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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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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승훈
댓글 0건 조회 924회 작성일 25-10-19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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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포기

-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읽고 -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은, 작가 자신을 모티브로 한 등장인물인 '오바 요조'를 주인공으로 한 자서전격 소설이며, 1948년에 출판되었지만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읽혀지고 있는 베스트 셀러 중 하나이다. 본 작의 주인공 오바 요조는 어딘가 어긋난 인간이다. 어릴 적 가부장적인 정치인 아버지의 아래에서 태어나 부모의 사랑을 별로 받지 못한 그는, 세상을 이해할 수 없는 어렵고, 두려운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은 절대로 이 세상을 이해할 수 없고, 자신을 남들과 다른 사람이라 생각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어릴때 자신을 돌봐주던 하인과 하녀들에게 성폭행을 당하면서, 그런 부정적인 인식은 더 강해지게 된다. 태생부터 소심했던 그는, 이러한 일련의 경험에 의해 세상이 두려웠음에도, 사람들과 떨어지는 것은 그리웠기에 결국 익살이란 가면을 써 광대로 살아가기로 한다.


 청년이 되어, 도쿄로 상경한 뒤에 그의 생활은 더욱 나빠지게 된다. 화가를 꿈꿔서 아버지 몰래 다니던 화실에서 만난 불량한 친구 '호리키'를 와 술,담배,매춘에 빠져 살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만난 자신과 같이 세상을 환멸하는 여자 츠네코와 동반 자살을 시도한다. 하지만, 츠네코는 죽고, 오바 요조는 살아남게 되고, 그로인해 그에게는 살인자라는 낙인이 찍혀 더더욱 비참한 생활을 이어나가게 된다. 그래도 그 와중 담배 가게에서 일하던 순수하고 남을 잘 믿던 여성인 요시코와 만나 결혼하여, 나름 평온한 결혼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으나, 남을 잘 믿던 요시코가 외간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하게 되고 그 결과로 인해 오바 요조는 술과 마약에 빠져 폐인같은 삶을 살게 된다. 결국 마지막에, 그는 호리키와 주변인들에 의해 강제로 정신 병원에 입원당하게 되고, 그가 스스로를 '인간 실격'으로 정의하면서 이야기는 마무리 된다.


 이렇듯, 인간 실격은 작가인 다자이 오사무 본인을 투영한, 한 남자의 파란만장했던 일생을 거짓 없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하나의 자전적인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은 사람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 지게 된다고 한다. 한쪽은, 주인공 오바 요조의 이야기가 자신의 인생과 비슷하며, 책을 읽고 큰 공감과 위로가 되었다고 평가한다. 반대쪽은, 주인공인 오바 요조를, 자신의 인생에 제대로 맞서지도 않고 스스로 자신을 고립시킨,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라 평한다. 사람은 자신의 인생과 경험을 토대로 작품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 마련이니, 전자의 평가를 내린 것은 오바 요조와 같이 힘겨운 삶은 겪은 사람들 이겠고, 후자와 같은 평가를 내린 것은 오바 요조에 비해 삶에서 겪었던 풍파가 그리 많지 않았던 사람들일 수 있다. 


 나는, 주인공 오바 요조를, '태생부터 잘못된 실패자'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작중 묘사에 따르면 그는 훌륭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고, 학교에서 1등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머리도 비상하였다. 하지만, 어릴적 받지 못한 부모님의 사랑과, 하인과 하녀들의 성폭행에 의해 인식에 못박힌 세상에 대한 두려움으로, 안 그래도 뒤틀렸던 성격이 겉잡을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나름 평범한 삶을 살아온 이들이, 그런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냈던 이의 인생을 평가하는것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그 상황에 처했을때, 똑같이 절망하고 도망치지 않을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고 난 후의 개인적인 감상을 말하자면, 오바 요조의 행동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의 삶의 태도에 진심으로 '공감'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누구라도, 오바 요조와 같이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삶을 온전히 공감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그의 삶에서와 같은 불행을 가장 가깝게 느꼈던 경험은 있는데, 바로 군대에 복무했던 시절이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내고 학교를 다녔던 지역에서 만난 친구들과 사람들은, 모두 나름의 이성과 합리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세상 사람들은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처음 군대에 가서 만난 사람들은 조금 달랐다. 전국 방방곡곡의 다양한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사람이 이렇게 비 이성적이고, 비 합리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는걸 느꼈다. 그렇기에, 그 시절의 나는, 어린 시절의 오바 요조와 같이 이 사회와 세상의 부조리와 무서움을 온 몸으로 깨달았던 것 같다.


 그 시점부터는 생존의 문제였다. 그 곳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었다.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결국, 세상은 나라는 존재에게는 눈꼽만큼도 관심이 없으니,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변해야 한다고. 그렇기에, 나는 최대한 삶의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내 기준에서 용납하지 못할 사람들도 어떻게든 받아들이려 노력했고, 어딘가 불합리해 보이는 군대의 시스템에도 몸을 맞춰서 끼워넣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그것은 살아남기 위한 나름의 투쟁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군대는 군대라, 생활하는 것이 썩 편한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찌저찌 살아남아서 사회로 다시 나올 수 있었다. 그 경험이, 이후 나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던 것 같다.


 이것이, 내가 오바 요조에게 진정한 '공감'을 할 수 없는 이유인 것 같다. 그가 어려서 좋지 않은 일을 겪었고, 그로 인해 뒤틀린 도망자의 삶을 살았다는 내용은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힘든 일이 있었을때 그것이 꼭 필요하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그것에 맞서 투쟁하는 방식을 선택해 왔고, 나름 성공한 경험이 몇 있었다. 물론 내가 겪은 일들은 오바 요조의 상황에 비하면 낙관적인 편일 수 있고, 남들이 보기에는 보잘것 없는 일들에 보잘것 없는 투쟁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내 인생의 경험들로 인해 내 의식의 깊은 곳에는, 맞서 싸우지 않고 도망가면 그 후에는 썩 좋지 않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인식이 박혔다. 그렇기에, 소설의 묘사 상 삶에서 항상 도망만을 선택해온 오바 요조에게는, 깊은 공감을 할 수 없는 것 같다. 삶은 투쟁의 연속이라 한다. 죽기 전까지 인간은, 크든 작든 그들 나름의 싸움을 하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자신이 한 사람의 인간으로써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투쟁을 그만두는 것은, 곧 인간임을 포기하게 되는것이 아닌가 싶다.  


 소설에서 악우였던 호리키는, 비행을 일삼던 오바 요조에게 이런 말을 한다. "그나저나 네 난봉도 이쯤에서 끝내야지. 더 이상은 세상이 용납하지 않을 테니까." 그러자 오바 요조는, 속으로 이렇게 반문한다. '그건 네가 용서하지 않겠다는 의미 아니야?' 라고. 하지만 이것은, 오바 요조 본인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마지막에 그는, 정신 병원에 갇혀 스스로를 '인간 실격' 이라 평가한다. 그렇다면, 그 실격은 누구의 기준에서 실격이란 말인가? 오바 요조는 세상이 용납하지 않는 인간이란 말인가? 그의 말을 그대로 되돌려 주면 '세상이 아니라 자신이 자신을 실격자라 평가한 것' 뿐이라 생각한다. 물론, 그가 살아가면서 어떻게든 평범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중요한 순간마다 도망을 선택해 왔고, 마지막에 와서는 자신이 인간임을 스스로 포기했다. 결국, 불우하고 엇나간 와중에서도 마음 한켠에 어렴풋이 존재했던, 남들과 같은 인간으로 살고 싶다는 나름의 세상을 향한 투쟁심을 놓아버린 순간, 그는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에 의해 인간이 아니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인간 실격이 아니다. 그저,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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