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 바스콘셀로스
페이지 정보

본문
얼마 전, 가수 아이유가 발표한 노래 ‘제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그 이유는 다름아닌 곡에 대한 그녀의 해석 때문이었다. 누구나 한번쯤은 다 읽어봤을 소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주인공 제제를 모티브로 한 곡에 대한 해석이 논란의 원인이었다. 5살 소년 제제를 ‘순수하면서도 잔인한 면이 존재하며, 그러한 점이 매력있고, 섹시하다고 느꼈다’라는 그녀의 인터뷰 내용이 문제였다. 이를 두고 해석의 자유인지 그 자유에도 제한이 있는지에 대해 열띤 논쟁이 이뤄졌다. 이를 보며, 문득 나도 초등학생 시절 읽었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가 다시 읽고 싶어졌다.
제제는 5살의 철이 일찍 든 어린 소년이다. 장난끼가 많아 가족들과 이웃사람들은 제제를 작은 악마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어린 동생 루이스를 잘 돌보고 실업자인 아버지까지 생각할 줄 아는 속이 깊은 아이이다. 사실, 어린 시절 책을 읽었을 때에는 집안식구들이 제제가 잘못을 했을 때 때리는 것에 대해 당연한 대가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다시 책을 읽어 보니, 제제가 저지를 잘못에 비해 너무 과한 체벌을 집에서 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제제는 단순히 집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은 아이가 아니라 ‘학대’를 받고 있는 아이이다.
실업자인 아버지를 기쁘게 해줄 요량으로 악보 파는 아저씨에게 배운 ‘난 발가벗은 여자가 좋아’라는 노래를 흥얼거리지만, 순수하지 못한 아버지는 그것을 자신을 놀리는 줄 오해하고 제제를 허리띠로 때린다. 누나에게 ‘바람둥이 계집애’라고 했다가 거의 죽기 직전까지 슬리퍼로 맞는다. 제제는 가정에서 많은 사랑을 받아야 할 나이에 모된 매질을 받는다. 기껏해야 글로리아 누나만 제제를 챙겨주는 편이다. 집안에서 제제가 왜 그런 장난을 치는지,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이유를 묻지 않고 아이를 때린다. 어린아이의 인권까지도 중요시되는 현재의 시점으로 보면, 벌써 제제의 가족들은 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았을 것이다.
학대를 받아 상처가 많은 제제를 살아갈 수 있게 한 것은 라임오렌지 나무인 ‘밍기뉴’와 포르투칼 아저씨 ‘뽀르뚜까’였다. 사랑이라는 것을 몰랐던 제제는 뽀르뚜까와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대화를 나누며 우정을 키우고 사랑을 배우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뽀르뚜까가 기차에 치여 죽게 되자 제제는 말할 수 없는 슬픔에 휩싸이게 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실업자인 아버지 때문에 남들보다는 조금 부족한 크리스마스를 지내야 했고, 항상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살아야 했던 제제의 집안은 뽀르뚜까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된다. 뽀르뚜까의 죽음 때문에 오랜 절망 끝에 제제는 어린이에서 소년으로의 성장을 하게 되고, 밍기뉴와도 작별을 한다.
어린아이에서 한 뼘 더 성장해 나간다는 것은 어찌보면 제제의 입장에서는 서글픈 일이었을 것 같다. 다시 취직을 하게 된 아버지가 크리스마스에 신발을 채워넣어 줄 수 있는 것 보다는 가난하지만, 자신에게 진정한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던 사람, 친구와 함께 할 수있었던 순수했던 어린시절이 제제에게는 더 가치있는 기억이었을 것 같다.
내가 느낀 제제는 장난꾸러기이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랑이 필요한 5살 소년이다. 다시 한 번 책을 읽어보아도 아이유가 말한 제제에게서 느껴지는 섹시함을 나는 느끼지 못했다. 해석의 자유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표현을 받아들이는 대중이 거부감을 느낀다면 어린아이에게 그러한 표현을 쓰는 게 적절한 것일지 의문이다.
- 이전글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15.12.10
- 다음글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15.12.02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