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페이지 정보

본문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사람은 보통 과거의 영광스러운 순간, 혹은 승리만을 기억하려 한다. 그리고 그래왔다. 그러다보니 역사마저도 주관을 완전히 벗어내지 못한 채 영광스러운 승리만을 기억하려했다. 완전히 객관적이진 못한 것이다. 이 책은 집필이 완성되고도 2년간은 출간하지 못했다. 전쟁이 끝나고 대부분의 나라엔 평화의 시대가 왔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녀들의 이야기를 외면했다. 우여곡절 끝에 책이 출간되고, 그간의 과정을 보고나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의 역사는 어디까지 기록된 것인가? 또한 지금 쓰는 역사는 어디까지 기록할 예정인 것인가? 상처받았던 역사, 누군가에게는 부끄러운 역사는 지워버린 채 영웅이 존재하는, 마치 신화 같은 내용 마냥 승리의 역사만을 기록하려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결국 앞으로 기록될 역사도 과거의 역사처럼 하나의 기준으로 삼을 수 없는 것인가? 시작부터 많은 생각과 함께 책을 읽게 되었다.
『전쟁의 위협을 알기 전에는 보통 그 위험을 무섭다기보다는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흥분에 빠져 질풍처럼 적진으로 밀고 들어갈 때 누가 총알과 쓰러지는 자들의 수를 헤아리겠는가?』
클라우제비츠 전쟁론의 이 대사처럼, 이것이 내가 전쟁에 대해 알기 전과 조금이나마 알고 난 후의 두 얼굴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본 전쟁은 천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안에서 수백 명의 여자 군인들은 아직까지 전쟁을 지속하고 있었다. 저마다의 기억과 상처를 침묵으로 끌어안은 채 죽어야 끝나게 될 전쟁을 계속하고 있었다. 집필당시는 이미 전쟁 후 40년이 지난 상황이었다. 전쟁에 대해 기록하고자 하니, 그들은 침묵 속에 묻어놓았던 전쟁을 말하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동안 자기들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전쟁의 파편들을 안고 40년의 시간이 지나 인생의 끄트머리쯤에 도달한 그들은 이제 자신들이 죽고 난 다음에 멋대로 역사를 바꾸지 말고 지금 물어보라고 한다. 수백 명의 할머니들이 경험한 제각기 다른 전쟁의 기억들은 여러 조각으로 깨진 파편이 되어 그들의 남은 생, 남은 생각의 구석구석 점령하고 있었다. 각색되지 않은 이 이야기들은 하나의 거울처럼 합쳐져 있다. 그리고는 그 각각의 파편들은 전쟁이란 무엇인지, 우리가 보지 못한 그것의 진짜 얼굴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들이야말로 착잡한 전쟁의 참상이었으며, 그 무엇보다 와닿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 듯 하다.
그녀들은 전쟁은 남자들의 전유물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다. 여성들도 조국을 지키기 위해 나섰다. 그들은 치마를 벗어던졌고, 귀걸이를 빼야 했으며 긴 머리카락을 잘라 밀어야 했다. 죽음이 삶보다 더 친숙한 곳에서 그들은 본인들에게 여자로서의 삶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들은 여자였다. 고양이 한 마리에 감동했고 숨겨둔 귀걸이를 몰래 한 번씩 껴본다. 내일은 죽을 것을 예감하고는 새 속옷을 요구한다. 죽음 후의 모습을 더 신경 썼고, 죽을지언정 포탄에 맞아 몸이 찢겨 남겨지는 것이 더 두려운 여성들이었다. 이들의 맘을 이해한 아버지 벌의 한 대령은 소녀 병사들을 위해 여자 미용사를 데려다주며 그대들이 좀 더 예뻤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전쟁은 그들에게 길었다. 그들은 그것이 금방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쟁이 자신들의 대부분을 죽음으로 내몰 것을 알았다. 전투가 있는 날의 화창한 아침이면 그들은 모두 직감했다. 그 날이 마지막일 거란 걸.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 공기도, 햇살도 마지막일 거란 걸. 2차 대전에 참전한 구소련 여성 군인은 백만 명에 달했다. 그들은 전차병, 보병, 자동 소총병, 기마병, 저격수, 항공기 정비사, 운전병 등, 똑같이 남자들이 하는 일을 할당받아 똑같은 임무를 수행했다. 위생병, 간호병, 외과의, 빨치산, 연락병, 취사병, 건설병, 기계선반공들도 있었다. 누구는 총알이 빗발치는 최전방 전선으로 뛰어들어 자기 몸무게의 두 배인 부상자들을 질질 끌어 날랐다. 누구는 차디 찬 진흙바닥을 하루 종일 기어 다니며 지뢰를 제거하는 공병 소대의 지휘관이었다. 누구는 포탄이 떨어지는 속에서도 빵을 굽는 제빵병이었으며, 누구는 무거운 물품들을 지고 참호 속 병사들에게 전달하는 물품 보급병이었다.
그들은 또한 아이들이었다. 중학생 쯤 되는 아이들이 자신들도 전장에 나가겠다며 군정치위원회를 들락거렸다. 어리다고 퇴자를 맞아도 그들은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뜻대로 안될 경우는 전선으로 향해 그대로 합류했다. 인터뷰한 여성 군인 대부분은 징집이 아닌 자원입대였다. 그들은 스탈린 치하에서 자신이 없는 조국은 있을 수 없다고 배운 소녀들이었다. 초경도 시작하지 않은 여자 아이는 처음으로 맞닥뜨린 피를 보자 부상당했다고 소리친다. 아직 키가 다 자라지 않은 어린 아이들, '열여덟 열아홉에 전선에 나갔다면 그런대로 몸이 튼튼해졌을 텐데 성장이 끝나기도 전 열여섯에 나가 회복 불가능한 손상을 입고 4년 만에 머리가 하얗게 세고 인생을 완전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노파가 되어 돌아온.. 상실된 무엇들이었다.
그들은 왜 이런 상황에 목숨을 내놓았던 것일까. 무엇이 그들을 계속해서 그런 상황으로 내몰았던 것일까. 이념이 모정보다 강한 그 시대를 지나와서 일까. 그녀들에겐 목숨보다 더 소중한 뭔가가 있다고 믿었다. 꼬마 아이를 시켜 바구니 밑에 지뢰를 가져오게 하는, 엄마라기 보단 빨치산 연락병이 있었다. 온 몸이 까맣게 탄 채 독일 놈들에게 끌려 다니는 두 아들의 시신을 보고도 마을을 지키기 위해 울음소리도 내지 않는 엄마의 모진 침묵도 있었다. 이렇게 유린당하며 죽임을 당하기 전에 본인 손으로 땅바닥에 패대기를 쳐서 죽이는 엄마가 있었다.
그들은 조국을 위해 싸웠다. 하지만 승전보를 울리며 돌아왔을 때, 마을 사람, 가족, 애인들은 그들을 외면했다. 마치 조국이라는 이름으로 정권에 의해 숙청당한 것처럼. 평생을 몸에 지고 살아야 할 중상들을 지닌 채 집으로 돌아온 그들은 차가운 외면의 벽과 마주했다. 여자들만 남은 마을에서 그들은 그저 창녀였다. 너네는 군대의 암캐들이다. 전우로써 모든 고통을 함께 나누던 남자들도 군복냄새 나는 여성들을 외면했다. 물론 그들도 사랑을 했다. 기약할 수 없는 사랑이었을 뿐이다. 찰나의 죽음. 항상 그렇게 가까이에 죽음이 있었고, 그 사이에 때때로 사랑이 있었다. 함께 전쟁을 치르고 어렵게 살아 돌아온 약혼남의 부모는 어떻게 전쟁터에서 데려온 여자와 결혼할 수 있느냐, 네 동생들은 시집도 못간다 말한다. 말할 수 없는 처절한 고통을 이겨낸 전쟁이 끝나기만을 고대하고 기대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서로를 미워한다. 그리고 지금껏 여전히 미워한다.
전쟁에는 많은 이들이 있었다. 2천만 명이 전쟁에서 죽거나 혹은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와 스탈린 치하에서 죽거나, 아니면 전쟁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이유로 죽었다. 그리고 잘린 팔과 다리들은 의무실 구석에 쌓여갔다. 세상 어딘가에 몸이 성한 남자가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은 간호병이 있었다. 죽과 국을 한 솥 가득 끓여놓았지만, 전투가 끝나고 아무도 살아 돌아오지 못할 때를 자주 보았던 야전 취사장이 있었다. 팔다리가 덜렁거리는 상태의 부상병을 이송하기 위해, 덜 끊어진 심줄을 이빨로 끊어내야 했던 위생병이 있었다. 그렇게 죽음을 비껴난 사람들은 더 깊은 상처를 입었다.
죽음은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거란다. 그들은 아직도 눈을 감으면 40년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훤히 풍경이 보인단다. 이제 막 전투가 휩쓸고 지나간 어느 봄날, 들판을 따라 걸으며 부상병들을 찾는 모습을 매일 마주한다. 빨간색을 거부하기도 한단다. 그들에게 빨간색은 피였고, 전쟁이었을지니.
- 이전글허즈밴드 시크릿 15.12.02
- 다음글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 바스콘셀로스 15.12.02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