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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할 수 없는 병에 걸린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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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동빈
댓글 0건 조회 952회 작성일 25-10-11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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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유할 수 없는 병에 걸린 사람들 ”

- 슬라보예 지젝 著 「자유」 를 읽고 -



 “자유는 치유할 수 없는 병이다”

 

 작가는 책의 서두에서 이렇게 말한다.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의 자유론은, 우리가 말하는 ‘좋은 것/필요한 것/인간다움의 증거’ 와 같이 ‘무조건적인 선’의 의미를 정면으로 의심하면서부터 시작된다. 흔히 우리는, 자유를 단순히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는 능력’으로 환원하여 그 의미를 받아들이고자 한다. 그러나 진정한 자유는 한 개인이 제약 없이 행동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오히려 그 제약을 인식하고 감당할 수 있는 능력에 가깝다.

 

 그 능력에 대한 의미는 보편적인 자유에 대해 매우 도전적이고 역설적이다. 자신이 자유롭다고 하여 무제한의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이 어떠한 필연적 결과를 낳을 것임을 충분히 알고도 그 선택을 감행하고 책임을 수용하는 상태를 진정한 자유라 볼 수 있다. 심지어 우리가 ‘자유롭다’ 고 느끼는 순간조차 이미 사회적 구조와 무의식, 그리고 욕망의 프레임에 갇혀 있는 것이라고 작가는 지적한다. 따라서 그가 말하는 자유란 어떤 순수한 공간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무것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자각한 뒤에도, 여전히 스스로를 움직이게 하는 힘 자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결국, 자유는 병과 같다. 인간은 늘 자유를 갈망하지만,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고통받는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현대 사회가 말하는 자유는 오히려 가장 교묘한 속박의 형태에 가깝다. 자유라는 이름 아래에서 무언가의 소비를 강요하고, 경쟁을 정당화하며, 그에 따른 책임을 분산한다. “그건 네 선택이었잖아?” 하는 말은 자유라는 언어로 포장된 폭력과도 같다. 한때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자유를 강탈당하고 억압당했다는 과도한 착각 때문에 가보지 못했던 그 건너편을 자유라는 말로 포장하며 급진한 결과, 과유불급의 행태를 인지하지도 못할 만큼 자유를 오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오용은 우리가 자유라는 개념을 올바르게 규정하지 못한 채 맹목적으로 자유를 갈망하기 때문이다. ‘Freedom’과 ‘Liberty’는 모두 자유의 의미를 가진다. Freedom은 다소 배타적이지는 않지만 가능한 한 자신의 의지대로 행하는 능력과 권한을 의미한다. 반면에 Liberty는 작위적인 제약이 없는 상태를 말하지만, 동시에 관련된 모든 이들의 정당한 권리도 고려한다. 따라서 Liberty는 행사자의 능력에 따라 그 범위가 달라질 수 있으며, 때로는 타인의 권리를 위해 제한되기도 하는 것이다. 작가의 비유로 예를 들면, 사람을 살인할 자유(Freedom)를 가질 수 있지만, 동시에 살인할 자유(Liberty)를 가질 수는 없다. 그렇기에 우리가 갈망해야 하는 진정한 자유는, 사회의(혹은 특정한 공동체의) 법규를 벗어나지 않으며 타인의 자유 또한 침해하지 않는 책임 있는 Liberty로써의 자유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러한 자유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채 오용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누군가는 자기 욕망을 ‘자유’로 명명하며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고, 누군가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본인의 ‘자유로운’ 선택을 핑계로 사용한다. 당장 주변을 둘러보아도 알 수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라며 자유의 오용을 정당화하는 사이, 당신의 Freedom에 의해 Liberty를 침해받은 누군가는, 함께 했어야 할 (설령 그가 해야만 하는 이유는 없으나 누군가는 했어야만 하는) 그 일을 혼자서 견뎌내고 있을 것이다. 내가 선택한 것은 알아서 하고 있고 남에게 피해를 준 건 아니니, 나는 마땅히 자유로울 뿐이지 뭐가 잘못되었는가? 라며 이타주의에 먼저 뿌리를 두지 못한 개인주의의 환각에 빠진 사이, 당신의 이기심에 의해 자신의 이로움을 포기한 누군가는 그 피해를 구태여 드러내지 않기 위해 침묵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당신이 자유라는 핑계를 대며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있다면, 하기 싫었던 그 일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채워지고 있다는 논리는 그리 어려운 사고가 아니다. 안타깝지만 오만하게도, 아직 자유로울 자격이 없는 이들은 그 초라한 신념의 깃발을 들고 당당히 나아가는 영웅이 된 듯한 착각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여전히 자유로울 자격이 없음을 스스로 역설하고야 만다.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가 말한 것처럼, 자유를 수호하는 법은 결국 자기 자신을 금지하는 ‘금기’이다. 이 법은 단순히 성문(成文)화된 법이나 이전 사례를 통한 불문(不文)의 법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작은 구성, 너와 나 둘 사이, 심지어는 나 혼자라는 범주에서도 단 하나의 자유가 발현될 수 있다면 그 하나를 올바르게 지키기 위해 몇 곱절의 금기가 존재해야 하는 것이 바로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법이다. 당신이 자유로워 마땅하다는 존재라고 느낀다면,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말아야 할 것과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들을 구분하고, 그토록 소중한 당신의 자유만큼 타인의 자유도 충분히 무겁다는 사실을 자각하라는 것이다. 속박의 부재를 통해 그 속박의 의미를 헤아릴 줄 알아야 하는데, 멍청하게도 그 부재를 스스로의 자유로 치환하여 무책임하게 날뛰는 –마치 치유할 수 없는 자유라는 병에 걸린 듯한- 행태는 결국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들까지도 더 큰 속박에 빠뜨리게 된다.

 

 그러니 우리가 자유롭다면, 자유롭다고 느낀다면, 내 옆의 누군가도 과연 자유로운지 둘러볼 필요가 있다. 그들의 자유를 내 자유로움이 좀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는 그렇게 자유롭기 위한 더 큰 책임을 감당하고 있는지. 혹은 그런 의지라도 보이며 자유를 정당하게 갈구하고 있는지. 책을 다 읽고 나니, 그런 생각을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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