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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스와 세기의 거장들(리히텐슈타인박물관 명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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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정민
댓글 0건 조회 5,944회 작성일 15-12-31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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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스와 세기의 거장들(리히텐슈타인박물관 명품전)


국립중앙박물관의 리히텐슈타인박물관 명품전-루벤스와 세기의 거장들전을 통해서 17세기 유럽 최고 화가인 루벤스와 그의 제자들의 회화 작품과 리히텐슈타인 공화국의 화려한 궁정문화가 전시되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플랑드르의 화가들을 주제로 많은 작품을 볼 수 있었다.

 

플랑드르는 벨기에의 지방명으로 벨기에에서 발전한 미술로 17세기 벨기에지방 미술의 대명사로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이끈 예술가들과 더불어 서양 회화에서 혁명적인 그룹을 형성했다고 평가받는다. 이 플랑드르의 대표적인 화가가 루벤스와 그의 제자 반다이크이다. 특히 루벤스의 작업실에는 전 지역에서 모인 작가들이 많았을 때는 300명이 넘을 정도로 문화의 중심지로 부상하였다. 루벤스의 “애도” 작품을 보면 그리스도의 모습을 대각선의 구도로 역동적이고 회화적인 면을 강조했으며 그림의 중심인 그리스도를 밝게 하고 사도 요한의 옷은 붉게 채색하였다. 이런 표현 방법은 바로크양식의 구성으로 루벤스가 극적 구성을 완성 시켜서 미술사에 뚜렷한 이정표를 남겼다고 한다. 특히 그의 주요 작품들을 보면 대부분 역사화이거나 종교화인데 이는 가톨릭 신자이면서 교회나 궁정으로부터 후원을 받아서 작품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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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르 파울 루벤스, [애도], 1612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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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르 파울 루벤스, [아기 에리크토니오스의 발견], 1616년경>

루벤스의 작품들중에는 크기가 엄청난 작품들이 많았다. “아기 에리크토니오스의 발견”을 보면 3미터가 넘는 작품으로 그의 작업실에 많은 제자와 작가들로부터 협업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거대한 작품들이 많다고 한다. “아기 에리크토니오스의 발견”은 회화에서 자주 나타내지 않는데 루벤스의 고전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관심으로 고대 문학을 습작과 드로잉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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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르 파울 루벤스, [클라라 세레나 루벤스의 초상], 1616년경>

“클라라 세레나 루벤스의 초상”은 이번 전시의 메인 포스터 이미지로 많은 관심을 받은 작품이다. 루벤스는 자신의 5살딸의 얼굴을 세심하게 표현하고 옷과 주변은 생략함으로써 빨갛게 물든 볼과 콧등, 생기있는 이마와 입술에 자연스럽게 집중이 되었고 아무 걱정이나 불편함 없는 소녀를 느낄 수 있었다. 루벤스 자신이 얼마나 딸을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성인이 되어서도의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12살 때에 일찍죽었기 때문에 성인이 되었을 때의 소녀의 초상은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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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르 파울 루벤스, [얀 페르물런의 초상], 1650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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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 반다이크, [제노바 귀족의 초상], 1624년>

거대한 초상화가 많이 전시되었는데 그 당시의 인물들의 특징과 생활풍습을 볼 수 있었다. 루벤스는 모델들의 개성뿐만 아니라 내면 깊숙이 숨겨져 있는 특징을 끌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표현되었다. 실제로 거대한 초상화 앞에 서면 인물의 얼굴과 인물의 특징을 제외하고 검은 배경과 검은 옷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인물의 얼굴에 더 집중이 되었고 눈동자와 표정으로 인물의 신분에 따른 강인함이나 성격을 느낄 수 있었다. 루벤스의 제자 중 가장 유명한 작가는 반다이크였는데 루벤스가 그린 초상화와 반다이크가 그림 초상화가 비슷하면서도 인물의 우아하고 기품있는 모습을 섬세하게 묘사했다. 반다이크는 왕가의 초상화를 주로 그렸는데 우아하고 세련된 초상화와 그런 분위기를 가진 인물을 가리켜서 일반명사로 반다이크라는 이름이 사용될 정도로 스승이었던 루벤스를 뛰어넘는 대가로 성장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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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르 브뤼헬 2세, [베들레헴의 인구조사], 16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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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넬리스 더발리외르, [수집가의 갤러리], 1640년>

풍속화를 통해서 당시에 유행이나 시대상을 볼 수 있었다. 브뤼헐 일가는 브뤼헐 1세를 시작으로 그의 자식들이 모두 유명한 작가로 플랑드르의 대표적인 예술 가문이다. 이들은 플랑드르 풍속화나 풍경화를 부흥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특히 루벤스와 공동 작업으로 브뤼헬 1세는 풍경화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미술품 수집가들 사이에서 큰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브뤼헐 2세의 “베들레헴의 인구조사” 작품을 보면 브뤼헬 1세가 제작한 그림을 2세가 다시 그린 것으로 당시 호적 조사에 대한 마을의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누가복음에 의하면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호적 조사를 명령하여 마리아와 요섭은 출생지인 베들레헴으로 돌아 갔고 그 곳에서 마리아는 예수를 낳았다고 한다. 그림 중간에 말을 타고 있는 인물이 마리아이고 그 앞에서 걸어가는 인물이 요셉이다. 호적 조사를 받기 위해 모인 사람들과 마을 구석구석 그 당시 마을의 풍경이 자세히 묘사 되어 있다.

더발리외르 1세의 “수집가의 갤러리”를 보면 당시의 모습을 더 잘 알 수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종교화와 역사화 감상을 통해서 기독교에 대한 진정한 믿음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작품 수집이 부유층 사이에 인기가 높았고 부유층에게 작품을 팔기 위한 많은 화랑이 생겼다고 한다. “수집가의 갤러리”를 보면 귀족에게 그림을 설명하고 있는 주인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주변에 많은 그림과 예술품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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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페 아르침볼도, [흙(땅)], 1570년>

아르침볼도의 흙이라는 제목의 초상화도 볼 수 있었다. 작가 아르침볼도는 교모하게 쌓아놓은 동물이나 물건을 통해서 인물을 표현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가까이서보면 초상화라고 하기에는 기괴하고 동물들의 얼굴로만 이루어져있다. 하지만 거리를 두고 보면 사람 얼굴이 보이게 된다. 이 얼굴은 페르디난드 1세, 막시밀리안 2세, 루돌프 2세와 같은 황제의 얼굴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초상화라면 최대한 인물의 사실적인 모습을 그리는 것이 당연했는데 아르침볼도는 천재적 재능으로 동물들로 인물을 표현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이런 천재성 때문에 살바도르 달리도 그에게 큰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황제들도 자신의 모습을 동물을 통해서 표현한 것에 대해 언짢을 수도 있었는데 자연 만물을 지배하고 선정을 베푸는 존재로 받아들여서 그의 작품을 좋아했다고 한다.

 

일전에 관람했던 오르세전의 인상주의와는 확실한 차이가 있었다. 인상주의에서는 사물이나 인물을 자세히 표현하지 않고 빛의 느낌을 많이 보여주는 작품들이 많았다면 이번 플랑드르전시에서는 전체적으로 어두운 느낌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부분만 다양한 색조와 세심한 표현으로 생동감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루벤스의 거대한 작품과 종교화, 풍속화를 보면서 왜 그가 동시대 뿐만 아니라 후대에도 많은 작가로부터 높게 평가 받는 이유를 알 수 있었고 일부분이지만 그의 작품을 앞에서 볼 수 있어서 좋은 기회였다.


(이미지 :  LIECH TENS TEIN.  The Princely Collections,  Vaduz–Vie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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