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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수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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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대현
댓글 0건 조회 1,115회 작성일 25-10-16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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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수가없다

-박찬욱 감독-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한 남자의 평범한 일상이 무너지는 순간부터 시작한다. 주인공 만수는 25년 동안 한 회사에서 성실히 일하며 가족을 부양해온 가장이다.

아내와 자녀, 그리고 반려견과 함께 살아가는 그의 일상은 안정적이고 단조로워 보이지만, 그 속에는 늘 ‘가장의 책임’이라는 보이지 않는 무게가 깔려 있다. 그런 그가 회사로부터 느닷없는 해고 통보를 받으며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다. 인사팀 직원은 그에게 단 한마디를 남긴다 “어쩔 수 없습니다.” 그 말은 이후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문처럼 되풀이된다. 이 장면에서 나는 일상 속의 평범함이 얼마나 쉽게 부서질 수 있는지를 체감한다. ‘어쩔 수 없음’이라는 말에서 무력감과 사회의 냉정함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 말 한마디로 만수는 더 이상 존중받는 가장이 아닌 쓸모없는 인간으로 전락한다.


'당신이 사라져야 내가 살아'

사람은 넷, 일자리는 하나


만수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친다. 그는 “다른 일을 해보자”는 아내의 말을 단호히 거절하고, “나는 제지 전문가다”라는 자존심 속에 갇힌다. 그는 가장의 책임감에 짓눌려 경쟁자들을 하나둘씩 제거하기 시작하고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길을 택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세번의 살인의 과정이 곧 인간성을 상실하는 과정으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첫 번째 살인은 매우 어설프다. 그는 상대를 완전히 미워하지 못하고, 오히려 동정하고, 연민한다. 그의 인간적인 면모, ‘정’과 ‘낭만’이 이 장면에서 잠시 드러난다. 하지만 바로 그 살인을 통해 그는 자신 속의 인간적인 부분을 함께 제거한다. 그는 경쟁자를 죽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인간미를 죽이는 사람이 된다.


두 번째, 세 번째 살인을 거듭할수록 그는 점점 더 냉철해지고 능숙해진다. 연민은 사라지고, 망설임도 없다. 마지막 살인을 저지를 때 그는 양심과 완전히 결별한다. 충치를 뽑듯 마지막 양심을 뽑아버리고, 몇 년간 끊었던 술을 벌컥벌컥 들이켜며 스스로를 새로운 사람 혹은 괴물로 다시 태어나게 만든다.


'어쩔 수가 없다... 어쩔 수가 없다...'


그가 살인을 저지르기 전마다 내뱉는 말이 있다. “어쩔 수가 없다.” 이 문장은 단순한 변명이 아니라, 스스로를 최면에 거는 위선의 주문처럼 들린다.

그는 자신이 가족을 위한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아니, 믿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믿음은 거짓이다. 그에게는 어쩔 수 있는 수많은 선택지가 있었다. 다른 일을 찾아볼 수도 있었고, 집을 팔 수도 있었으며, 무엇보다 가족에게 자신의 두려움을 솔직히 털어놓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가능성을 스스로 지워버리고, 가장의 체면과 책임감에 스스로를 가두었다.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말은 그의 합리화에 불과하지 않았으며 폭력의 면죄부였다. 그는 그 말을 되뇌며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살아남기 위해 인간성을 하나씩 도려낸다.


영화의 결말은 재취업과 가족의 화해처럼 보이지만 그 미소는 결코 평화롭지 않다. 만수의 눈빛 속에는 여전히 불안이 깃들어 있고 그의 가족 또한 그가 저지른 일을 어렴풋이 알고 있는 듯한 침묵을 유지한다. 겉으로는 ‘회복된 일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너진 도덕과 거짓된 평온 위에 세워진 불안한 평형 상태이다.

이 결말은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수많은 가장들이 짊어지고 있는 침묵의 폭력성을 보여주는 듯 하다. 그들은 가족을 위해, 책임을 위해, 체면을 위해 자신을 몰아붙이며 결국 인간성을 조금씩 잃어간다. 만수는 그 대표적인 초상이다.


'나는 기술자야! 전문가! 집은 장인 꺼라서 못 팔고! 짐은 허리가 아파서 못 날라!'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오래 남은 것은, "어쩔수가없다" 그 제목의 역설이었다. 만수에게는 분명 어쩔 수 있었다. 그는 선택할 수 있었고, 멈출 수도 있었고, 무너짐을 인정하고 새로운 길을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체면과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어쩔 수 있는’ 가능성을 지워버렸다. 나는 ‘책임’이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책임감이란 결국 인간성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노력이어야 한다. 그것이 가족을 진정으로 지키는 길이다. 가족을 위해 인간을 버린다면, 그때의 책임감은 이미 폭력이 되어버린다.


AI와 자동화, 효율을 중시하는 경제 구조 속에서 ‘인간적인 사람’이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정과 낭만, 양심 같은 인간의 본질적인 가치가 생산성과 경쟁력 앞에서 무가치해지는 시대다. 영화 속 만수가 살아남기 위해 인간성을 버리듯, 우리 또한 경쟁에서 버티기 위해 감정과 도덕을 희생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기에 “삶이 팍팍해졌다”, “낭만이 사라졌다”는 말이 이 시대의 자조가 아니라 현실의 묘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AI와 경쟁의 시대 속에서 우리 모두는 어쩌면 작은 만수가 되어가고 있다. 성과와 생존의 논리 속에서 양심을 조금씩 깎아내리며 살아간다. 그러나 인간이 인간으로 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이 아니라 “어쩔 수 있다”는 용기를 택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괴물이 아니라,

어쩔 수 있는 인간으로 살아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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