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무채색 의복 선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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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의 무채색 의복 선호에 대하여
VOGUE runway 2023 F/W 잡지를 읽고
의복이란 신체를 보호하는 단순한 기능을 넘어 자신을 표현하고,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하나의 장치이다. 또한 르네상스 이후 인간은 아름다움을 추구하게 되었고, 아름다움 역시 의복을 디자인하는데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할 영역이 되었다. 의복의 디자인을 결정하는 것은 실루엣, 색, 재질, 패턴이 있는데 그 중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단연 색이다. 색은 인간의 역사 속에서 누적된 감정과 느낌을 반영한다. 예를 들어, 빨간색은 피, 죽음 같은 부정적인 내용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태양을 연상시켜 힘과 에너지를 상징하기도 한다.
색채는 색상, 명도, 채도로 나눠진다. 색상은 색 자체가 갖는 고유한 성질로 가시광선 영역의 파장에 따라 나눠진다. 명도는 색의 밝고 어두운 정도를 의미하고, 채도는 색의 맑고 탁한 정도를 의미하며 순색과 무채색으로 나눌 수 있다.
일상 속에서 사람들의 의복을 관찰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블랙, 화이트의 무채색 계열을 착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국내 패션,섬유학계의 조사에서도 한국인의 블랙, 화이트, 네이비 선호가 반복적으로 관찰된다.[1] 앞서 말했듯이 의복의 색채는 자신을 표현하는 중요한 요소임에도 한국인들은 무채색을 선호한다. 물론 공식적인 장소에서의 포멀한 의복의 경우 전세계적으로 블랙, 그레이, 네이비의 색을 이용하긴 하지만 그 외의 캐주얼 및 스포츠 의류에서는 한국이 유독 무채색의 의복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렇다면 왜 한국인들은 캐주얼 및 스포츠 의복에서도 무채색을 고집하는 것일까?
실용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블랙 및 화이트 계열은 임의의 옷과 배치하기 쉬운 장점이 있다. 유채색의 경우, Feisner와 Mahnke의 색이론에 따르면 배색 시에 서로 다른 유채색은 색상과 채도의 변화가 크기 때문에 명도와 온도감을 함께 조정해야 하므로 배색이 어렵다. 반면, 무채색의 경우 오직 명도만 조절하면 되기 때문에 균형 유지가 쉽고, 다른 유채색과의 배색도 충돌할 확률이 적다. 자칫 잘못하면 시각적 피로를 주기도 하며 촌스럽다고 인식하는 패션을 갖을 수 있는 것이다. 한정적인 예산 내에서 모든 복식을 배색을 용이하게 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기 때문에 실용적인 측면에서 무채색을 선호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블랙의 경우에는 오염 및 세탁의 측면에서도 유채색 대비 강점을 갖는다. 게다가 무채색은 색채를 통해 연상되는 감정이 비교적 덜하기 때문에 TPO에 맞지 않는 복장을 입을 우려도 적다.
서양권과 다르게 한국 사회는 자신을 관계 속의 위치로 정의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조화와 소속감을 중요시 여기는 특성이 있다[2]. 표현 역시 상대와 장면을 고려해서 수행한다. 이를 의복에 적용한다면, 자기 표현의 도구로서의 색의 관점에서, 유채색은 자기 표현이라는 메시지가 장면을 압도하는 상황을 불러일으킨다. 상대는 강렬한 유채색에 시선이 빼앗기며 상호작용을 방해받는다. 즉 고채도가 과도한 신호로써 작용하는 것이다. 반면 무채색의 경우에는 시각적 신호가 작기 때문에 상호작용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 게다가 주목받는 것은 분위기를 깨는 등의 집단의 질서를 흔드는 행위라는 인식이 소속감을 중요시 여기는 한국 사회에 깔려 있기 때문에 더욱 더 무채색을 선호한다. 청소년기에 학교에서 사회성을 배우면서 자연스레 무채색 계열의 의복에 익숙해지고 경험이 누적되면서 자연스럽게 무채색을 선호하게 된다.
한편 한국에서도 유채색을 선호했던 시기가 있었다. 2000년대의 대중매체 속 자료를 보면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있는 대중들을 볼 수 있었다. 대중매체 및 인터넷 커뮤니티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대였고 IMF위기를 겪고 난 시기였다. 사회적으로 재기, 도전, 활력을 상징하는 고채도의 비비드한 색상을 선호하게 되었고, 월드컵까지 개최되면서 붉은 악마 티셔츠로 한 층 더 생동력을 중시하는 심리적 회복의 표현으로 의복을 착용했다. 뿐만 아니라 미디어의 발전으로 팝이나 해외 영화가 유입되면서 서양권의 독립적 자기표현 욕구가 혼입된 시기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개성을 표출하기 위해 고채도의 색을 입기 시작하였다. 집단 조화를 중시하는 사회와 독립적 자기표현의 과도기가 지나고 2010년 중반부부터 다시 무채색으로 회귀하게 되었다.
그러나 무채색이 지닌 안정감과 조화의 미덕 뒤에는, 지나치게 자기를 숨기려는 습관이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색을 지운다는 것은 때로 자신을 지우는 일과 닮아 있다. 사회의 눈을 의식하고, 타인의 평가를 피하기 위해 무채색을 택하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의 감정과 개성을 억누르게 된다. 유채색의 옷은 단지 화려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고, 삶의 에너지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빨강은 생명력을, 노랑은 낙관을, 파랑은 진심과 신뢰를 상징한다. 우리가 유채색을 외면하는 동안, 그 안에 담긴 인간의 감정과 다양성 역시 함께 사라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의 무채색 선호는 오랜 문화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 합리적 선택이지만, 이제는 그 안에서 개성을 되찾을 시점이 아닐까. 조화 속에서도 자신만의 색을 지닐 수 있는 사회, 서로의 다름이 불편함이 아닌 아름다움으로 읽히는 사회로 나아갈 때, 비로소 색은 단순한 미학을 넘어 인간의 자유로운 표현의 언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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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지원, 오희선. (2013). 패션 관심도와 연예인 동조성에 따른 아웃도어 웨어 색채 선호도. 조형미디어학, 16(3), 43-54.
[2] H.R. Markus et al., Psychological Review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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