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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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오기
- 유희경의 9월 -
올해는 유난히 여름이 긴 것 같더니, 어느새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진 기온을 느끼며 가을이 왔음을 실감한다.
이 책은 유희경 시인이, 가을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친구 ‘오기’와의 이야기이다. 둘은 어느 네트워킹 파티에서 우연히 만났기에 여타 어른들의 관계가 그러하듯이, 서로의 생일도, 그 밖의 자세한 개인사도 알지 못하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고, 현재에 집중하며 즐겁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이이다. 시인이 오기에 대해 알고 있는 건 희곡을 쓰는 작가라는 것, 글을 쓸 땐 언제나 종이와 펜을 사용한다는 것, 그리고 추측하는 것은, 오기가 가을을 좋아하니 생일이 가을이지 않을까 하는 정도이다.
유희경 시인의 가을은 9월의 첫날, 오기가 시인의 서점에 들어서며 ‘가을이에요, 시인.’ 이라 선언해주며 시작한다. 8월이 막 지난 9월의 한낮은 여름과 다름없지만, 오기의 선언으로 비로소 가을의 선선함이 시작될 느낌을 받는다. 그렇게 몇 해간 시인의 일상을 가을로 바꾸어 내던 오기는, 어떠한 일로 마음이 상했는지 더 이상 시인의 서점을 찾아오지 않는다. 뚜벅뚜벅 계단을 걸어 올라오며 가을을 선언해주어야 하는 오기가 오지 않는다. 오기가 오지 않는다고 가을이 오지 않는 게 아니지만 그럼에도 오기가 오기를 기다린다.
“우리는 함께했던 날들보다 더 많은 날을 함께 보냈다. 각자에게 주어진 일을 하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상념에 빠진 채,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화장실에 가고 누군가의 반응에 열중하면서. 이 글을 읽는 당신은 그렇게 보낸 시간을 ‘함께 보냈다’고 할 수 있을까, 의심할 수도 있다. 나는 그럴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함께 보냈다’고 적었다.”
책을 처음 펼친 계절은 아직 더운 9월이었다. 위의 문구는 책의 서두에 적혀 있었는데, 함께했던 날들보다 더 많은 날을 ‘각자’ 보냈는데 어째서 시인은 함께 보냈다 표현했는지 책을 덮고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 옆으로 미뤄두었던 책을 아침 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부는 지금에서야 다시 펼쳐보았다.
사계절이 좋은 이유 중에 하나는, 지난 기억을 돌이켜 볼 때, 각각의 계절이 시간의 마디가 되어준다는 점인 것 같다. 너무 먼 추억이라 몇 해 전 일인지 정확히 헤아리는 데는 시간이 걸려도, '바람이 시원했어', '그때 날씨가 진짜 더웠지', '눈이 왔었어' 등 계절을 연상할 수 있는 경험과 함께 떠올리게 되면 흐릿했던 기억도 어느새 생생해진다. 그리고 어느 계절은 묻어둔 추억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더위가 가시고, 차갑지만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매년 이맘 때 쯤이 되면, 내 학창시절을 함께했던 우리집 강아지가 떠오른다. 우리집 하얀 강아지 콩이.
강아지 주제에 덥거나 추운 날 걷는 건 싫어해서, 여름엔 아빠 차 타고 달리며 창문 밖 바람을 즐기고, 겨울엔 꽁꽁 싸매인채 품 안에 안겨서 산책을 즐기다. 봄/가을 에야 제 발로 열심히 뛰어다니는 웃기는 강아지였다.
그래서 나에게 가을은, 산책 나간 우리 강아지가 더 이상 못 걷겠으니 사람 품에 안기겠다 조르는 법 없이, 자신의 네 발로 열심히 바삭바삭 낙엽을 밟으며 돌아다니는 계절이다. 흙 묻어 꼬질해진 회색빛 털과, 온 몸에 묻혀온 낙엽냄새를 맡으며 비로소 가을이 왔음을 느꼈다. 그리고 이제, 나에게 가을은 '아 우리 강아지가 좋아했던 날씨가 왔구나' 떠올리는 계절이다.
가을을 그렇게 좋아해놓고 여름에 떠나버린 나의 강아지. 개의 시간은 사람보다 짧아서, 그렇게 아쉽게 너무나도 어쩔 수없이 우리의 시간에 마침표를 찍었는데, 다정한 나의 강아지는 바람이 시원해지는 계절마다 도돌이표를 그려 놓았다. 함께했던 날보다 더 많은 날을 함께 보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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