 우주의 기원이란 의문을 풀지 못했다. 첨단 과학이 도달하지 못한 지점에 종교는 분명한 설명을 내놓는다. 하지만, 종교도 역사를 거치며 자신의 오류를 수정해왔다. 그들이 비난한 과학이 그 역할을 대신해왔다. 교만하지 말아야 할 것은 과학만이 아니라, 종교 자체이기도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내겐 종교가 없다. 무엇이 진리인지 확신할 수 없다. 그것이 지금 내가 도달한 임시적인 결말이다. 무지는 불가지론의 중요한 결말이지만 내 생각엔 불완전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결론이란 생각도 든다.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공부해야 하고 겸손해야 한다. 그리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을 나는 러셀이 표현한 `사랑에 의해 고무되고, 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삶'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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