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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 Bronx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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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원묵
댓글 0건 조회 1,349회 작성일 25-10-19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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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 Bronxs


 나는 격투 경기 시청하는 것을 좋아한다. 많은 격투 단체들의 경기를 보지만, 특히 1위 단체인 UFC(Ultimate Fighting Champlionship) 을 즐겨 본다. 격투기를 좋아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로, 실시간으로 서로의 수싸움과 전략이 오가면서 그것들을 이해하고 파헤치는 재미가 있고, 그러면서 뭔가 피가 끓는 느낌이 든다. 아마 격투기를 보는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감정을 공유할 것이다.

 또한 많은 세계적인 격투 선수들이 살아온 스토리는, 나에게 자극 및 동기 부여를 주곤 한다. 보통 그들은 굉장히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꿈 하나만을 쫓아 달리며 모든 것들에 항상 감사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월 초에 펼쳐진 ‘UFC Fight Night’ 이벤트에서 마테우스 감롯이라는 선수를 상대로 승리한 ‘찰스 올리베이라’ 선수에게 위와 같은 자극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이 선수의 스토리에 대해 자세히 살펴 보게 되었다.


 찰스 올리베이라는 1989년 브라질 상파울루 주 과루자(Guarujá)의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그에게 삶이란 것은 일찍부터 가난의 연속이었었다. 아버지는 도축장에서 일했고, 어머니는 가사도우미로 생계를 꾸렸다. 흙바닥 위의 좁은 집 한 칸이 가족 전부의 공간이었고, 외식을 하려면 몇 달 동안 돈을 모아야 했다. 그래서 이 때 그가 스스로 붙인 별명 “도 브룽스(Do Bronxs)”는 ‘빈민가 출신의 아이’ 를 뜻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시련은 가난이 아니라, 몸이었다. 7살 무렵 그는 발목에 통증이 오는 류머티즘성 질환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걷지 못할 수도 있다, 운동은 절대 안 된다”고 경고했고, 그는 거의 2년 가까이 입원 치료를 받았다. 그때의 찰스는 병약한 몸에 좌절하기 보다는, ‘살아야 한다는 의지’ 를 배웠다. 걷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은 아이는, 오히려 더 빨리 걷고, 더 멀리 가고 싶어 했다.

 이후 완치 판정을 받은 건 11살 무렵이었다. 그러나 의사는 여전히 운동은 무리라 하였지만, 그럼에도 그는 “좋아하는 일을 못 하느니 차라리 아파도 좋다” 고 말하며 다시 뛰기 시작했다. 먼저 축구를 해보려 했지만 발목이 버티지 못하였고, 대신 근처 교회가 운영하던 무료 주짓수 수업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그 도장은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곳이었다. 도복조차 살 수 없어 헌 옷으로 버티던 그에게, 지도자는 “끝까지 남는 법”을 가르쳤다. 주짓수는 통증이 덜했고, 기술로 상대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그는 ‘약한 몸도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병실에서 매트로 옮겨진 그의 인생은 그렇게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많은 훈련과 노력 끝에, 2010년, 20세의 올리베이라는 UFC에 데뷔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시작은 고통스러웠다. 화려한 주짓수 실력에도 불구하고, 강한 타격을 받으면 스스로 물러나고 소위 말해 쪼는 모습이 반복됐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quitter(포기하는 자)’ 라 불렀다. 특히 2015년 맥스 할로웨이 전에서는 경기 중 목 부상으로 들것에 실려 나갔는데, 이에 대해 인터넷에는 “스스로 경기를 포기했다” 는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진실은 달랐다. 그는 경기 도중 식도 미세 파열로 응급실에 실려 갔고, 목과 흉부의 극심한 통증으로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단순한 ‘포기’가 아니라 생명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대중들의 비난을 마주하며, 자신에게 붙은 낙인을 곱씹었다. 결국 그는 기술보다 정신을 먼저 바꾸기로 하며, 매 훈련마다 한계 상황을 만들어 의도적으로 자신을 벼랑 끝으로 밀어붙였다.

 그는 매 경기마다 더욱 강해졌고, 마침내 ‘무너지는 파이터’가 아닌 ‘상대를 끝내는 파이터’ 로 진화하였다. 2021년 5월, 마이클 챈들러를 상대로 승리하며 UFC 라이트급 챔피언에 올랐다. 10년 동안 패배와 부상, 조롱을 견딘 끝에 얻은 첫 왕좌였다. 이후 그는 “가난했을 때도, 병들었을 때도, 사람들이 날 의심했을 때도 멈추지 않았다” 고 말했다. 그렇게 “쉽게 포기했던 나약한 선수” 는 결국 자신을 겪어왔던 모든 순간을 발판으로 삼아, 세계 챔피언의 자리에 서게 된 것이다.


 올리베이라의 이야기를 읽으며, “아무도 인생만큼 세게 나를 때리진 못한다.” 라는 문장이 한동안 머릿 속을 떠나지 않았다. 우리는 흔히 공정한 출발선을 상상하지만, 모두의 상황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어떤 가정은 밥값을 모으느라 몇 달을 기다리고, 어떤 아이는 일곱 살에 병원에서 ‘운동을 포기하라’ 는 말을 듣는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무엇인가. 올리베이라는 이에 대한 대답으로, ‘태도’ 라고 답한다. 맞아도 앞으로 나아가고, 낙인을 실력으로 지우고, 실패를 교훈으로 되새기는 일. 그 과정에서 그는 세계 최고 무대의 정상까지 올랐다가 다시 미끄러지고, 또다시 오르는 중이다.


 이렇게 그의 이야기를 쭉 살펴보며, 괜히 마음 속에 부끄러운 감정이 일었다. 내 한계를 내 자신이 너무 빨리 단정 지어버린 것은 아닌지. 또한 ‘이건 나랑 안 맞아’,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라며 스스로 멈춰버렸던 순간들이 부끄러워졌다. 올리베이라를 통해 배운 것처럼, 결국 중요한 것은 마주하고 있는 상황을 내가 어떠한 태도로 바라볼 것인지 일 것이다. 비록 계속 넘어지고 미래가 두렵고 그러할 지라도, 항상 일어나려는 의지와 태도를 갖고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기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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